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ana(드라가나)의 매장에서 인턴을 하던 나는 placemant(플레이스먼트) 학과 과정이 끝나기 전에 패션쇼에 참가하는 디자이너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매장에서 일과를 마치고 다른 패션스튜디오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구직 사이트와 이전에 도서관에서 찾은 영국패션디자이너 모음집에 소계 되어있는 패션 스튜디오의 이메일을 참고하여 지원했다. 지원할 패션스튜디오의 리서치를 하면 할수록 내가 몰랐던 생소한 디자이너를 알게 되었다. 여러 곳에 지원하고 면접을 봤지만 연락 오는 곳은 없었다.
첫 번째로 연락온 패션 스튜디오는 에이터 스룹(Aitor Throup)이었다. 그가 왕립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쇼를 인상적이게 봐서 기억에 남은 디자이너였다. 담당자는 이메일로 출력하여 만들 수 있는 셔츠 패턴을 보내 주곤 면접 때까지 만들어 오라고 했다. 패턴을 출력하여 이어 붙이는 것에 애를 먹었지만, 셔츠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렸렵지 않았다.
면접 날 학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내가 자주 다니던 길가에 그의 스튜디오가 있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니 나를 데리러 나왔다. 일층엔 인턴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그 외의 공간은 볼 기회가 없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들은 복잡한 패턴을 손수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스튜디오의 벽은 순백색이고 인체 관련 보형 물이 한쪽에 멋지게 진혈 되어 있었다. 면접 담당자는 내가 만들어온 셔츠를 보더니 일반 적으로 만드는 방법과 다르게 만든 부분을 좋아했다. 그리고는 시범적으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Dragana(드라가나)의 매장의 일로 지쳐있던 나는 오늘은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면접이 끝났고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그때 아무리 지쳐있었 더라도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일 걸 하는 생각은 한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지원하였다. 그중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는 디자이너 스튜디오에서 연락이 왔다. Yang Li라는 중국계 뉴질랜드인이 운영하는 패션스튜디오였다. 파리컬랙션에 참가하는 곳이라 이곳에서 꼭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직 영어가 서투른 나는 면접 전날 예상 질문을 만들어 익숙해질 때까지 외웠다. Yang Li의 스튜디오는 런던의 동쪽에 위치한 Whitechapel(와이트 채플)이라는 역의 The Royal London Hospital(더 로열 런던 병원)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면접당일 Whitechapel(와이트 채플) 역에서 내려 스튜디오로 가고 있는데 키 크고 스타일이 멋진 남자아이가 Yang Li 라고 적혀있는 테이프가 붙어있는 상자를 가지고 지나갔다. 나는 그가 Yang Li 스튜디오에서 일 하는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를 보니 더욱 그곳에서 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스튜디오는 간판도 없고 작은 문만 있어서 찾는데 애를 먹었다. 문 앞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니 한 여자가 문을 열어 주었다. 나와 컨택을 했던 Katie(케이티)라는 캐나다에서 온 어시스턴트였다. 그녀가 오늘 나를 면접하는 사람이었다. 문안으로 들어가니 좁은 통로가 나왔고 양쪽에 옷이 빽빽하게 걸려있었다. 아마도 지난 시즌의 샘플들이라고 짐작했다. 통로를 지나니 넓은 스튜디오가 나왔다. 그곳에서 나의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 질문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동안 준비했던 면접 예상 질문을 토대로 막힘없이 대답했던 것 같다. 면접이 끝난 후 샘플실에서 샘플 가봉을 하는 테스트를 했다. 샘플실에는 독일인 패턴사와 일본인 패턴사가 있었다. 일본인 패턴사는 같은 동양인인 나에게 유독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가봉을 완성하고 패턴사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상의 후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했고, 나는 스튜디오를 나왔다.
참조: https://www.vogue.com/fashion-shows/designer/yang-li
며칠 후 Katie(케이티)에게 인턴에 합격했으니 출근 가능 날짜를 알려달라는 메일이 왔다. 나는 출근가능 날짜를 답해주고, 곧바로 Dragana(드라가나)에게 일을 중단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Dragana(드라가나)는 아쉬워했지만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기에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Dragana(드라가나)는 언제라도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