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7 | 복직 후 업무에 임하는 자세
복직한지 2달이 훌쩍 넘었다. 실리콘 벨리에 칼바람이 불었어도 내가 있던 자리는 다행이도 그대로 있었고, 팀원 중 한명이 내가 할 매니저 역할을 오랜 병가기간 동안 대신하고 있었다. 긴 공백기 였음에도 적극 지원해 준 매니저와 팀원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전 글에서 썼듯이 복직 후 스트레스 관리가 가장 큰 일이었다. 첫 1~2주는 팀원들과 천천히 1:1만 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팀원들이 각각 맡은 프로젝트와 가지고 있는 고충들을 하나씩 파악해 나갔다. 셋째주부터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 사항을 알아가고, 프로젝트에 관련된 대부분의 주변 동료들에게 업무 복귀를 알리면서 일이 예전만큼 금새 돌아와서 살짝 당황했다.
매니저와는 복직 후 한 달 뒤부터 내가 했던 일을 정상화 하겠다고 했으니 업무량이 다시 이전처럼 불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이전처럼 개인시간 없이 밤낮으로 일하고 싶지 않았는데, 셋째주에서 냇째주로 넘어가자 다시 이전만큼 일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스트레스 관리는 둘째치고라도 순간적으로 몹시 행복하지 않게 되었다. 일 예로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버거운데, 매니저로써 저성과자 여러명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나로써는 너무 아이러니했다.
우선 급한데로 핸드폰의 포커스 모드를 켰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회사에서 오는 모든 앱 알림(이메일, 채팅 등등)을 꺼버렸다. 그리고, 아내와 스포츠 센터를 매일 갔고, 요가나 스트레칭 프로그램들도 일주일에 두세번 다니기 시작했다. 운동 후에도 저녁시간을 가급적 가족과 보냈고 회사 업무는 최대한 들여다 보지 않았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회사업무를 제어했더니 행복감이 어느정도 돌아왔다. 그러고 났더니, 한발짝 물러나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를 이성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나는 어째서 회사일을 잘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고, 아내와 깊은 대화를 하면서 해답을 찾게 되었다.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들이 잘못되면 ‘가장 최악의 결과는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니, 회사에서 짤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나는 회사에서 짤리는게 두려운가?’ 였고, 그 대답은 ‘전혀 두렵지 않다’이다. 다른 의미로는 내가 여태껏 쌓아왔던 나의 경력을 버리기 아까운가?였고 전혀 아깝지 않았다. 병가 중에 이미 회사에 복귀하지 말까, 또는 완전히 다른 배움을 시작해 볼까라는 고민도 심각하게 한 터이기에 괜찮았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니 마음이 편해졌고, 행복감이 많이 회복되었다.
더불어 나에게 회사에서의 성공은 더 이상 인생의 목표가 아니고, 그 대신, 나의 행복과 건강이 인생의 목표로 변했기에 회사생활은 단순히 노동임금을 받는 곳으로 잘 정립되었다.
이전의 회사생활을 돌이켜 보면, 나의 역량보다도 큰 인정을 받길 원했고, 나의 설득력보다 동료들에게 많은 동의를 구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두려움과 욕심 없이 힘을 빼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필요로 하는 곳에만 가고, 가능한 만큼만 도와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다르게 임하니 오히려 여러가지 업무들이 잘 풀린다.
나의 메니저에게도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현재 나의 일들이 어느 순간에 부침이 생기면 매니저 보직에서 내려올 수 있다라고 미리 알려주었고, 이제는 두려움과 욕심 없이 힘을 빼고 일을 하고 있고, 더 이상 회사에서의 성공이 목표가 아니라고도 아야기 해 주었다. 매니저는 매우 놀라며, 자기가 알던 이전의 나는 항상 성공을 추구하고, 영역을 빼앗기기 싫어하며 등등의 모습이였는데, 180도 변한 나의 모습을 오히려 반가워 했다.
업무 복귀 전에 여러 지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잘 복직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을까?라고… 한분의 대답은 ‘열심히 하는척 하라’는 것이였다. 그러면 밖으로는 일하는 것처럼 보이고 안으로는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분의 대답은 ‘열심히 하는 척하면 누가봐도 티가 나니, 할 수 있는 만큼 하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라’는 것이였다.
내가 얻은 답은 열심히 하는 척도 아니고, 적게 일하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였다. 두려움을 제거하고 욕심을 채우지 않으면, 스트레스도 덜 받고 업무도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종합해 보면 외부적인 요인이나 어떤 기술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서 생겨나는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였다. 그 간 회사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조언은 수없이 들었음에도 내가 처한 환경과 채득된 경험이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깨우치기 어려웠던 것 같다.
2달이 훌쩍 지난 지금도 스트레스는 여전히 존재한다. 비지니스도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업무시간 역시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는다. 포커스 모드를 켜고 저녁에 업무를 안보고 싶어도, 바쁜 날은 한없이 바빠서 어쩔 수 없이 밤에도 새벽에도 업무를 본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더욱 더 알 길이 없다. 특히 매니저의 일은 사람과의 일이라 여러가지를 조율하고 방향을 설정하기에 항상 부딛힌다. 그래도 괜찮다. 마치 파도에 몸을 맡기면 출렁출렁 흔들흔들하듯 그렇게 몸을 맡기고 힘을 빼고 일한다. 마음은 편하고, 매사가 행복하다.
회사의 초기 포스터 중 하나는 ‘What would you do if you weren’t afraid?’ 이다. 드디어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두려움 없이 살아간다면, 진짜 나의 모습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