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70Km 떨어져 있고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톨레도를 가기 위해서다. 스페인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수많은 블로그나 여행안내책자에서 '톨레도'를 꼭 가봐야 하는 도시로 추천하는데 주로 하는 말은 "고즈넉한 좁은 길을 찬찬히 걷다 보면 아늑한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에 빠지게 된다"라고 한다. 나도 톨레도란 도시를 꼭 가보고 싶었다. 1986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마드리드 여행에서 빼먹을 수없는 최고의 여행지라고 한다.
나는 지하철 3호선과 11호선을 이용하여 플라사 엘립티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승차권(1인당 5.5유로)을 구입하여 승차장에 가보니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승차 대기하였다. 09:29분 버스는 정확하게 출발했다.
나는 버스의 달리는 속도에 못 이겨 빨리 스쳐 지나가는 마을 풍경을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보통 우리나라 지방도시로 가는 도로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마드리드에서 톨레도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톨레도는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는데 톨레도라는 이름도 기원전 2세기경 이곳을 지배하던 로마인들이 톨레 툼(Toletvm)으로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참고 견디며 항복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로마인에게 굴복당하지 않고 거세게 저항한 것을 두고 불여진 것이라고 한다(이재환 저. 베스트 오브 스페인 101. 참조). 8세기 초 이슬람 세력에 의해 장악된 도시였고 다시 1085년 국토회복운동 과정에서 가톨릭 세력이 탈환하고 1492년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을 완전히 떠난 후 1561년 톨레도는 수도의 위치를 마드리도로 넘겼다. 이때 수많은 백성들이 한꺼번에 톨레도에서 마드리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이 있었을 것이라고 느껴진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벌판을 대이동...
나는 오늘 이 길을 따라 여행에 나선다.
고속버스에서 내린 후 다시 톨레도의 중심지인 소코도베르(Zocodover) 광장으로 가기 위해 5번 또는 12번 버스를 타기 위해 정거장에 서 있었는데 한참 동안(30분 이상) 버스가 오지 않아서 짜증 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걸어서 10분정도 가는 거리라서 버스 운행시간도 길고 이용객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버스정거장에서 버린 시간을 벌충하려는 마음이 있었던지 톨레도 대성당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중세시대의 시간여행도 느낄 틈도 없이 걸어서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매표소에서 종탑까지 올라가는 통합권(1인당 12.5유로)을 구입하여 '사자의 문'으로 입장하였다.
11시 55분 종탑에 올라가는 시간 내에 성당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성당 중앙에는 성가대석(Coro)이 있는데 가운데는 커다란 독수리가 자리 잡고 있고 앞쪽에는 익살스러운 미소를 뛴 성모와 아기 예수상이 있다. 성가대석 맞은편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묘사한 나무 조각을 황금색으로 채색한 휘황찬란한 제단화가 있는 주 예배당(Capilla Mayor),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게 뚫은 채광창이 있는 트란스 파란테( El Transparente) 등 대성당 내부는 온통 금빛으로 장식된 느낌이다. 이곳 현지인들도 보물로 가득한 톨레도 대성당이 스페인 가톨릭 총본부라는 자부심이 매우 높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11시 55분 종탑에 올라가려고 대성당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종탑 입구도 표시되지 않고 관계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약 10분이 지나서 성당 관계자가 나타났다. 굳게 닫힌 철문을 연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나는 신의 손가락이라 불리는 고딕 양식의 뾰족한 첨탑에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수많은 계단을 오르면서 다소 힘이 들었지만 잠시나마 밖에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덤으로 아름다운 톨레도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종탑에 올라오니 중앙에 가장 큰 종, 동서남북으로 작은 종들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 동안 쉼 없이 울렸던 종들이라 그런지 일부는 갈라지고 깨진 틈들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종의 표면을 만지면서 말없이 교감을 나누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었다.
"참 수고가 많았네..."라고.
나는 톨레도 대성당을 나와서 톨레도 구시가에서 가장 높고 랜드마크인 알카사르에 가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월요일은 휴관이라 입장할 수 없었다.
알카사르는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부터 단단한 성채였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16세기 스페인 전성기를 이끈 카롤로스 1세 때라고 한다(전혜진 저. 스페인 데이. 참조). 또한 1936년 스페인 내전시 당시 반란군(프랑코 군)과 정부군과의 최대 격전지로서의 톨레도에서 알카사르는 프랑코군의 승리로 결국 정부군과 시민군은 무참히 학살당하면서 도시 구석구석 피로 물들어 갔다고 한다. 반대로 정부군이 점령했을 때는 굽이치는 타호 강으로 프랑코군이 내던져졌다고 한다. 반복되는 보복학살의 연속이었다(최문정 저. 나를 찾아 떠난 스페인. 참조)
우리 부부는 이제 톨레도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방법은 꼬마기차 소코트렌(Zocotren) 또는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여 굽이쳐 흐르는 타호 강 너머로 사진이나 엽서에서나 봤던 톨레도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와 톨레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 다리인 산 마르틴 다리 등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다. 우리는 시티투어버스 2층으로 올라가서 관광하였는데 우리 부부만 있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중세시대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들었다. 내눈에 들어오는 모든 피사체는 움직임이 없는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다.
전망대에서 본 톨레도의 전경
나는 아침 9시 29분 톨레도행 버스로 타고 와서 약 5시간의 짧은 톨레도 여행을 마치고 오후 3시 29분 마드리드행 버스를 타기위해 부지런히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저녁 붉게 물든 석양의 아름다운 빛깔을 담은 톨레도를 보고 싶었지만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관람하기 위해서 많은 일정을 단축시킬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봐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성채도시 톨레도였지만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단함이 묻어있는 톨레도를 보면서 단지 유명 여행지에 와봤다는 느낌보다는 사람의 일반적인 삶과 같이 흥망성쇠로 거듭났던 찬란한 영광과 쓰라린 아픔이 반복적으로 공존했던 도시라고 생각하니 세월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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