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여행 계획 #1
페루로 마추픽추 보러 가는 건 엄마와 나의 버킷리스트이다. 어렸을 때 사회 교과서에서 마추픽추 삽화를 본 이후로 막연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역사 유적지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라기보다는 페루는 너무 먼 나라여서 훌쩍 떠날 수 없는 곳이라 더 기억에 남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엄마랑 우연히 마추픽추 이야기를 하다가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2025년에 엄마 정년 퇴임 기념으로!
그런데 숨숨이 곧 페루 리마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내가 먼저 한 번 사전 조사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엄마도 흔쾌히 동의해줬다. 그래서 날씨와 휴가 낼 수 있는 날짜, 다른 달보다 저렴한 비행기 값,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서 올해 11월에 놀러 가기로 했다. 페루는 독일과 날씨가 반대라서 11월에 가면 여름이 막 시작될 시기라 기분 전환에도 좋을 것 같다.
함부르크에서 비행기를 타려면 어디를 가든 KLM을 사용하는 게 제일 좋다. 스카이 스캐너에서도 늘 KLM을 추천해줘서 이제는 아예 KLM 앱에서 비행기 편을 검색해서 예약한다. KLM은 네덜란드 항공인데 전에 함부르크에서 한국을 갈 때도, 미국 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볼 때도 암스테르담 환승이 제일 저렴하고 무난했다.
비행기 값 : 왕복 560유로
여행 소요 시간 : 총 19시간
- (독일 함부르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1시간 5분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환승) 5시간 15분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페루 리마) 12시간 40분
그런데 암스테르담 환승시간이 조금 애매했다. 환승 시간이 1시간 10분이거나 아니면 5시간이거나. 둘 다 별로다. 그래서 페루행으로 가는 비행기는 만약을 대비해서 5시간 환승하는 비행기로 사고, 함부르크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1시간 25분 환승하는 비행기로 샀다. 다섯 시간 넘게 기다린 후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탈 걸 생각하니 좀 걱정되지만 여행 가는 길은 조금 힘들어도 다 헤쳐나갈 수 있다.
숨숨이 사기 안 당하게 스페인어로 숫자만 알아오라고 했다. 항공사 앱에서 체크인 시간이 134일이나 남아있다고 하는데 134일 동안 숫자 정도야 뗄 수 있을 것이다! 내친김에 스페인어 인터넷 강의까지 사놨다. 표지판 읽고 길 물어보는 정도까지 할 수 있도록 공부해 갈 예정이다.
나는 독일에 사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들고 새 회사도 너무 좋지만 11월의 우중충한 날씨와 회사에서 쏟아지는 이메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쁘다. 마추픽추는 숨숨이 살게 될 도시와 멀기도 하고 나중에 엄마랑 더 즐겁게 여행하기 위해서 안 가고 아껴두기로 했다. 수도 리마가 서울보다 면적이 네 배는 더 크다고 하니 2주가 조금 안 되는 일정에 리마 길거리 탐방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보카도 아이스크림 먹어보기이다. 안나가 페루에서 반년 동안 인턴 생활을 할 때 이야기를 몇 번 해줬었는데 그때 먹은 아보카도 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랑 같이 함부르크에 있는 젤라토 카페를 돌아다녔었는데 결국 못 찾았다. 단 한 곳 있긴 했는데 다른 과일 맛이랑 섞여서 색깔만 초록색이고 맛은 전혀 안 났다.
여행은 원래 가기 전, 그리고 나중에 돌이켜서 생각할 때가 제일 행복하지 않을까.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피곤하고 낯선 환경에 정신없으니까 말이다. 노동 비자 문제로 올해 상반기는 집에서 하릴없이 보냈고 입사한 이후로는 일에 적응하느라 너무 갑갑했는데 페루행 비행기를 산 순간부터 기운이 좀 난다. 말로만 듣던 남미를 간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