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길. 앞서 가는 가족의 막내 아이 선에 무언가 들려있다. 애착 인형이겠거니 하고 보니 초록빛 수건. 꼭 들고 다니는 걸 보니 애착 수건이 맞는 듯한데... 애착 담요를 끼고 살던 라이너스를 만난 듯 신선했다.
조카들이 애착 인형과 함께 잠드는 걸 봐왔으니 애착템을 만나는 게 그리 새로운 건 아닌데 애착 수건은 또 느낌이 달랐다. 아이의 나이 이상의 연장 타월이어서인지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실밥 좀 튀어나오는 게 무슨 상관이겠나. 아이에게 만족감을 주고 있을 텐데...
아니 만족감을 주는 게 맞을까? 어디서 피어오르는지 근원도 알 수 없는 작은 불안감이 결핍 수건을 만든 건 아닐까? 애착과 결핍을 또 나누려고 하는 걸 보니 내 나쁜 버릇이 튀어나오나 보다. 조금씩 예단하고 미리 머릿속에 잔뜩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는.
아이는 수건이 전하는 부드러움, 따뜻함에 마음을 열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익숙하게 이어가고 있을 뿐일 텐데 거기서 또 결핍을 떠올리다니. 두 아이와 함께 떠나는 4인 가족의 평범한 일상은 결핍이 쉽게 끼어들 수 없을 텐데도 어른의 새까만 선글라스 탓인지 또 예단하려고 했나 보다.
그보다 나는 애착템이 있었던가? 어린 시절의 흐린 기억을 뒤져봐도 기억나는 게 없는 걸 보면 딱히 없었던 거 같은데... 혹시 잊어버린 거라면 내 소중했을 빙봉에게 사과라도 전해봐야겠다. 결핍이 아니었으니 지금은 잊을 수 있었을 거라고 위안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