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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안다리 Jun 10. 2023

필요한 존재와 필요 없는 존재

태국에 오래 살다 보니 파충류들과의 동거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태국의 모든 집에는 하우스 게코라는 작은 도마뱀이 살고 있다. 

이 도마뱀은 덩치가 작고 약간 투명한 베이지 색이다. 

집안에 살면서 주로 벽이나 천장에 붙어 다니면서 벌레들을 잡아먹는다. 


차라리 바퀴 벌레를 잡으라면 잡겠지만 이런 파충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이다. 

파충류와 접촉했을 때 그 촉감이 몸서리 처지게 싫다.

게코 도마뱀과 태국에 와서 함께 살게 되었을 때 

갑자기 여기저기서 툭! 툭! 튀어나오는 도마뱀 때문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떨 때는 싱크대 안에 들어가 있고, 세탁기 안에도 들어가 있다. 

하지만 파충류 만지기를 너무 싫어하는 나는 그럴 때마다 도움을 요청해서 끄집어낸다. 

도마뱀 때문에 깜짝 놀라서 꺅! 하고 소리를 지르면 남편이 달려와 "왜 그래?" 한다. 


“도마뱀이 갑자기 나와서 놀랐어” 


근데 태국인인 남편의 반응이 기가 막히다. 


“도마뱀이 어때서? 왜 놀라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그러면서 확 가버린다. 

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게코 도마뱀과의 동거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도마뱀을 보고 놀라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결혼해서 한국에 갔을 때 짐가방에 들어 있다가 나왔는지 도마뱀이 방으로 쑥 기어 나왔다. 

나는 태국에서 우리 짐에 들어갔나 보다고 했는데 

남편은 그냥 이 집에 있던 거겠지! 하면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의 집에는 도마뱀이 없다고 한참 설명을 하고서야 받아들일 정도로 

집 안에 도마뱀이 함께 사는 것이 태국인에게는 일상이다. 


도마뱀 때문에 하도 깜짝깜짝 놀라다 보니 남편에게 좀 다 쫓아내라고, 

죽이는 방법은 없냐 약을 놓을 수는 없냐고 물었었다. 

남편은 도마뱀을 왜 쫓아내냐고 놔두면 조용히 잘 있는데, 

모기도 잡아먹어주고 얼마나 좋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태국에서 사는 한국인 부부 가정을 보니 

남편이 도마뱀이 보일 때마다 집 밖으로 쫓아내거나 죽여준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도마뱀이 없도록 해준다고 하니 

얼마나 부럽던지.. 

태국인 남편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모습이다. 


우리 집 주방 정수기 옆에도 도마뱀이 한 마리 사는데 

정수기 옆에 둔 도마나 쟁반을 꺼내려고 할 때마다 툭 툭 튀어나와서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창문을 열어서 밖으로 나가게 유인을 해보려 해도 늘 실패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방에 들어가 보니 이 도마뱀이 열심히 날파리를 잡아먹고 있었다. 

주방에 날파리가 생겨서 너무 귀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녀석이 잡아먹어주니 

순간 “고맙네!” 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어제 볼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가 약가 외진 곳에 있는 센터를 들렸는데 

들어가는 입구에 뱀 한 마리가 담을 타고 내려와 밑에 붙어 있는 게코 도마뱀을 노려보고 있다. 

아무래도 곧 공격할 자세인 듯했다.


‘어? 쟤 저러다가 잡혀 먹힐 것 같은데…’


순간 그 도마뱀이 불쌍하게 느껴져서 차를 세우고 뱀을 쫓아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들었으나 

뱀이 너무 무섭다..ㅠㅠ


그냥 차를 몰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 보니 뱀도 도마뱀도 안 보인다. 

잡아 먹힌 것인지 도망을 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필요 없는 존재라고 느껴질 때는 없애버리려는 생각만 했는데 

필요 있는 존재, 고마운 존재라고 느껴지기 시작하기 걱정이 되는 내 모습이 참 웃기기도 하다. 

주변을 좀 더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필요 없는 존재라고 느껴지지만 

언젠가 그 필요를 알게 되는 것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그 대상은 없어지기를 바라는 존재가 아닌 걱정되고 아끼는 존재로 변할 테니까.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필요가 느껴지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고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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