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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 Aire Aug 20. 2020

결혼 1년, 29살, 서울 아파트, KFC 치킨

<제12편> 중소기업 월급쟁이, 강남아파트 투자로 조기은퇴하다

그렇게 8층 급매물을 확인하러 퇴근하고 바로 달려갔다. 종로3가역에서 지하철 3호선으로 갈아타서 홍제역에서 내렸다. 회사에서 지하철로 6 정거장이다. 종로3가역에서 갈아타는 데 좀 오래 걷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아내도 경복궁역에서 지하철을 탄다면 3 정거장 밖에 안 된다. 6분이면 지하철에 타서 빈자리 있나 한번 살짝 돌아보고 바로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2번 출구로 나와서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오, 이 동네는 KFC도 있고, 롯데리아도 있네. 완전 번화가네’


퇴근하고 집에 갈 때 치킨 사 가지고 가는 내 모습이 보였다. 건물마다 한의원 간판이 있고, 큰 약국도 많았다. 전통시장도 있고, 뉴스에서 본 유진상가도 보였다. 유진상가를 지날 때 차가 막혀서 20분도 넘게 걸렸다. 내부순환도로 진출입로가 아파트 가는 길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차량들이 뒤엉켜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7시가 넘어서 부동산 사장님을 만났다. 아파트 입구에서 8층 물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집을 봤다. 28평인데 거실 폭이 무려 4미터가 넘어서 30평대처럼 보였다. 방도 3개나 되고, 어두웠지만 베란다에서는 인왕산도 보였다. 같은 단지 24평 실거래가와 1,500만원 밖에 차이가 안 났다. 24평보다 28평을 사는 게 이익 같았다.


하지만 계약금을 넣은 매수인으로부터 계약 포기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했다. 사장님은 3층 물건도 있으니 한번 보라고 했다. 가격은 2억 3,000만원. 그냥 정상 시세였다. 만기까지 1년 남은 세입자가 전세 1억 1,000만원에 살고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안 볼 이유는 없었다.


“여기 같은 동에 우리 아들이 살고 있거든. 최근 수리를 했으니 참고 삼아서 아들 집도 한번 보여 드릴게요.”


사장님을 따라서 들어갔다. 며느리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매끈한 싱크대 인조대리석 상판 위에는 사장님 아들 부부가 직접 만들던 초콜릿이 놓여 있었다. 베란다를 확장해서 8층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이중 유리가 장착된 브랜드 샷시가 좋아 보였다. 이 정도면 지금 우리집처럼 결로랑 곰팡이는 없을 것 같았다. 안방에는 붙박이장도 설치되어 있었고, 움푹하게 들어간 욕실 천정은 공간을 더 넓게 보이게 한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3층 집을 봤다. 수리가 전혀 안된 기본 상태였다. 이상했다. 이 집 위에 인테리어 공사를 한 이후의 모습이 환하게 그려졌다. 기본 상태라서 수리하기에는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1,000만원이면 싹 수리할 수 있다는 사장님 얘기도 귓가에 울렸다.   


‘이래서 일부러 수리된 집을 먼저 보여줬구나.’


시간도 늦었고, 더 기다려도 8층이 바로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8층 매수인이 다시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실망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직장도 가깝고, 가격 대비 넓은 평수에, 개발 호재도 있어 보이는 아파트였다. 내부순환도로와 떨어져 있어서 고가도로 소음도 없는 동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정한 예산에 딱 맞았다. 급매는 아니었지만 3층이라도 잡고 싶었다. 수리비 명목으로 500만원이 조정되었고, 매도인을 만나서 계약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500만원을 더 깎았다. 결국 2억 2,000만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첫 집이었다. 그것도 아파트를 샀다. 결혼 1년 만에 서울 아파트를 샀다. 29살이었다. 이제 세입자가 이사 가는 1년 후에는 저 멋진 아파트에서 KFC 치킨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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