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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파티와 홍수

시작은 소박하게

by 쿙가

초대

지난주 주말에 비디야와 함께 돌리네 집에 초대되어 갔다. 돌리가 엄청 맛있는 인도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내가 돌리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돌리를 초대하는 김에 돌리의 남편 아이히만과 비디아의 또 다른 친구인 샤키르를 초대하기로 했다.


비디야의 친구를 초대하고 나니 내 친구들도 초대하고 싶었다. 나도 비디야도 서로의 친구들은 이제 자주 만나고 어울려서 잘 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우리 둘 다 친구들을 불러서 친구들과 친구들을 소개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간단한 저녁 식사가 홈파티로 변했다. 코로나 때문에 10명 이상의 모임은 금지되어있다. 그래서 마음 놓고 다 초대하지는 못하고 한 명 한 명 시간이 되는지 물어봤다. 갑작스러운 초대에 2명은 다른 계획이 있다고 거절해서 나를 포함해서 총 8명이서 홈파티를 하기로 했다.



2022년 1월 29일 토요일


주최자 : 나, 플랫메이트 (비디야)
손님 : 비디야 친구들 (돌리, 아이히만, 샤키르), 내 친구들 (이반나, 베라, 유라이)

일시 : 토요일 저녁 19시
장소 : 나와 비디야의 셰어 하우스



홈파티 하루 전

비디야랑 대청소를 했다. 부엌은 워낙 낡아서 청소해도 티가 안 난다. 화장실은 샤워 커튼까지 내친김에 다 빨았다. 운동삼아 한인 마트에 걸어가서 음식 재료랑 과자, 소주와 막걸리를 샀다. 40유로가 나왔다. 비디야도 인도 음식을 만든다고 장을 한가득 봐왔다.



홈파티 당일

우리 둘 다 신나서 잠을 설쳤다. 새벽에 일어나서 요가하기로 했었는데 못 했다. 오후 두 시에 비디야는 인도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겠다고 해서 옆에서 조금 도와줬다. 배가 고파서 옆에서 된장 소면을 후다닥 끓여서 먹었다. 비디야도 나눠줬다. 오후 네시에 한 시간 낮잠을 잤다. 파티 주최자로서 졸지 않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면 낮잠이 필수다. 다섯 시 반, 깜박하고 안 산 물건이 있어서 자전거 타고 밖에 나갔다 왔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자전거 운전 방향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를 내내 끌고 다녀야 했는데 똑바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심했다.



파티 시작

샤키르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도착했다. 내 방이 비디야 방보다 조금 더 작다. 그래서 내 방에는 손님들 겉옷과 가방을 놓게 하고, 비디야 방에 상을 차렸다. 음식은 비디야 책상에 애피타이저, 메인 메뉴, 디저트, 스낵, 음료를 놓아두었다. 각자 자기 그릇에 원하는 만큼 음식을 가져다가 먹으면 된다.


유럽에서는 홈파티 시간을 정해줘도 다들 절대 제때 오지 않는다. 여기는 미리 도착하는 게 더 실례다. 늦는다고는 말하는데 정확히 얼마나 늦는지 말 안 하기도 한다. 어차피 음식은 넉넉하니 알맞게 도착한 친구들과 먼저 파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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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g pubs

veg pubs는 인도 음식인데 페이스츄리에 감자와 다양한 야채가 들어간다. 만드는 사람마다 속재료는 다 다르게 넣는다고 한다.


- 파전

홈파티 주 메뉴는 파전이다. 부침가루와 물을 1:1로 섞어서 프라이팬에 두른 후 그 위에 Lauchzwiebel이나 Porree를 올려서 부치면 된다. 8명이 먹을 파전을 만드느라 한 시간 동안 프라이팬 세 개로 미친 듯이 부쳤다. 소스로는 간장에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넣었다.


- 애플파이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이반나와 베라가 초대해 줘서 고맙다고 애플파이를 만들어왔다. 난 베이킹을 잘 못해서 이렇게 친구들이 디저트를 들고 오는 게 너무 고맙다.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사 와서 토핑으로 올려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비디야가 나중에 말하길 살면서 먹어본 파이 중 제일 맛있었다고 했다.


- 소주와 막걸리

배도 불렀겠다 소주와 막걸리를 꺼냈다. 내가 워낙 술을 안 먹는 편이라 맛만 보자는 의미에서 한 병씩만 샀다. 이 시음식을 위해 아주 작은 플라스틱 컵과 네임펜도 사놨다. 컵에다가 친구들 이름을 한글로 하나하나 적어서 막걸리를 담아줬다. 돌리와 아이히만은 그 컵을 간직하겠다면서 집에 들고 갔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돌리도 비디야도 술을 잘 안 마시는데 소주와 막걸리가 너무 맛있다고 극찬했다. 사실 소주는 유자맛 순하리로 사고 막걸리는 도수 3%의 처음 보는 청포도맛이었다. 둘 다 오리지널이 아니고 과일맛이 첨가된 거라고 설명했다.


- 녹차맛 킷캣

한국 과자를 잔뜩 사면서 녹차맛 킷캣도 같이 샀다. 예전에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용돈 아끼느라 먹고 싶어도 못 먹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잠정적 백수이긴 하지만 기분 낼 겸 킷캣도 같이 샀다. 친구들한테 '이건 일본에서 온 마챠(Matcha : 말차) 맛 킷캣이다!!!' 하고 보여줬다. 내가 평소에 한국 과자만 주다가 일본 과자를 딱 하나 사 왔다니까 친구들이 엄청 기대했다가 먹었는데, 실망한 눈치였다. 결국 다 남았다.


- 허니버터 아몬드

허니버터 아몬드는 워낙 유명하니 한 봉지 샀다. 사실 이게 왜 인기가 많은지 모르겠다. 이렇게 조리된 아몬드는 신선한 맛이 별로 안 난다. 하지만 다행히 샤키르와 유라이가 맛있다면서 흡입했다. 어디 가서 살 수 있냐고도 물어봐서 내가 가는 한인마트 위치를 알려줬다. 이 외에도 쿠크다스와 화이트하임도 있었고 비디야가 산 감자칩도 잔뜩이라 다들 배 터지게 먹었다.



게임

우리 집에는 보드게임과 카드게임이 잔뜩 있다. 이번 인원은 여덟 명이나 돼서 Lobo 77(숫자를 더해가는 카드게임)로 다 같이 게임을 했다. 그리고 게임에서 져서 빠지는 사람들은 따로 모여서 Dobble(빠른 속도로 해야 되는 그림 맞추기 카드게임)을 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하나둘씩 집에 가고 이반나와 유라이만 남았다. 네 명이서 하기에는 루미큐브가 딱이다. 이반나와 비디야는 이미 여러 번 해 봐서 유라이한테만 규칙을 알려주면 되었다. 패를 옮겨 붙이고 새로운 조합으로 바꾸는 걸 보여줄 때마다 유라이가 "이런 것도 가능해?!!"라고 소리쳤다. 이 맛에 친구들한테 보드게임을 가르쳐준다.


영어

내가 아무리 개떡같이 설명해도 다들 찰떡같이 알아들으니 게임 진행에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면서도 답답했다. 나중에 유튜브에서 영어 튜토리얼 영상을 찾아봐야겠다. 게임 규칙을 영어로 어떻게 설명하는지 잘 들어 볼 생각이다.




2022년 1월 30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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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

이반나와 유라이가 간다고 해서 건물 입구까지 배웅했다. 그런데 웬 경찰차가 엄청난 파란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아니 자정도 넘은 이 야밤에 왜 저러냐 하고 말았다.



너네 홍수 났다

집에 다시 들어왔는데 이반나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이반나가 왓츠앱으로 '너네 홍수 났다'라고 썼다. 비디야를 불러서 집 밖으로 뛰어 나갔다. 진짜 홍수가 났다. 우리는 엘베강 옆에 사는데 창문을 열고 오른쪽에 바로 강이 보인다. 가끔 비 오면 넘실넘실하다가 말더니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넘쳤다. 안 그래도 하루 종일 바람이 심상치 않더라니!


홍수가 나긴 했지만 전혀 심각한 건 아니었다. 여기 엘베강은 자주 범람한다. 내가 일 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 올 때도 집 계약서에 쓰여 있었다. 홍수 피해가 나도 임차인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여기 오래 살았던 전 플랫 메이트의 말로는 물이 건물 앞까지 차오르긴 하는데 집 안으로 들어올 정도는 아니라고 했었다. 일 년에 몇 번씩 있는 일이라고 해서 사실 조금 기대했었는데 작년에는 한 번도 못 봤다. 아니면 내가 계속 놓쳤던 걸까.


경찰관들도 차에서 내려서 사진 찍고 사람들도 신기한지 많이 구경 나왔다. 도로 위로 물이 넘실거리는 게 신기했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홍수를 처음 봤다. 이게 재난영화였으면 제일 먼저 침수되는 집이 우리 집 같은 곳이었겠다고 생각했다.


뉴스 기사에 Strumtief(폭풍 저기압) Nadia(나디아 - 이번 폭풍 이름)가 독일 북부를 덮쳤다고 떴다. 이로 인해 함부르크 대중교통 몇몇 곳은 중단되었다. 다행히 우리 친구들은 집에 잘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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