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화: 첫눈이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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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는 일본의 한 전시 기획사의 소개를 받아 좋은 레스토랑을 알아냈다. 마침 전시와 다이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콘셉트 레스토랑이 근처에 있어서 예약을 잡아둔 상태였다. 시호가 갑자기 함께 하게 되어서 급하게 인원을 변경해야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레스토랑 측에서 양해를 해 주었다.
혜숙과 현우와 함께 며칠간 일본 여행을 할 계획도 재희가 세웠다. 원우의 초대로 왔지만,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가는 셀렘이 세 사람에게는 가득했다.
일본 여행 책자를 살피다가 문득 ‘가족 여행’이라는 말이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제인과 자신이 한 번도 여행을 함께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 떠올랐다.
먼 도시 혹은 다른 나라로 둘이서 함께 떠난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시나 사업과 관련할 때뿐이었으니 여행이라기보다 ‘출장’에 가까웠다.
“이게 제인 작품이라고?”
“네.”
“이렇게 멋진 곳이 있네. 작품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같이 먹고.”
“저도 와 본건 처음이에요. 제인이…, 엄마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 같이 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끝을 흐리던 혜숙이 재희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다정함에 웃음으로 답하며 제인의 ‘진짜 그림’을 보았다.
자신이 그린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었는데 가난할 때 팔아버려서 이제는 자신도 돈을 내고 봐야 한다고 우스개 소리처럼 말했던 기억이 난다.
“웃기지 않아? 이제 전시회를 하려면 내 그림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야.”
“그래도 누군가의 지하창고에 있는 건 아니잖아. 그나마 다행이지.”
“그래. 내가 죽어도 그러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물론 돈은 조금 내더라도 말이야. 다음에 같이 가서 보자.”
“돈 내고?”
“당연하지. 아가, 모든 아름다운 건 대가가 있어야 더 예쁜 거야.”
반쯤 열린 창문, 그리고 그 창문 밖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우산을 쓴 사람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서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렇게 서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고여있는 물웅덩이 속 흔들리는 사람의 얼굴만 희미하게 보였다. 흔들리는 물웅덩이 속 표정을 보려면 비가 그쳐야 할 것 같았지만, 그림 속 비는 그칠 리 없었다.
제인은 자신이 이렇게 빨리 떠날 거라는 생각을 못했고, 재희는 제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떠날 날을 알고, 그동안의 시간이 사랑임을 깨닫게 된 순간, 비는 그치고 이제 그 표정을 읽을 수도 있었지만 더는 함께 할 수 없었다.
“제인이 예전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어.”
“그래요?”
“정확하게는 비 오는 날에 거실 소파에 누워 그걸 구경하는 걸 좋아했지.”
“맞아. 새침한 고양이처럼 말이야.”
혜숙과 현우가 예전 제인의 모습을 재희에게 설명해주며 추억으로 잠시 돌아갔다. 원우와 시호가 조금 늦게 레스토랑에 함께 도착했다.
“음식이 정말 맛있다.”
“다행이네요.”
사립 재단이 소장하고 있던 제인의 그림이 갑자기 가치가 높아지자 전시회가 몇 번 기획되었고, 이후에는 팔린 그림 중 일부가 이 레스토랑으로 넘어왔다. 사업 수완이 좋았던 대표에게 제인이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어진 레스토랑이라고 했었다.
식사 후에 시호와 원우와 함께 다시 그림을 돌아보며 소개를 해 주고 나니 시간이 제법 많이 지난 뒤였다.
“내일 공연만 아니면 더 있다가 갈 텐데.”
“아쉽지만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니까. 연락해.”
“응. 꼭 연락할게. 다음에는 내가 한국에서 맛있는 거 사줄게.”
시호가 아쉬운 얼굴로 재희와 인사를 하고 대기하고 있던 차에 타는 동안, 혜숙과 현우가 원우에게 걱정과 당부 등을 남기고 있었다. 결국 둘이서는 이렇다 할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재희는 원우와 인사를 했다.
“조심해서 가.”
“응. 금방 연락할게.”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급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재희는 얕은 한 숨을 쉬었다. 가족도 자주 못 보는 원우의 삶에서 이제 자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둘만의 시간이나 공간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르겠다.
“원우랑 재희 덕분에 우리가 오늘 호강했네.”
“아들 딸 잘 두면 좋다는 말이 이런 말이네.”
“그러네, 진짜!”
기분이 한껏 좋아진 혜숙과 현우가 재희와 함께 호텔로 돌아가며 그런 말을 나누었다. 재희는 그 말에 대답을 않고 웃었다.
한국에서 자신을 붙잡았던 원우의 간절한 손끝이 떠올랐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는 듯 보였던 그날의 단호함. 보이지 않는 걱정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이제 실제 물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직업도 생각해봐야 한다. 오늘 시호의 얼굴을 보니 원우가 그 선택을 한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이 혼자서 염려했던 모든 것들이 잘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마음과 머리가 조금 더 복잡해져 버린 재희가 호텔 침대 끝에 앉아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찬 바람이 부는 밖에 뭔가를 두고 온 것 같았다.
자신의 못다 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자신이 버려야 마땅한 마음이, 그렇지만 버릴 수 없는 마음이 아직 그의 손에 있는데…. 이윽고 휴대폰이 울렸다.
-“잘 들어갔어?”
“응. 넌? 피곤하겠다. 내일도 공연이면.”
-“몇 호야? 엄마랑 같은 층에 있는 건 맞지?”
“응? 그건 왜?”
-“문 잠깐만 열어봐.”
“뭐?”
-“빨리.”
재희는 무언가에 홀린 듯 호텔 문을 살짝 열었다. 늦은 밤의 호텔 복도에는 아무도…, 아니 누군가가 서 있다가 문소리를 듣고 제 방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너?”
“쉿!”
조금 전 헤어질 때와는 달리 야구 모자와 그 위에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원우가 제 입가로 손가락을 가져가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제 손을 붙잡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탈출.”
“뭐?”
이번에는 재희의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쉿’ 거린다. 문을 닫으려 하다가 재희의 옷차림을 보더니 제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롱 패딩을 입혀주었다. 그리고 됐다는 듯 ‘씩’ 웃으며 얼른 복도를 달린다.
재희는 얼떨결에 함께 달리면서도 붙잡고 있는 손을 혹시라도 놓칠세라 꼭 잡았다. 찬 바람이 부는 밖으로, 지금 달려 나가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분명 오늘은 두 번 올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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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히 성탄절을 앞에 둔 번화가는 어디든 사람이 많았다. 그 덕분에 오히려 군중 속에 섞여 움직이기가 쉬웠다. 어딜 가더라도 눈에 띄지 않는 그저 흔한 어린 연인의 모습이 되는 것이 두 사람에게는 다행이었다.
타워의 거의 마지막 관람객으로 올라가서 나란히 선 채 야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언젠가의 서울이 떠올랐다.
‘… 정말 안 가도 돼?’
‘…….’
‘아니야. 이제 가자. 늦었다.’
그날 자신을 향해 웃고 있던 재희의 얼굴이 여전히 잔상처럼 기억에 남아 있었다.
돌아가지 말라고 붙잡지도 못하고, 그 이유도 묻지 못하던 자신과 긴소매로 가려졌던 손끝을 먼저 붙잡아주던 재희는 이제 여기 있다.
“몰래 나와도 되는 거야?”
“당연히….”
“…….”
“안 되지.”
“뭐? 그럼….”
“그래서 말하고 나왔어.”
재희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자 원우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갈색 머리에 씌워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웃음은 자연스럽게 전염되어서 두 사람은 어느새 같이 웃고 있었다.
밖은 아직 사람으로 북적이고 활기찬 기운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매일이 같은 듯 다르고, 매해가 다른 듯 같았다. 하지만 분명히 오늘은 어제가 아니었고, 이번 해의 겨울은 지난해와 다르다.
나란히 서서 반짝거리는 야경을 한 참 바라보던 원우는 재희가 휴대폰을 잠시 살피는 것을 보더니 미묘하게 표정이 변했다.
“시호지?”
“어떻게 알았어?”
“지금쯤이면 운동 끝나고 쉴 시간이니까. 뭐라고 왔어?”
“어, 그….”
대답하려던 재희가 문득 생각난 듯, 입술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예전에 많이 보았던 그 익숙한 웃음을 지으며 그런다.
“뭐라고 했는지 궁금해?”
“하아!”
“왜 궁금 한데?”
“그야, 당연히….”
대답을 하려다가 이번에는 원우가 입을 다물었다. 긴 눈매가 더 가늘어지면서 이번에는 혼자 슬그머니 팔짱을 끼고는 웃는다. 재희의 동그란 눈과 갈색 눈동자가 저를 빤히 보고 있는 것이 좋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그녀’가 아니라, 예전에 ‘소녀’가 되어 다시 자신의 앞에 있는 것 같았다.
“왜?”
“나가자. 여기 이제 문 닫을 시간이야.”
재희의 어깨를 자연스럽게 끌어안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다가 자신이 입혀준 패딩 주머니로 슬쩍 손을 넣어서 휴대폰을 잡았다.
“야, 내 거.”
“잠금 패턴이 이거지?”
“너!”
원우는 휴대폰을 들고 있는 팔을 길게 뻗은 채 시호가 재희에게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는 인사와 ‘공연에 와줘서 고맙다’는 말, ‘잘 자라’는 마지막 인사, 그리고 ‘앞으로는 자주 연락하겠다’는 말까지 읽고 나서야 다시 재희에게 돌려주었다.
“답장 꼭 해줘. 그거 아마 한 시간 넘게 고민해서 보낸 걸 거야.”
“시호랑 연락해도 괜찮아?”
“안 될 이유가 있어?”
“…, 흐응.”
뭔가 뜻했던 대로 되지 않자 재희의 표정이 심드렁하더니, 곧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이내 무표정하게 변했다. 원우는 순식간에 변한 공기를 느끼고 흘깃 바라봤지만 재희는 앞만 보고 있다.
“무슨 생각해?”
“그냥…. 지금 어디가?”
“좀 따뜻한 곳? 너무 춥다.”
원우는 택시를 잡았다. 간단한 일어로 목적지를 알리자 함께 있던 장면들이 등 뒤로 점점 멀어졌다.
도착한 곳은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었다. 단정하면서도 뭔가 특징이 없는 건물의 7층으로 올라가자 낮은 조도의 조명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나타났다. 차분한 백색소음과 함께 클래식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접시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잔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각자의 테이블에서 낯선 언어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아무도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창가 쪽으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특이한 점은 창가 쪽은 얇은 테이블이 창문을 따라서 붙어 있었고 의자가 창문을 향해 있어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두꺼운 겉옷부터 벗고 조금 높은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대고 나란히 앉아 있으니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음료가 나온 후에도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나란히 앉은 채 창 밖의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창가 쪽의 테이블 배치를 이렇게 해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창 밖의 풍경은 익숙한 듯 단조로우면서도 아름다웠다.
“여기는 어떻게 알았어?”
“블로그. 나도 처음 온 건데 생각보다 좋네.”
먼저 입을 뗀 재희의 질문에 원우는 잠시 웃으며 대답했다. 다시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왜…, 안 물어봐.”
“뭘?”
”내가 온 이유 말이야.”
“알아, 찾으러 온 거잖아.”
“…….”
“나.”
조금 비스듬히 소파에 앉아있던 원우의 시선이 곧 기다렸다는 재희만 바라봤다. 테이블 위로 팔을 올려 턱을 괴고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얌전한 고양이 같았다. 포근한 거실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고양이.
재희도 원우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마주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시간들…,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지금은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기억나? 서울에서도 같이 타워에 갔었어.”
“갔었지. 햄버거 가게도 가고, 떡볶이도 먹고. 같이 지하철도 타고, 또 걷기도 하고….”
“우리…, 생각보다 많은 걸 했구나.”
“호수에도…, 갔었지.”
재희의 질문에 나른하게 대답하던 원우의 목소리가 멈췄다.
밖은 어두웠지만, 두 사람은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을 느꼈다. 노을이 지던 그 순간의 호수가 다시 그들의 사이에 나타났다.
머뭇거리던 모든 시간을 끌어안고,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하게 떨어져 내리던 순간. 원우에게는 재희를 붙잡기만 한다면 모든 꿈을 줄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순간이, 다시 나타났다.
‘펑’
불꽃놀이를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맞춰서 원우의 시선이 잠시 창문 밖을 바라보았고, 그의 연한 잿빛 머리카락은 불꽃이 흩어지는 색을 받아서 빛났다.
빛나는 붉은색과 노란색 혹은 푸른색이 나타났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이제 아예 테이블 위로 고개를 올리고 있는 원우의 머리 위로 재희의 손이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 찾았다.”
모자 때문에 조금 헝클어진 원우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만져주던 그 손을 원우가 붙잡으며 말했다. 나른하기만 하던 시선이 이제 똑바로 재희를 향했다.
“네가 다시 돌아온 후에 먼저 손 내밀어준 건 처음이야. 몰랐지?”
재희의 손을 그대로 꼭 잡고 소파에 기대어 앉은 채 원우는 창문 밖에서 펼쳐지고 있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익숙하면서도 담담한 듯 보였지만, 꽉 잡은 손은 그렇지 않았다.
“다행이다…. 다시 나를 찾아줘서.”
“이러는 게 맞는지…, 아직도 난 잘 모르겠어.”
그런 원우의 옆모습을 빤히 보면서 재희는 눈을 깜박였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누군가를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면서도 이렇게 밀어내야 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기울어지는 자신은 과연 정상일까.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지금 내가 네 손을 잡을 수 있고, 네가 나를 붙잡을 수 있는 것 외에는.”
“…….”
“불안하다면, 그냥 나를 잡아. 난 언제나 있을 거야. 그건 확실하니까.”
불꽃놀이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가장 화려한 불꽃은 언제나 마지막을 장식한다.
재희는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 가장 화려한 마지막 불꽃을 바라보았다. 원우의 눈동자에 그리고 잿빛 머리카락 위로 피어나는 마지막 불꽃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색을 띠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 사실은 아주 많이, 정말 많이….”
동그랗게 입술을 말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속삭이는 것처럼 아주 작게 들리는 재희의 목소리.
원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재희를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허공에 피어나는 불꽃의 아름다운 포물선과 동심원의 향연만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언제나 이 시선을 원했다. 무대 위에 있을 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바라봐주었지만,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 자신이 원했던 것은 이 시선 하나였다.
지금은 고개를 돌리면 마주할 수 있는 갈색 눈동자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난 예전과 같아. 하지만 분명히 다를 거야. 그건 확실해.”
재희는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원우의 깊은 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눈을 감지 않은 채, 온전히 그 시간을 기억에 두고 싶었다. 그리고 원우가 자신의 목에 걸어준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반지는 조금 다른 형태가 되어 재희에게 돌아왔다. 얇은 매듭 모양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들자, 원우가 천천히 말했다.
“눈 온다.”
마음은 변함없었다. 그때와 다른 모습이라고 해서 그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봉오리일 뿐이던 장미가 피어나 더 화사한 모습으로 변해 예전과 다르다고 해도 장미는 장미일뿐이니까.
“생일 축하해.”
재희는 창 문 밖으로 하나둘씩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며 천천히 원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드디어 어느 겨울, 자신의 생일이 되었고 함께 보는 첫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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