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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가 Feb 07. 2022

외노자라는 연결고리

초청 노동자의 역사

독일어 말하기 수업

함부르크의 도서관에 가면 무료로 독일어 말하기 수업에 참가할 수 있다. 따로 등록하지 않아도 시간에 맞춰가면 돼서 심심할 때면 종종 나들이 가듯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런데 하루는 코로나 때문에 선생님이 오지 못해서 그날 수업이 취소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거기에 있던 사람들과 따로 나가 독일어 연습 겸 대화를 시작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조언도 구할 겸 함부르크에서는 집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때 비싸기만 하고 난방은 제대로 안 되는 집에 살고 있었어서 이사 갈 집을 애타게 찾는 중이었다. 독일에 온 지 오 년 됐다는 분이 어떤 사이트를 하나 추천해줬다. 그 기관 사이트를 통해서 굉장히 저렴한 집을 구해 가족들과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조건이 너무 좋아서 아주 조심스럽게 피난민들만 입주 가능한 집인지 물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그분이 놀라면서 나보고 피난민이 아닌 거냐고 물었다. 피난민이 아니면 대체 왜 독일까지 왔냐고. 독일에 무엇(was)으로 온 거냐는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국의 취업난, 취업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 꽉 막힌 출퇴근길, 몇 년째 취업을 못 해서 알바를 전전하는 주변 사람들, 알바 자리도 구하기 쉽지 않은 한국. 이 모든 걸 이야기 하기에는 혼자 한참 떠들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일자리를 찾다 보니 독일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은 일자리 경쟁이 심할 뿐 전쟁이나 테러로 목숨을 위협받는 국가는 아니니까 나는 난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가스트 아르바이터

이런 경우에 나를 뭐라고 불러야 되는지 고민해봤지만 마땅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났다. 한국어로는 그저 '해외 취업 왔다'라는 말로 설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인 동료에게 물어보니 동료도 한참을 고민하다 알려준 단어가 Gastarbeiter [가스트 아르바이터]였다. 손님, 타국 사람을 뜻하는 Gast와 노동자를 뜻하는 Arbeiter의 합성어이다.


그렇구나 하고 단어를 곱씹었다. 가스트 아르바이터는 직역하자면 손님 노동자이고, 손님 노동자는 한국어로 외국인 노동자일 거고. 내가 외국인 노동자이면, 결국 나는 외노자라는 거였다.


Gastarbeiter [가스트 아르바이터]

= Gast (손님, 타국 사람) + Arbeiter (노동자)

= 손님 노동자

= 외국인 노동자

= 외노자


독일에서 내가 외노자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외노자는 당연히 가난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외노자는 한국 국적자가 아니면서, 원화보다 가치가 낮은 화폐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온 사람이어야 했다. 여행 삼아 영어 선생님으로 와서 일하는 영어권 원어민들을 보면 외노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은 가난한 나라가 아니니까 당연히 스스로를 외노자라고 분류할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외노자라는 단어에 집중했던 나와 달리 내 글을 읽어주던 친구는 손님 노동자라는 표현을 흥미로워했다. ‘외국인’은 경계를 긋는 느낌이라면 ‘손님’이라는 단어에서는 환영하는 느낌이 난다. 그렇다고 독일인들이 외국인에게 포용적이고 다정한 편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자기네 일자리 뺐지 말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간혹 마주치기 때문이다.



초청 노동자

그럼 도대체 나는 독일에서 무엇일까? 독일인들은 나를 어떻게 범주화할까? 독일인 동료도 한참 생각한 후에 Gastarbeiter라고 하긴 했지만 막상 그렇게 칭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다. Gast는 손님이라는 뜻인데 Gastarbeiter라는 말 자체는 한국어로 ‘초청 노동자’라고 번역한다. 이 용어는 사실 1955년부터 1973년까지 독일에 와서 일을 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말한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노동인력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시한 고용정책이 초청 노동(Gastarbeit) 제였다. 이탈리아(1955)를 시작으로 스페인(1960), 그리스(1960), 터키(1961), 한국(1963) 등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독일에 왔다. 60년대 초에 그 수가 급격히 많아지면서부터 일상적으로도 초청 노동자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 광부의 서독 파견도 이 시기에 초청 노동자 정책으로 이뤄졌다.


초청 노동자 고용정책을 할 당시만 해도 독일 당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오래 머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사자들 역시 홀몸으로 독일에 와 외화를 벌고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독일 인력이 필요할 때 잠깐 초대되어 왔다가 다시 돌아갈 사람들이라고 여겼고, 그 때문에 Gast(손님)이라는 표현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70년대 초 일부 사회학자들은 이 단어보다 더 적합한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ausländischen Arbeitnehmers (외국인 노동자) 혹은 Arbeitsmigranten(이주 노동자)라는 용어가 채택되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에게는 Gastarbeiter라는 단어가 뿌리 깊게 자리 잡혔다. 그 독일 동료가 내 또래인데도 Gastarbeiter라는 단어를 알려준 걸 보면 독일인들에게는 여전히 이 단어가 더 익숙한 것 같다.


Gastarbeiter [가스트 아르바이터] : 초청 노동자

ausländischen Arbeitnehmers  [아우스렌디셴 아르바이트네머스] : 외국인 노동자

Arbeitsmigranten [아르바이츠미그란텐] : 이주 노동자


초청 노동제로 온 사람들이 독일에 정착하게 되면서 이 정책은 70년대 초에 없어지게 된다. 2020년대가 된 지금 독일은 이전처럼 대규모로 외국 인력을 데려오지는 않지만 여전히 외부에서 노동인력을 끌어오고 있다. 나 역시 그 흐름에 탑승해서 독일까지 왔다.



외노자라는 연결고리

나를 범주화할 수 있는 단어를 세 개나 찾아냈지만 평생 쓸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독일인이 아니었다. 그분은 내전을 피해 독일로 온 피난민이었으니 해외 취업이라는 개념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 놓이지 않은 사람들은 직장인이라고 말만 해도 고개를 끄덕인다.


독일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외노자들이 독일에 참 많다. 처음에는 친구 없이 혼자 외롭게 지내야 할 까 봐 걱정을 조금 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국적도 하는 일도 다 다른데 외노자라는 공통점 하나로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비자 때문에 고생할 때마다 같은 처지라며 공감해주는 벨라루스 친구, 자신들은 그나마 유럽 시민권자라면서 같이 동성결혼을 하겠냐고 장난치는 크로아티아 친구들, 정 많고 흥 넘치는 인도 친구들, 매번 맛없는 케이크를 만들어 오는 터키 친구, 내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기꺼이 경험담을 풀어주는 한국인 직장 동료들. 그리고 그렇게 생긴 친구들의 친구들의 친구들.


가끔씩 비자와 언어문제로 고생할 때면 스스로를 외노자라고 부르면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외노자 친구들을 생각한다. 이들과 이어지는 연결고리로 인해 외노자라는 신분이 좋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었다가, 다시 좋았다가..





참고 자료


전체적인 역사

https://www.planet-wissen.de/geschichte/deutsche_geschichte/geschichte_der_gastarbeiter/index.html

https://www.bpb.de/nachschlagen/lexika/270369/gastarbeiter

https://www.planet-schule.de/wissenspool/zu-hause-in-deutschland/inhalt/hintergrund/gastarbeiter-im-westen-das-wirtschaftswunder.html


Gastarbeiter 용어

https://de.wikipedia.org/wiki/Gastarbeiter


Gastarbeiter 한국어로 : 초청 노동자

https://ko.wikipedia.org/wiki/%EB%8F%85%EC%9D%BC%EC%9D%98_%EC%9D%B4%EC%A3%BC%EB%85%B8%EB%8F%99%EC%9E%90#cite_note-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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