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같은 똔레삽 호수에서의 석양

캄보디아 여행

by 김학선

나와 아내는 캄보디아를 비롯하여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큰 똔레삽의 일몰을 보기 위해 깜뽕플록(Kampong Phluk)에 도착했다. 똔레삽의 호수크기가 우기 때에는 우리나라 경상도만 한 크기가 될 정도로 어마어마 하다고 한다. 나는 톡톡이 기사의 도움을 받아 40달러를 주고 배 한 척을 통째로 빌였다. 배 안에는 약 10명 정도 탈 수 있는 조금 한 배였다.

우리 부부는 선장과 톡톡이 기사와 함께 단출하게 똔레삽을 향했다. 한참 동안 가다가 배가 고장이 났는지 말썽이 난듯하다.


선장이 여기저기를 만지고 두들겨보고도 고쳐지지 않자 기름 호수 같은 부품을 교환한 후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좀 불안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저분한 배안에서 구명장비가 어디 있나 하고 주변을 둘러 보기까지 했다.


호수로 바로 가는 줄 알았는데 엄청난 규모의 수상가옥이 눈에 나타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 위에서 사는 모습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많이 본 장면이다.

우리는 내리지 않고 계속 지나가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수상가옥 속에는 낯익은 우리말로 '우리 교회'로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선교 활동하는 모습이다. 오로지 "대단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수상가옥을 유심히 보면 저 멀리 전신주가 보였다. 깜뽕 플럭에서부터 전기가 공급되는 것 같다.

한국인이 세운 우리교회

우리가 탄 배는 중간에 수상가옥 앞에 멈췄다. 여기가 그 유명한 쪽배를 타고 맹그로브 숲을 감상하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쪽배 이용료 10달러(2인 기준)를 주고 쪽배를 탔다. 쪽배를 짓는 사공은 아줌마였다. 약 50여 척의 쪽배는 모두 여인들이 사공이었는데 모두들 어린아이를 안고 노를 젓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행객들의 동정심을 사기 위한 일종의 영업 수단이라고도 한다.


쪽배는 아줌마의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젓는 수고로 맹그로브 숲을 지나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숲 안에 들어가니 맥주, 콜라 등을 파는 쪽배들이 몰려있었다. 여기에서 한 두 가지 사주어야 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나는 맥주 2병을 사서 아내와 먹으면서 감상했다. 아마 내가 탄 쪽배와 상품을 파는 쪽배 아줌마들 사이에 모종의 거래관계가 있는 것 같이 특정한 아줌마에게 노를 젓어 다가갔다.

나는 쪽배에 내리면서 어린아이에게 1달러를 주었다. 아! 이것이 말들만 듣던 그 유명한 쪽배체험이었다.

우리 다시 배를 타고 맹그로브 숲의 황혼을 보면서 호수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해가 빨리 질까 봐 마음이 급했다.

어마어마한 호수에 들어서자 수많은 배들이 해넘이를 보기 위해 대기하는 것 같았다. 먼 바다 아니 먼 호수에 수많은 배들이 떠 있었다.

나와 같이 동행한 톡톡이 기사는 망고 과일을 꺼내었다. 깜뽕플럭 출발 전에 사둔 것 같았다.

톡톡이 기사 쌈밧은 "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망고를 드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선장님하고 같이 먹자고 하니 선장님은 "뱃머리로 올라가세요"라고 제의했다.

우리 부부는 흔들리는 뱃머리에 올라 망고를 먹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조심조심"말하면서도 나 자신도 몹시 불안했다. 처음 올라가 본 뱃머리 끝에서 우리는 아름다은 일몰을 보기 시작했다.

일몰의 똔레삽 호수는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과 호수와 같은 포근한 마음이 합쳐진 일종의 어머니 같은 사랑이었다. 천 년 전부터 룰루오스, 앙코르와트를 지탱해준 고마운 호수였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오는 에너지로 강력한 국가를 이루었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사원 건설에 동원됨으로써 그들의 삶이 피폐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똔레삽의 호수만큼은 그들의 애환을 위로해주는 어머니와 같은 사랑으로 포용해주었을 것이다.

아마 천년 동안 비쳐주는 아름다운 노을이 있어서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아픈 백성들의 상처를 위로해 주었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호수의 노을을 우리 부부는 겸허하게 바라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