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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 Aire Aug 18. 2020

아파트를 보러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에 가봤어야 했다

<제6편> 중소기업 월급쟁이, 강남아파트 투자로 조기은퇴하다

부동산 책에서 재건축 아파트 투자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서 오래된 서대문구 아파트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3호선 무악재역 앞 저층 아파트인데 매매가는 2억 1,500만원이었다. 60년도 후반에 지어졌기 때문에 조만간 재건축이 되지 않을까 해서 공부할 겸 보러 갔다. 집을 보여준 여자 사장님은 잠깐 사무실에 가서 상담을 하자고 했다. 사무실에 따라가니 키가 큰 남자 사장님이 한 분 더 계셨다.


“젊은 신혼부부가 집을 보러 다니는 거 보니 참 좋네요.”

“근데 아까 그 집은 너무 오래된 거 같아요. 당장은 입주할 형편이 안 되어서 전세 놓아야 하는데, 전세가도 너무 낮은 거 같고요.”

“좀 그렇기는 하죠? 저렇게 오래된 아파트보다 새 아파트를 사는 건 어때요?”

“돈이 없어요.”

“마포구 용강동이라고 들어 봤어요? 거기에 새 아파트를 짓는데, 1억이나 싸게 잡을 수 있는 물건이 마침 나왔거든.”


두 분은 한강과 어우러진 멋진 아파트 조감도도 보여주고, 스크랩해서 오려 놓은 신문 기사도 보여 줬다. 많이 들어본 건설사의 아파트였다. 대물 부동산이라는 알 수 없는 설명도 했다. 특별 분양가 혜택을 받으려면 조합원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 조합에 가입을 해야 하는데, 가입비는 2,000만원이었다. 남자 사장님은 본인도 2개나 가입했다며 표창장 같이 생긴 코팅된 가입 증서를 보여주었다.


“자, 여기 봐요. 저도 가입했고, 제 동생도 가입했잖아요.”

“여기 회사에서 완공할 때까지 보증도 해줘서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문의 전화가 많아서 서둘러서 결정해야지, 안 그러면 이거 금방 놓쳐요.”

“아직 젊어서 청약 점수 얼마 안 되죠? 이건 청약 통장도 필요 없거든.”


사장님 두 분의 현란한 물건 소개에 정신이 없었다. 갑작스러웠다. 일단 가입비를 내고 조합원만 되면 일반 분양가 대비 1억이나 싸게 살 수 있다고 한다. 1억이면 우리가 5년은 모아야 하는 큰돈이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찾아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한강변의 새 아파트라. 그것도 32평이나 되는 큰 아파트라니.


벌써 밤 9시가 넘었다. 퇴근하고 바로 오느라 저녁도 못 먹어서 배도 고팠다. 당장 2천 만원도 없었다. 계약은 내일 오후에 다시 와서 하기로 했다.


다음 날, 오후 반차를 사용하고 회사를 나섰다. 들뜬 마음으로 수표를 준비했다. 아내는 휴가를 낼 수 없어서 혼자 그 부동산으로 향했다.


‘새 아파트를 살 수 있다니. 역시 저녁마다 그렇게 집 보러 돌아다닌 보람이 있구나.’


약속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아직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다른 부동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도 때울 겸 들어갔다.


“사장님, 저쪽 부동산에서 용강동 아파트 얘기를 하던데, 그 내용 아세요?”

“용강동? 지역주택조합 그거?”

“지역주택조합이요? 그게 뭔데요?”

“구청에 문의해봐요. 그게 제일 정확하지.”


마포구청에 전화를 했다. 지역주택조합에 관해서 알고 있는 직원이 있으면 바꿔달라고 했다. 지역주택조합은 인근 주민들이 조합을 만들고 토지 소유주들의 동의를 얻어서 그 주택들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 것이다. 좋은 취지이기는 하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문제는 사업이 지연되는 사이에 돈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약속 시간이 넘자 그 부동산에서 전화가 빗발쳤다. 전화를 받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손으로 32평 아파트를 날린 것 같았다. 그냥 계약할걸 그랬나. 설마 뭐 잘못됐을까. 남자 사장님 인상 좋아 보이던데.


그 뒤로도 집을 계속 봤다. 첫 집을 사기 전까지 100채를 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단 많이 봐야 보는 눈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목표한 100채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집 보러 가면 예전처럼 살림살이만 보고 나오지 않는다. 방구석구석 천장과 몰딩을 보면서 누수 흔적이 있는지 가장 먼저 살피고, 앞뒤 베란다 벽과 샷시 주변에서 결로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해본다. 누수와 결로 상태는 집값을 깎을 수 있는 중요한 협상 요소이기 때문이다. 외부 샷시의 연식을 가늠해 보고, 실리콘 마감 상태를 점검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빗물로 인한 누수 발생의 원인 지점이기 때문이다. 외벽에 생긴 크랙은 관리실에서 보수하지만, 외부 샷시 실리콘은 집주인이 해결해야 한다. 옥상에서부터 줄을 타고 내려와서 시공해야 하기 때문에 수리 비용이 저렴하지는 않다. 거실 베란다를 확장한 집이라면 확장된 부분의 바닥에 난방이 되는지 체크한다.


싱크대 하부장 안에 있는 수도관과 욕실 세면대 하단 수도관에 누수 등 이상이 없는지도 확인한다. 욕실 벽과 바닥에 새로운 타일을 덧붙여서 인테리어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욕실 문턱과 욕실 바닥의 높이 차이가 5센티 이상 여유가 있는지도 확인한다.


욕실 문 안쪽 상태는 반드시 확인한다. 물에 젖어서 썩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욕실 문만 교체하면 다른 방과 어울리지도 않고, 자칫 문틀까지 다시 맞춰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공사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집주인 인상이 좋아 보이면 눈치껏 싱크대와 화장실 수압을 확인한다. 도배, 장판, 마루, 싱크대 상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인테리어 공사는 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강남만 빼고 집을 봤다. 마치 일부러 피한 것처럼 강남만 빼고 집을 알아봤다. 그때 강남을 가봤어야 했다. 강남구를, 서초구를, 송파구를 가봤어야 했다. 사지는 못해도 강남 아파트 구경이라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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