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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 Aire Aug 23. 2020

부자가 되기 위해 아파트 다주택자가 되어야 했다

<제15편> 중소기업 월급쟁이, 강남아파트 투자로 조기은퇴하다

싸늘하다. 집주인의 차가운 말투가 가슴에 내려와 꽂힌다.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이 순간, 부동산 사장님 마저 집주인 편으로 돌아선 듯하다. 도와달라는 내 눈빛을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사장님은 정수기 앞에서 믹스 커피만 타고 있다.




수많은 매물을 봤고, 계약 직전까지 협상도 많이 했다. 이제는 부동산에 전화해서 몇 마디만 하면 오히려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실례지만 어디신데요? 부동산이세요?’


부동산 내공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집도 안 보고 당장 계약금을 보낼 것처럼 얘기하면서 일단 500만원은 깎고 시작했다. 집을 본 후에는 이러 저런 트집을 잡아서 수리비용 명목으로 1,000만원 정도는 추가로 깎은 게 가능했다. 거래 성사를 눈 앞에 둔 상기된 표정의 부동산 실장님들의 심리를 흔드는 데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매도인은 달랐다. 빈틈이 없다. 아쉬운 표정 하나 없이 거절을 했다.


“그럼 500만원만 깎아주세요. 세입자가 있어서 입주하려면 1년은 기다려야 하잖아요. 사장님, 원래 전세 낀 물건이 좀 싸지 않나요?”

“안 됩니다. 아시겠지만 지금 이게 최저가 매물일 겁니다.”

“아까 보니깐 싱크대 문짝도 너덜너덜하고 베란다 난간도 떨어져 있던데, 수리 좀 하게 그럼 딱 300만 빼주세요. 바로 계약금 보내드릴게요. 여기에 계좌번호 적어주세요.”

“안 됩니다. 베란다 난간 파이프는 관리실에 얘기해서 용접 좀 해달라고 하시면 되는 문제이고요.”

“저희가 정말 돈이 없어서 그래요. 100만원도 안 해주시나요?”

“저기,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깎아달라고 하시면 저 그냥 일어나서 집에 올라갈 겁니다.”


‘뭐라고? 집에 올라가시던지 내려가시던지 마음대로 하시던가요’


이미 기분이 상했다. 2억짜리 거래이니 100만원 정도는 서로 기분 좋게 빼줄 수도 있는 금액일 텐데 꿈쩍도 안 했다.


내 눈치를 보면서 사장님이 건넨 믹스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생각했다.


1층이기는 하지만 2억 1,500만원이면 싼 것 같았다. 전세 1억 1,000만원까지 들어 있으니 1억 500만원이면 살 수 있는 물건이다. 마지막으로 거래된 1층 실거래가는 1억 8,500만원이었다. 그 당시 로얄층은 3,000만원 정도 높았다.


현재 실거래 최고가는 2억 8,900만원이고, 남향 로얄층 물건의 호가는 3억이다. 그렇다면 1층의 시세는 2억 6천 정도면 적정한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브랜드 있는 대단지, 이 동네 대장 아파트이다. 첫 번째 아파트를 살 때 여기는 비싸서 포기했던 바로 그 홍은벽산 아파트였다.


홍은동에 계획된 재개발만 10여 개에 이르렀다. 조만간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로 바뀔 것이었다. 홍제천을 지나서 상명대로 향하는 경전철 계획 뉴스도 본 기억이 난다. 유진상가 개발이나 홍제천 복원 계획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다주택자에 대해서 한시적으로 양도세를 완화하는 특례법이 생겼다. 2009년 3월 16일부터 2012년 12월 31일까지 취득한 물건에 대해서는 추후에 언제 매도를 하더라도 양도세를 중과하지 않고 일반세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번 내 투자를 밀어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분은 좀 그랬지만 계약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계약 초기부터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기분이 싫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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