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일찍부터 마드리드에서 1시간 거리인 톨레도에 도착 후 짧은 중세시대로의 시간여행을 즐기고 바로 고속버스와 메트로(6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를 이용하여 프라도 미술관이 가까운 아토차역에서 내렸다.
마음이 급했다.
내일 아침 일찍 세비야행 열차이동이 계획되어 있었고 마드리드 여행의 짧은 1박 2일 안에 프라도 미술관 등 수많은 예술품들을 다 만나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입장권(1인당 15유로)을 구입한 시간은 오후 5시 5분이다. 나는 아내에게 6시부터는 무료입장이라고 말했지만 미술관 밖에는 그늘도 없고 햇빛도 뜨거웠다. 1시간만 기다리면 '무료'인데.. 비용을 떠나 빨리 들어가자고 아내에게 동의를 구했다. 나는 다시 아내에게 싱겁게 "세계 3대 미술관을 무료로 들어가면 되겠어"하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아내는 말이 없다. 좀 힘든 기색이다.
프라도 미술관 안에는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지하 1층(0층)부터 지상 3층의 거대한 규모였다. 미술관의 관람 순서 보니 대충대충 봐도 하루는 족히 걸릴 것 같다. 사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관람은 왠지 모르는 피곤함이 동반하곤 한다. 혹시 나만 그런지도 모른다.
아내는 모든 작품을 볼 시간도 없고 작품 해설도 없으니 여행 가이드 책(전혜진 저. 스페인 데이. pp 324- 327)에 소개된 작품만 보겠다고 한다. 이 책은 작품의 간단한 해설과 호실별 그림 위치가 안내되어 있어 관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행가이드북(전혜진 저. 스페인데이) 나는 '주마간산'식으로 작품들을 구경하다가 책에 소개된 작품이 나타나면 즉시 노안이 있는 아내에게 해설 내용을 직접 읽어주었다. 작품의 제목, 화가 이름, 작품 내용 순으로 또박또박 설명해주는 수고스러움과 동시에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나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원래 프라도(Prado)는 스페인어로 '초원'이라는 뜻으로 미술관 주변에 둘레 4Km에 달하는 광대한 부엔 레티로 (Parque del Retiro) 공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략 초원 위에 세운 미술관으로 해두자.
프라도 미술관은 1819년 개관이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으로 소장품 3만여 점 중에 전시공간에 맞게 3천여 점 정도만 상설 전시하고 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제공한 리플렛 주로 12세기부터 초기 19세기까지의 작품들로 0층(유럽에는 반지하 정도를 0층으로 한다) 에는 뒤러의 '아담과 이브', 고야의 '1801년 5월 2일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보쉬의 '쾌락의 정원' 등 유명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1층에는 대표적인 고야의 '옷 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티치아노의 '황금비를 맞는 다나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등을 감사할 수 있었고 스페인 왕실 켈렉션의 천재화가 3인방인 엘 그레코, 벨라스케스, 고야의 작품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프라도미술관에서 제공한 리플렛 이는 나뿐만 아니고 낭만주의 예술가 마네, 모네, 세잔, 고흐도 고야의 작품을 보기 위해 마드리드를 방문했다고 하는데 내 나름의 동지애라도 느꼈는지 피로에 뭉친 다리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하다.
프라도 미술관 전경
프라도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우리 부부는 프라도 미술관에 나온 뒤 옆에 있는 산 제로니모(San Jeronomo el Real) 성당을 간단히 구경하고 바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향했다.
여기는 프라도 미술관 입장료(15유로) 보다 저렴한 10유로이지만 7시 이후부터는 무료이다. 우리가 프라도 미술관 관람을 서두른 것도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관람을 위해서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무료관람 입장 줄에 서 있었다. 정확히 7시에 입장하여 0유로의 입장권(무료라도 무료입장권을 받아야 함)을 받았다.
레이나 소피아미술관 무료 입장권 하루에 미술관을 두 곳 이상 방문하는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프라도 미술관이 과거의 예술이라면 이곳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현재와 미래 예술의 공간으로 마치 세계 예술의 역사를 끊임없이 이어가면서 보는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찾는 가장 큰 이유로는 스페인 최고의 미술품이라고 평가받는 피카소의 '게르니카(크기 3.49 m×7.77m)'를 보기 위해서이다.
압도적으로 갤러리들이 몰리는 게르니카 그림 전시방은 1명의 전담보안요원이 있을 정도로 철저히 관람을 통제하고 있으며 사진촬영은 절대 금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미지 인용 또한 이곳에는 초 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위대한 수음자의 얼굴', '창가에 있는 모습'과 호안 미로의 '파이프를 문 남자', '달팽이, 여인, 꽃' 등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앞에 무료 입장객들 이제 정말로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리가 무너져내리는 느낌! "누가 여행을 힐링이라고 했던가?" 나는 스스로 되묻기도 했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같이 여행 와서 이렇게 강행군하는 사람은 드물 거야?"라고 했다.
아내도 물론 힘들다.
그러나 아내의 평소 여행지론은 '열심히 또 열심히 그리고 최대한 볼 것은 다 보자"하는 것이다. "그래. 오늘 마지막 코스 '레티로 공원으로 가 봅시다"
레티로 공원 입구 레티로 공원은 마드리드의 허파라고 불리는 숲 속 공원인데 우리나라 올림픽 공원과 매우 비슷하다. 초저녁 선선한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거나 강아지와 산책하는 모습도 매우 비슷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크리스털 궁전이 눈에 들어온다.
1887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동식물을 전시하기 위해 지웠다는 건물인데 속이 훵하다. 필리핀 국가의 명칭도 식민지 당시 스페인 왕들이 펠리페 2세, 3세라는 불리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 분명하다.
크리스털 궁전 내부 크리스털 궁전
크리스털 궁전 앞 호수 밖에서 본 크리스털 궁전 크리스털 궁전을 지나 조금 걷다 보니 벨라스케스 궁전이 또 나온다.
지금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별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마침 일본인 '테츠야 이시다(Tetsuya Ishida)'라는 화가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 참고로 테츠야 이시다는 사후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미지 인용 다소 엽기적인 그림으로 보기에 징그럽기도 한 그림이 대부분이다. 전시장 한 바퀴 도는데 약 10분 정도 구경하고 바로 나왔다. 아내가 좋아하는 그림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레티로 공원의 랜드마크인 알폰소 12세의 기마상이 있는 인공호수로 왔다.
레티로 공원 인공호수 저녁 9시의 호수. 이제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호수 인근 카페테리아에서 맥주 2잔을 사서 정원 벤치에 앉았다. 갑자기 우리는 '멍'때리기 시합이라도 한 듯 조용히 앞만 보고 있었다.
이제 호수도 주변도 사람도 조용하다. 우리와 조금 떨어진 벤치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한참 동안 호수를 응시하다가 돌아간다. 무슨 고민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무척이나 외롭게 보인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인 것 같다. 길거리 조명이 약해지면서 껌껌해지는 밤거리... 어디로 나가야 할지 방향감각도 없다. 나는 구글 앱을 이용하여 그라비아 거리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알칼라 문'이 보였다. 마드리드의 개선문이라고 한다. 저녁의 야경은 마드리드의 위상을 보여주듯이 화려하지만 점잖다.
우리 부부의 오늘 하루의 걸음이 37, 578보! 아주 힘든 여행이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과 행복이 쌓였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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