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쿙가 Jan 06. 2022

출생의 비밀

BGM 1 : 박혜성의 경아 (1986)   


1994년 12월 26일, 미시 출생. 태어나 보니 나를 위한 노래가 이미 몇 곡이나 만들어져 있었다. 부모님이 박혜성이 부른 ‘경아’를 염두에 두고 내 이름을 지은 건 아니다. 대학생 때 혼자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중이었는데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박혜성이 ‘경아’를 어찌나 많이 불러 젖히는지!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웃음이 터지는 걸 막으려고 온 몸을 가능한 많이 힘주어 꼬았다.


집에 와서 다시 노래를 찾아들었다. 재밌어서 엄마한테도 알려줬더니, 엄마 말이 ‘생각해보니 그런 노래가 있었네’였다. 왜 나는 20년 동안 내 주제곡도 모르는 삶을 살아야 했나.



출생의 비밀


엄마한테 설레는 마음으로 내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초등학생 때였고 내가 거창한 탄생과정을 거쳐 태어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나이었다. 그래도 어쩌다가 12월 26일에 태어난 건지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엄마 나는 왜 크리스마스 다음날 태어났어? 크리스마스 당일에 태어날 수도 있었잖아.”

“원래 95년 1월이 예정일이었는데 제왕 절개하느라고. 의사가 26일에 시간이 된다고 그날 수술 날짜 잡았지.”


어디에선가 동심(童心)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8살인가 9살 때였으니까 동심이라는 단어조차 모를 때였다.



제왕 절개

마취 후 깨어나 보니 발이 너무 시렸다고 했다. 큰 수술을 하고 일어났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고 발이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채였다고 했다. 제왕절개로 온 몸이 비명을 질러 댔을 텐데 엄마는 그때를 떠올리면 발이 너무 시렸다고 기억했다. 그리고 그 수술을 두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92년에 오빠 때문에 한 번, 94년에 나 때문에 또 한 번.



이게 다 오빠 탓이야

사실 내 탓은 아니고, 이게 다 오빠 탓이다. 오빠가 거꾸로 있었다고 했다. 태아는 몸집이 커지면 머리가 골반쪽으로 향하게 몸을 돌린다. 난 돌렸는데 오빠가 몸을 안 돌렸다. 엄마가 의사한테 둘째는 자연분만으로 낳고 싶다고 했더니 의사가 위험하다고 안 된다고 했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들이 세상에 나올 때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고 들었다. 이 일을 가지고 나는 내 생일만 되면 오빠가 태아였던 시절을 들먹이며, 어쩌면 내가 좀 더 똑똑하고 스트레스 덜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크리스마스가 이틀

독일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크리스마스는 굉장히 뜻깊은 날이다. 독일은 국가 공휴일로 25일뿐만 아니라 26일까지 크리스마스로 지정했다. 결국 독일까지 와서도 오빠의 태아적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다. 너희에게 내 거창한 출생 일화를 들려주겠다고. 한국은 25일 하루만 공휴일이기 때문에 나는 의사가 26일 날 꺼냈다고. 그런데 독일에 왔더니 26일까지 공휴일이라 놀랐다고. 어쩌면 나는 여기식으로는 27일에 태어나야 했을 수도 있는 거라고.


독일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상점은 문을 닫고 길거리는 텅 빈다. 관청에서도 일을 하지 않고, 결국 나라는 존재가 독일에서 비자기간이 만료돼서 불법으로 체류하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모두가 쉬는 대대적인 명절날이다. 친한 친구들은 다들 가족과 시간을 보내러 각자 나라에 갔다. 한국을 2019년 여름에 떠났으니까,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크리스마스와 생일날에 계속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독일에서 계속 밥 벌어먹고 사는 한 계속 혼자일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파할 사람들을 위해,

2019년에는 이 시기에 일주일 간 집에 전기가 끊겼었다. 게다가 일주일 내내 만날 사람도 없이 어두운 집에 있느라 조금 슬펐다. 2020년 12월에는, 마침 마음에 드는 집에 막 이사 들어갔고 집이 따뜻해서 혼자 있어도 안락하게 잘 지냈다. 2021년에는 연말 약속이 12월 내내 잡혀서 정신없이 즐겁게 보냈다. 막상 생일날 혼자가 됐을 때 여유 부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BGM 2 : 이종용의 겨울아이 (1980)

박혜성의 경아를 다 들었다면 이종용의 겨울아이도 들어주시길! 내 두 번째 주제곡인데 엄마가 이건 나를 위한 곡이라며 10대 언저리 생일날 틀어줬다. 이상하게 노래 쪽으로는 감성이 메말라 있던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도 온몸을 힘주어 꼬았다. '경아'는 웃겨서, '겨울아이'는 왠지 민망해서.

작가의 이전글 뜻밖의 급 백수 신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