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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안다리 Jun 02. 2023

좁은 시야, 넓은 시야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고가 다리를 건너게 된다. 

그 다리에 올라 쭉 직진을 하면 우리 동네가 나오는데 

도시 외곽 도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직진도로를 빠르게 달린다. 

길 주변엔 큰 건물이 거의 없다. 

시내를 빠져나와서 그 고가 다리로 올랐는데 앞으로 쭉 이어진 길과 주변 모습이 한순간 눈앞에 한 장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갑자기 시야가 확 하고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내 안에서 주행을 할 때는 앞 차 꽁무니를 좇아가느라 바쁘다. 

출근 차량, 아이들 픽업 차량, 오토바이 등등 

차가 많은 시내 안에서 운전을 할 때는 좁은 시야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앞 차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오면 나도 곧 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니까. 

그러나 시내를 빠져나와서 외곽 도로로 오고 나니 차에 속도도 나고 시야도 훨씬 넓어진다.


인생을 바라볼 때도 그런 거 같다. 

때로는 좁은 시야로 바라볼 필요가 있고, 

때로는 넓은 시야로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다. 


몇 주 전 남편은 3개월간 일과 관련된 훈련을 받기 위해서 다른 나라로 떠났다. 

3개월이나 남편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처음 있는 일이고 생소하다. 


어떤 어려움들이 있을까? 

우선은 아이들 픽업이 가장 문제였는데 

중학교에 아들이 진학했기 때문에 딸의 초등학교와 아들의 중학교까지 

두 개의 학교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려야 한다. 

다행히도 이 두 학교는 가까이 있긴 하지만 아들 학교 근처는 여러 개의 학교가 같이 있어서 

그야말로 픽업 전쟁이다. 


혹시나 차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다. 

자동차 보험도 곧 끝나는데... 

이런 모든 일들은 남편이 처리해 왔기 때문에 나 혼자서 보험 연장을 하러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좀 넓은 시야를 가져 보기로 했다. 

이 훈련은 남편에게 필요하고 3개월간 남편이 부재한 시간 동안 우리가 곧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나의 운전 실력인데 

뭐… 해보지 뭐!!


그래서 남편에게 이 훈련에 참여하라고 격려했다. 

이 훈련을 통해서 남편은 더 단단하고 발전되어서 돌아올 테니까.


남편은 떠나기 전에 친구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생겨서 내가 전화를 할 수도 있으니 잘 도와주라고.

그렇게 남편이 떠나고 나서 바로 자동차 타이어 뒷바퀴가 터졌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급하게 달려와 스패어 타이어로 갈아주었고 

나는 카센터에 가서 차를 수리하고 타이어를 갈았다. 


그리고 이틀 뒤에 차 앞쪽에 새끼고양이가 들어갔는데

 고양이 혼자서 나올 길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난감해하는데 옆에 지나가던 차를 불러 세웠더니 

아저씨 한 분이 내려서 고양이를 끄집어 내주셨다. 휴우.. 


혼자서 보험회사에 가서 보험 연장도 했다. 

아들에게 번잡한 학교 근처보다는 큰길로 좀 걸어 나오라고 해서 픽업을 좀 수월해지게 만들었다. 

몇 달 전까지 여자 지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운전을 못하던 나는 

지금 매일 하루 세 시간 이상 운전을 하면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주차는 아주 엉망이지만..)


남편의 빈자리는 비교적 컸지만 그래도 우리는 꽤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이 부재한 이 시간은 인생의 아주 짧은 순간일 뿐.. 


삶을 바라볼 때 좁은 시야와 넓은 시야를 적절히 활용해야겠다. 

좁은 시야로 당장 내 앞의 일들에 급급해 있을 때는 

넓게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여유를 놓칠 수 있다. 


때로는 좁게, 때로는 넓게 

삶을 다양한 시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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