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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가 Jun 07. 2022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아주 보통의 행복”

오이기


킵미컴퍼니에 합류하고 나서, 친구들이 작성해놓은 주제 후보 목록을 보던 중 한 주제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싫어했던 일'. 그 주제를 보자 최근 읽었던 책에 나왔던 내용이 생각났다. 한국에서 엘살바도르로 출국하던 날 공항 서점에서 샀던 책이었다. 2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을 때우기 위해 가볍게 읽으려 산 것이었다. “아주 보통의 행복” 심리학과 교수님이 쓴 행복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수록된 책으로, 각 주제별로 5~10페이지에 불과해 비행기에서 졸다가 깨다가 하며 읽기에 적절할 것 같았다. 출국 직전에 산 이 책은 내가 가져온 몇 권 안 되는 한국어 책이었고 지난 3개월간 읽고 또 읽은 책이었다. 그래서 이 주제를 보자마자 이 책이 생각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싫어했던 일'이라는 주제를 보고 내가 떠올렸던 이 책의 부분은  ‘행복 천재들은 좋아하는 것이 많다’이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서 행복에 관한 실험을 진행했다고 한다. 실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각각 1분 동안 자유롭게 적어서 낸다. 그런 뒤 각 참가자가 현재 느끼는 행복의 정도를 측정한 다음 참가자들이 주어진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것을 적었는지, 얼마나 독특하고 구체적인 것을 적었는지 살펴보았다고 한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행복감이 높은 참가자들일수록 좋아하는 것을 많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그 범주도 넓고 구체적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그냥 ‘음악 듣기'가 아닌 ‘한적한 버스에서 음악 듣기'와 같이 말이다. 반대로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과가 역전되었다고 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싫어하는 것을 많이 적어내지 못했지만, 행복감이 낮은 사람은 싫어하는 것을 더 많이 적었다고 한다. 행복한 사람들의 머릿속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행복감이 낮은 사람은 싫어하는 것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싫어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우리의 머리가 내가 싫어했던 일이 무엇이 있었는지 고민하면서 곱씹으면서 싫어하고 힘들었던 것들이 가득 차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했는지를 떠올리며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얘들아, 너희는 무엇을 좋아하니? 1분을 줄게. 우리 한 번 써 내려가 보자!








오이기


내가 1분 동안 적어서 낸 것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출근 전 커피를 내릴 때   

     공원을 산책할 때   

     한국과 시차가 잘 맞지 않는 시간에 전화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20개월 조카가 자지 않고 깨어있어 화상통화를 할 수 있을 때   

     내가 만든 음식과 빵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때   


나는 이미 책을 읽은 후에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았기에 다른 친구들과 출발점부터가 다를 수 있다는 점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을 포착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최근에는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조금은 우울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소소하게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집중하지 않았을 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매일같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행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를 찾아와 주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리스트에 적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혹은 행복감을 느꼈던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엘살바도르 회사 출근 시간은 오전 8시인데, 교통체증이 심해 제시간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7시 20분에는 집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 보통은 5시에 잠에서 깨어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준비를 마치고 시간이 좀 넉넉하게 남은 날은 출근해서 마실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여유롭게 내릴 수 있다. 하루는 커피콩을 갈고 물을 끓이고 있는데 문득 내가 지금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아침에 오 분만, 십 분만 더 자고 일어나야지 하면서 알람을 미루다 가도 얼른 준비해서 커피 내려서 출근해야지 하는 생각에 일어나게 되곤 했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곳에서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연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있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주말이면 훌쩍 어딘가로 종종 떠나기도 하지만, 주중에는 주로 공원을 찾는다. 공원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냥 걷는다. 유난히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진 날은 커피 한 잔을 들고 공원을 조금 걷다가 출근하기도 하고, 퇴근을 했는데 교통체증이 너무 심해 집으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을 때는 공원에 가서 조금 한가한 시간이 찾아오길 기다리기도 한다.


한국과 엘살바도르는 시차가 무려 15시간이다. 아침 6시에 전화를 하면 한국은 이미 저녁 9시이고 퇴근을 하고 저녁 6시에 전화를 하면 한국은 이미 아침 9시로 출근 시간이다. 때문에 아침에 한국에 전화를 하면 친구들과 가족들은 깨어있어 그래도 괜찮지만, 딱 예외의 인물이 하나 있다. 이제 막 20개월이 된 나의 조카. 어린 조카에게 저녁 9시는 이미 잠들어 있을 시간으로 전화를 해도 아이의 얼굴은 보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조카가 생후 4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출국했고 1년 동안 그곳에서 일했다. 그리고 한 달 남짓 한국에서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다시 엘살바도르에 나온 것이니 조카가 나를 본 시간은 인생을 총 합쳐서 5개월 정도. 첫 4개월은 아이가 기억할 수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의 휴가 기간 동안 아이는 그동안 핸드폰 화면에서만 화상통화로만 보던 인물이 현실세계로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잠시 존재하다가 다시 핸드폰 속 인물로 돌아가버린 이모를 어색해하는 것 같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가끔 아침에 전화를 하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조카가 깨어있을 때가 있다. 나보다는 핸드폰을 보고 만지는 것을 허락받아서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반갑게 화면에 인사를 해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녹아내린다. 어쩌면 그리도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요리와 제과제빵은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이다. 자취를 시작한 지는 오래이니, 요리 역시 시작한 지 오래되었지만, 제과제빵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새로 얻게 된 취미이다. 커다란 오븐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어, 안 쓰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베이킹인데 이제는 베이킹이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요리는 해도 사람들과 나누기 힘든데 반해, 베이킹은 그렇지 않다. 요리는 집으로 초대해야 하지만, 베이킹은 집에서 구워서 회사로 가서 나눌 수도 있고, 옆집 문을 두드려서 나눌 수도 있다. 말랑말랑 폭신한 반죽을 만지는 것도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는 것도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고는 한다. 예전에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의 결론이 기억난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모든 껍데기를 벗겨내면 행복은 결국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The rest are details.” 나머지 것들은 주석일 뿐이다.’




융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

- 누워서 책 읽을 때

- 유튜브로 다큐 볼 때

- 코딩 힘들지만 다 하고 났을 때

- 공원에 앉아서 바람맞으며 밥 먹을 때

- 시 고민하고 다 썼을 때 뿌듯한 감정

- 오래 잘 수 있을 때

- 아무 생각 안 하고 누워 있을 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평소에는 자주 생각하지 않는 주제다. 있으면 있는 대로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인생이라 행복이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저번 모임 시간에 행복에 관련해 나눴던 대화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오이기는 본인이 읽었던 책 “아주 보통의 행복”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 책에 나온 실험 또한 설명을 해 주었는데, 일 분 안에 더 많이, 더 자세히 쓸수록 행복한 사람이다 라는 실험이었다. 우리 또한 지나칠 수 없어 일 분을 주고 각자 써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나는 내가 일 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저 정도로 답변을 할 수 있었던 게 참 신기했다. 평소에 단조롭게 사는 것 같았는데 한 순간순간을 들여다보니 내게도 행복이란 단어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그 이후, 행복이라는 주제에 맞춰 어떤 글을 써 내려갈까 고민하던 차에 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 나온 한 사람은 말했다.

“때로는 누군가가 나를 도울 수 있게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


영상은 굉장히 짤막했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생각해 보니 나는 누군가를 돕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듯했다. 큰 도움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기뻐한다.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내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나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마다 존재의 의미가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분이 든다. 메말랐던 살갗에 잠시나마 물을 적시고 그 순간만큼 충만함을 느끼고.


이렇다 보니 나는 늘 주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하나를 받으면 두 개를 줘야 직성이 풀렸고, 가끔은 받는 것을 과도하게 거부했다. 나의 힘듦을 나누는 것이 마치 나의 존재의 의미에 음수를 더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주제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해 보는 것이지만, 저 짤막한 말은 나의 행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 또한 생각해 보게 했다. 내가 남을 도움으로써 행복과 충만함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도움을 받는 것을 진저리 치게 싫어했던 나는 과연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나눠줄 수 있던 사람이었을까?


나의 행복만큼 다른 이들의 행복도 중요하다면 가끔은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베푸는 것보다 가끔은 베풂을 잘 받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 늘 생각해 왔지만, 참 실천하기 어렵다.   




숨숨


처음 이 주제를 보고서 나는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니… 평소에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막상 1분의 시간이 주어지고 리스트를 써 내려가라고 했을 때는 머리가 마비된 것 같았다. 


- 밥 먹으면서 일상 브이로그 보기

- 카페에서 멍 때리기


하루에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나 많은데, 막상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무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구체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떠오르지 않아서, 이번 주제는 내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꼭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삶의 활력이 생긴다는 건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인 것 같은데, 정작 나는 그런 게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즐겁게 지내고 있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는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요즘 내가 삶이 무료하다고 느껴지는 건 어쩌면 나조차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몰라서 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저 리스트를 적 고난 후에 스스로도 참 많은 생각을 했고 실망할 게 아님에도 나 자신에게 실망을 했다. 뭔가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걸 알지만 문득 생각나는 게 없어서 좀 속상하다. 나도 저 책을 한 번 읽어보면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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