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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 Aire Aug 18. 2020

돈 없으면 아파트는 꿈도 꾸지 마세요

<제5편> 중소기업 월급쟁이, 강남아파트 투자로 조기은퇴하다

벌써 50권도 넘게 읽었다. 재테크 기초, 투자 마인드, 경매, 권리분석, 재개발, 토지, 부자 인터뷰 등을 담은 책들을 봤다. 내용이 비슷했다. 뜬구름 잡는 그럴싸한 조언들만 늘어놓은 것 같다. 그래도 책 좀 읽었다고 머릿속으로는 이미 투자 10년차 고수가 된 느낌이다.


이제 집을 보러 다녀도 될 것 같았다.


퇴근을 하고 거의 매일 저녁 집을 보러 다녔다. 집을 보러 다녀보니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아파트 수만큼 집주인들도 많다는 것을. 현관문을 열어주는 집주인들은 하나 같이 교양 있고 여유가 넘쳐 보였다.




처음 본 집은 마포역에 있는 한화오벨리스크 23평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이집트 파라오가 사는 집 같았다. 저녁 8시가 다 되어서 만난 부동산 사장님은 아파트 입구가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어서 비도 안 맞고 종로까지 출근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지하상가를 통해 아파트로 들어가는 입구가 조금 복잡했다. 보안이 철저해서 그런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마루가 깔린 거실이 있고 방 2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싱크대에 붙은 빌트인 세탁기가 좋아 보였다. 거실 창이 통 유리라서 햇빛도 잘 들어올 것 같았다.


‘여긴 빨래도 잘 마르겠지. 역시 고층이 좋네.’


부동산 사장님은 가격은 더 싸지만 평수는 더 큰 오피스텔도 보여줬다. 마포대교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부동산 책에서 오피스텔은 지분이 적어서 투자성이 떨어진다고 했던 내용이 생각났다. 역시 공부한 보람이 있네. 공부 안 했으면 그 오피스텔을 덜컥 샀을지도 모른다.


“아까 그 아파트 살까?”

“이제 처음으로 하나 봤잖아. 다른 것도 더 보고 결정하자.”

“방 2개면 둘이 살기에 충분하잖아. 거실 전망도 좋고”

“아파트를 처음 봐서 다 좋아 보여서 그럴 거야. 일단 집 100개만 보자. 그래도 여기가 제일 좋으면 그때 결정하게.”




아내 말이 맞았다. 두 번째로 본 아파트는 더 좋아 보였고, 세 번째는 더 좋았다. 보는 눈이 없어서 보는 대로 좋아 보였다. 아파트를 고르는 기준도 없었다. 집을 보고 내려오면 그 집 살림살이만 기억에 남았다. 집을 보는 게 아니라 이삿짐 견적 내러 다니는 거 같았다. 5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과연 뭘 봐야 하는지 몰랐다.


만 원짜리 옷도 거울에 비춰보고, 입어보고, 옆구리에 붙은 태그 뒤집어서 면이 몇 프로이고 폴리가 몇 프로인지 보려면 5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그런데 2억, 3억짜리 아파트를 5분 만에 휙 보고 살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다니. 이상한 방식이다.


미리 아파트 도면과 구조는 파악하고 집을 보러 간다. 그런데 부동산 사장님들은 여기가 거실이고요, 여기가 안방이고요 하면서 구조만 설명한다. 문 열어 놓으면 환기는 다 잘된다고 한다. 베란다 창을 조금 열어 놓으면 결로는 안 생긴다고 한다. 여름에는 에어컨 없어도 시원하고, 겨울에도 난방비 적게 나온다고 한다. 10년 된 인테리어 같은데 올수리라고 한다. 부자 되는 좋은 기운이 있는 집이라고 한다.


어제 봤던 사람이 계약금 보내기 직전이라는 말은 어디를 가나 듣는다. 같은 아파트를 꼭 나보다 하루 먼저 보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무슨 각본 같았다. 멘트가 거의 비슷했다.


현관문이 열리면 부동산 사장님들 10명 중에 10명은 나를 집 안으로 먼저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10명 중에 절반 정도는 내가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들어온다. 집을 보여주는 공식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공인중개사 실무 단계에서 배우는 매너 같은 것인가 보다.




아내 회사가 있는 노량진역 주변도 집을 보러 갔다. 동작구청 근처 부동산에서 매매 물건을 문의했다.


“예산은 얼마나 생각하시는데요?”

“2억 정도요.”

“대출 좀 받으시면 3억 중반도 괜찮으시죠?”

“대출 1억 포함해서 최대 2억인데요.”

“그 돈으로 아파트는 힘들고, 여기 빌라나 좀 봐요.”


그러고 나서 어두운 골목길을 돌고 돌아 경사진 붉은 벽돌 주택으로 안내했다. 지도 없으면 이 집에 다시 못 찾아올 것 같았다. 골목 가로등도 없다. 현관 바닥에는 전단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계단 몇 개 올라가는 1층에 들어갔다. 좁다. 신발 놓을 공간도 제대로 없다. 방 2개 빌라인데 2억 3천이다. 저녁에 늦게 오면 주차할 자리는 없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마포 전셋집보다 못하다. 다시 언덕을 내려오는데 미리 찍어뒀던 아파트가 보였다. 신동아 아파트였다.


“사장님, 여기 아파트는 얼마쯤 하는데요?”

“거기? 제일 작은 게 3억 5천은 줘야 해. 그것도 1층이야.”

“한번 볼 수는 있어요?”

“지금 시간이 늦어서 안 되지. 아까 본 빌라도 괜찮아. 이 동네 주차되는 집은 더 비싸.”


돈 없다고 집도 안 보여주는 거 다 안다.

여기는 안 되겠다. 아내 눈치를 봤다.


“집이랑 회사랑 너무 가까운 것도 좀 그렇잖아?”

“그래. 집 가까우면 맨날 야근시킬 거 같아. 집에 가서 밥이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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