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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안다리 Dec 03. 2022

내가 그렸으니까 소중해

한 동안 한국에 잠시 가 있을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한국에 가면 뭘 하지? 

이것저것 리스트를 만들어 보다가 

그림!  

그림을 배워보고 싶었다. 그때는 친정집이 아파트였었다.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 붙어 있는 주민센터 문화 강좌를 쫘악 훑어봤다. “수채화” 가 눈에 딱 들어온다. 

마침 수강 신청 기간이고 나라에서 하는 강좌라 그런지 아주 저렴했다.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안 가는 거지만 어차피 아기 키우느라 바쁘기도 했었기 때문에 잘 됐다고 생각하고 당장 가서 신청을 했다. 

처음 강의를 들으러 가는 날 뭘 가져가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얼마나 설레던지. 


수채화 반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5-6명 정도의 학생과 선생님이 다였다. 

급한 대로 연필 한 자루 쥐고 간 나에게 반 학우들과 선생님은 친절하게 준비물을 알려주셨고 나는 당장 동네 문방구에 나가서 급한 대로 스케치북과 미술용 연필 지우개를 사들고 교실로 돌아왔다. 

다른 분들은 이미 오랫동안 배우신 분들 이어서 인지 수준급으로 잘 그리시는 분들이 많았다. 

선생님의 코칭 아래 그림을 그리다가 끝나기 10분 전쯤에는 각자가 그날 그린 것들을 가지고 앞으로 나와서 서로의 그림을 감상하고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수채화 수업에 나는 곧 매료되었고 집에서도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짐짓 좋아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수채화에 몰두하면서 남편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기 시작해서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느라 혼자 행복한 나를 보는 게 자기한테도 이득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몇 달간 수채화 반을 다니면서 왕초보인 나의 끄적거림도 조금씩 그림 같아졌다. 

처음에는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꽃, 토마토, 파프리카 등등 그냥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그려 보았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닌 것 같다. 

좋은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피 터지는 노력이 필수적일 것 같은 실력이었다. 


어느 날 봄이라 목련이 너무 예뻐서 목련 두 송이를 그리고 나름대로 집에서 열심히 색칠을 해 보았다. 

초보이지만 열심히 잘해서 수업 날 가져가서 짠! 하고 제자가 성장했다고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서 거실 TV 옆에 세워 두고서 거실 저 끝에 가서  그림을 보았다. 

선생님이 항상 그림은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그런데 이것도 맘에 안 들고 저것도 별로고 너무 엉망진창 부끄러운 작품으로 느껴진다. 


그러다가 아! 아니지! 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그렸으니까 소중한 거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거야”


다른 기준으로 봤을 때는 초등학생 수준이라 할 만한 실력이겠지만  그래도 이 그림은 가치 있는 그림이다. 


내가 그렸으니까. 

나의 혼을 담아낸 내 작품, 내 자식이니까. 


그 자체로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나는 내 그림을 좋아해 주기로 결정했다. 


왜냐면 내가 그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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