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조그맣지만 굉장히 힘이 센 친구가 한 명 있다. 자신의 몸집만 한 캐리어를 들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그 무거운 캐리어를 가끔은 세 개씩이나 들고 다닌다. 참으로 야무지게 본인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친구의 얘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늘 감탄하곤 한다.
우리는 집을 벗어나서 뭐든 혼자 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던 즈음에 전화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했다. 걱정 거리, 슬펐던 얘기, 재밌었던 일, 옛날 이야기… 여러 해가 지나고 우리는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뭐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며칠 전, 친구는 이런 카톡을 보냈다. “나 많이 외로워. 요즘 티 많이 냈는데, 티 안 났니?” 나의 답변에 친구는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굉장히 단호박으로 “아니. ㅋㅋㅋㅋㅋ 어디가?” 라는 답변을 보냈다. 친구가 외롭다는 인상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외국에서도 여전히 일을 열심히 하는 듯 보였고 여행을 열심히 다니는 듯 보였고 열심히 친구들을 만나는 듯 보였다.
물리적인 거리는 역시 소통을 하는데 큰 장애가 되는 듯싶다. 친구는 잘 지내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많이 외로운가? 그때 우리 글쓰기 모임 ‘킵 미 컴퍼니’가 생각이 났다. 혼자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조금이나마 서로를 보살펴 줄 수 있는, 우리 글쓰기 모임 말이다.
친구야, 너의 얘기를 우리가 힘 닿는 데까지 들어 줄게. 글쓰기와 이 글쓰기 모임을 통해 네가 조금이라도 덜 외로우면 좋겠구나.
오이기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나의 상태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자신했던 것 같아.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자취를 시작했으니까 이제 어엿하게 자취 9년차에 접어들었어. 쿠바, 베네수엘라, 도미니카공화국에서도 혼자 살면서 외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참 이상하게도 요즘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 그렇다고 불행한 건 정말 아니거든. 엘살바도르에서 두 달 동안 지내면서 정말 행복했어. 딸처럼 동생처럼 여겨주는 감사한 이들 덕분에 과분한 애정과 예쁨을 담뿍 받았거든. 며칠 전 앞으로도 엘살바도르에서 있는 동안 더 잘 지내길 바란다는 친구의 말에, 지금 이토록 행복한데 이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생각해보게 될 만큼 감사한 날들이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롭다는 마음이 요즘 참 많이 드네.
어쩌면 얼마 전 다녀온 여행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도 몰라. 여행 끝에 찾아온 허무감이 결국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내 모습이 될 것만 같아서였을까. 멕시코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2년 반 만에 친했던 친구를 만났어. 멕시코인이고 6년 전에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알게 된 친구였어. 이후에 그 친구가 학사 때도 석사 때도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왔었고. 한국에 있을 때는 정말 자주 만났는데, 멕시코 귀국 후에는 2년 반 만에 만나게 된 거지. 우리가 멕시코에서 처음 만나고 나서 한국에서 또 만나게 되었을 때도, 그 친구가 다시 또 한국에 오게 되었을 때도 이렇게 또 멕시코에서 만나게 된 것도 매번 알 수 없었던 일이었고, 매번 마지막이 될까 두려웠지만 만나게 된 것이었는데, 이번에 또 다시 기약없는 재회를 이야기하면서 헤어지는데 마음이 이상했어. 참 소중한 친구였는데, 우리가 서로의 삶에 부재한 사이에 각자에겐 많은 일들이 있었고, 우리 모두 많이 변해있더라. 다시 만나서 너무 기뻤지만, 지난 시간만큼 변해버린 우리가 서글펐어. 내 삶이 영원히 이렇게 흘러가게 될 것만 같아서 두려운 느낌이 들었어.
평생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선택에 대해 요즘 많이 돌아보게 되네. 사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요즘 조금 우울하던 찰나에 융진이가 이 글쓰기 모임에 대해 얘기해줬어. 내가 너무 우울한 감정을 많이 얘기했나? 그래서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어.
숨숨
외로움의 정도가 썰물이었다면 요즘은 부쩍 밀물처럼 밀려오는 시기가 아닐까
우선 글을 읽자마자 한국과는 먼 땅에서 또 열심히 혼자 살아가고 있는 오이기가 참 굳세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졌어.
나보다 훨씬 해외에서 오래 살아온 오이기의 모든 심정을 다 이해하기엔 부족하겠지만, 지금 느끼는 외로움이 어쩌면 당연한 거고 왔으면 또 지나갈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 요즘 부쩍 많이 드는 생각인데, 사람이 외로움을 아예 안 느낄 수는 없는 것 같아. 그냥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약간 바다의 밀썰물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오이기는 외로움의 정도가 썰물이었다면 요즘은 부쩍 밀물처럼 밀려오는 시기가 아닐까 싶어.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20대 초반과는 다르게 가치관에 변화가 생기고, 혹시나 내가 선택한 길이나 나의 욕심때문에 소중한 걸 놓쳐온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나도 가끔 우울해질 때가 있어. 특히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생각날 때 더욱 그렇더라고. 주변에서 날 좋아해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친구가 있고 없고와는 별개로 외로움이 날 잠식해버릴 때도 있더라고.
아직 나는 해외살이 1년 차이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들하고 얘기할 때 벌써 장벽이 생기는 느낌이 들더라고. 시차도 그렇긴하지만, 뭔가 내가 겪는 일들을 다 털어놓기도 어렵고, 그 친구들이 겪는 일들을 내가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더라고. 서로 경험하고 있는 것도 다르고, 하고 있는 일도 다르고, 대화 주제가 서서히 달라지니까 친구들의 연락이 반가우면서도 뭔가 점점 괴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어. 연락이 올 때면 내 생각을 해줬다는 게 참 고맙기도하고 내가 언제든지 한국에 달려가면 나를 누구보다 반갑게 맞아줄 친구들이라는 건 알지만, 물리적인 거리만큼 이해하는 폭에도 어느정도 변화가 생겼다는 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자 한 분이 물리적 거리나 만나는 빈도를 가까운 거리로 규정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어. 이걸 듣고나서 한국에 있는 사람들, 혹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된 것 같아. 아주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서로 할 얘기도 많고 반갑게 맞아줄 수 있는 친구가 진짜 더 소중하고 값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오이기의 살아온 인생스토리를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같이 열심히 해외에서 살아가는 친구로서 응원해주고 싶고, 지금의 길을 선택해서 놓친 것들이 분명 있었겠지만, 한편으로는 놓칠 뻔한 소중한 시간들을 지금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 화이팅!
융진
한 번의 축복과 한 번의 은총이, 바라건데 함께 하기를
네가 우울한 티를 전혀 안 내서 그런 줄 전혀 모르고 있었어. 도입부에서도 얘기했지만, 그냥 갑자기 킵 미 컴퍼니 생각이 났어. 외롭다 길래 도움이 될까 하고 말이야.
네가 쓴 글을 읽고 공감이 가는 부분이 너무 많았어. 그 중 공감이 제일 많이 갔던 부분은 마지막 부분이야.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선택에 대해 많이 돌아보게 된다’는 말과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이 든다’는 부분 말이야.
2020년과 2021년을 지나는 겨울에 한국에서 한 삼 개월 있었거든. 그 뒤로 다시 독일로 돌아가면서 글을 하나 쓴 적이 있어. “미련”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나와.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한 선택이 과연 나에게 좋은 선택이었는지. 주위의 나무들이 시드는 지도 모른 채 눈앞의 태양만 쫓다 나중에서야 시든 나무를 보면 후회가 많이 될텐데…” “5년만 버티자고 마음을 다 잡는다. 그럼에도 이별은 힘든 일이다. 이별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생길 수 있는 다른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슬펐다.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처음에 독일에 왔을 때는 굉장히 재밌었던 것 같아. 새로운 나라,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친구.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땐 나의 선택에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새로운 곳에 가는 게 무섭기는 했어도 굉장히 설렜거든.
지금은? 지금은… 잘 모르겠어. 몇 년 전부터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이 곳에 온 게 잘 한 선택인 걸까? 이 질문은 참…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마다 숨이 턱 막혀. 이 선택은 누가 강요해서가 아닌 ‘내’가 내린 선택이었으니까 말이야. 이런 선택을 한 나를 가끔은 살아있지 못하게 죽여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근데 그게 또 나라서 어쩔 수가 없더라. 내 내면 깊숙한 상자에 나에 대한 화, 혐오, 분노, 악 이런 나쁜 감정들을 다 구겨 담고 그냥 방치하는 중이야. 시간이 지나면 희석될까 바라면서.
2020년과 2021년은 나에게 힘든 해였던 것 같아. 그때도 내가 힘든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내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나 보더라고. 선택을 후회한다라는 글을 처음으로 남길 정도로 말이야. 그때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정말 크다는 걸 피부로 깨달았지.
그래서 그런지 네가 생각하는 게 정말 이해가 많이 갔어.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월을 많이 놓쳤고 또 놓치고 있거든.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또 놓치게 될 거고.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생각이 잘 안 되더라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곳에서의 생활 또한 이미 나의 한 일부가 되어서 이 길을 가지 않은 나를 또 상상할 수가 없는 거야.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랄까.
그래서 이미 늘 앞의 글들에서 얘기해 왔다시피 그냥 생각을 안 해. 나 스스로를 덜 찌를 수 있게 하는 방어기제 같은 거야. 단순하게 살 수 있게 말이야. 그래도 그 감정을 알아서일까. 글 밖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네 마음을 생각하니까 괜히 나도 마음이 좀 찡 하더라.
예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뭐였을까 상상하면서 시를 쓴 적이 있거든.
마지막으로, 그 중 한 문단을 읽어 주고 싶어.
너희가 내딛는 한 걸음에
한 번의 축복과 한 번의 은총이
바라건데 함께 하기를.
쿙가
관계의 공백
답글을 쓰기가 굉장히 어려웠어. 내가 뭐라고 다른사람의 외로움에 대해 말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이 글이 누군가에게 더 외로움을 주는 글이 아니길 바라면서 쓰기 시작하고 있어. 너의 글을 읽으면서 네가 너무 많이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의 적개심에 노출되거나 주위 사람들의 무관심함에 괴로워하는게 아니라서 우선은 다행이라는 생각, 그럼에도 많이 힘들겠지 하는 생각 등등 이 스쳐지나갔어.
관계의 공백에서 오는 공허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항상 고민했던 것 같아. 나도 너처럼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가족을 떠났고 그 이후로는 계속 그리움이나 외로움에 허덕였었어. 한 번 그런 감정에 빠지고 나니까 다시 가족들을 만나도 외롭더라. 시간 날 때마다 집에 갔는데 그게 행복하면서도 이 이후에 올 외로움이 너무 사무치는거야. 한 번 생긴 공허함은 어떻게든 해소가 안 되더라.
그 외로움을 채워준건 교환학생을 갔을 때 만났던 친구들이었어. 가족과의 거리에서 생긴 공백을 그 친구들이 넘칠정도로 채워줬고,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우정으로 나를 이렇게 사랑해줄 수 있구나 처음 배웠었어. 그런데 그 친구들은 다들 다른나라 사람들이라서 일 년만에 다 뿔뿔이 흩어지게 된거야. 이 친구들이랑은 앞으로 평생 이렇게 다 같이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수 없을거라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어. 내가 그 교환학교를 마지막으로 떠난 학생이었는데, 제일 마지막 친구를 배웅하고나서 공항에서 혼자 울면서 집에 갔어.
지금 생각하면 그건 너무 좋은 추억이었으면서도 되새기고 싶지 않은 감정이기도 해. 그 이후로 가족과 한국에 있으면 이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외로웠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슬펐어. 앞으로 난 평생 어딜가든 이렇게 외롭겠지. 나는 이제 어디에서든 그리움을 안고 살겠지.
난 진짜 평생 어딜가든 외롭게 살게 될 거야. 근데 그 어느 곳에서도 혼자가 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떠나버린 관계에서 생긴 공백을 새로운 사람들과 채우고, 그들과 헤어지면 또 그리움과 외로움을 겪으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거야.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한 번 떠나본 사람들은 외로워하면서도 계속 떠나게 되는 것 같아.
이번 주제로 글을 읽고 쓰면서 묵혀놨던 기억을 꺼내는데 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나서 너무 슬펐어.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들을 겪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생각도 모습도 변해가는데, 우리 가족은 내가 떠나고 난 빈자리를 어떻게 매웠을까? 내가 한국을 떠나면서 슬퍼했던 내 친구는 그 공백을 잘 채웠을까? 나의 부재가 익숙해졌을까? 내가 없다고 힘들어하지 말고 그저 보고 싶은 정도로만 나를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 이제 돈도 제대로 벌기 시작했고 휴가도 많이 받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또 너무 보고 싶어하지도 말고 기다려 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