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중: 닿을 수 없는 꿈, 깨고 싶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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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홍차를 마셨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 다정한 두 사람을 예쁘게 사진 속에 담아주는 일까지 재희는 지금 자신이 하는 모든 것들이 행복을 손에 담고 있는 기분이었다.
두 손 가득하게 담고 나면, 그래서 더는 담을 곳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며 노천 온천에서 혜숙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지나간 제인의 이야기, 그리고 제인도 몰랐던 킴의 이야기도.
날아가는 수증기 너머로 뿌옇게 보이는 것이 자신의 미래인지, 아니면 과거인지 모를 일이었다.
재희는 일본식으로 잘 다듬어진 중정을 바라보았다. 작은 연못과 아기자기한 화단이 갖춰진 작은 중정을 숙소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구조였다. 한 참 바라보고 있던 재희는 피곤함이 갑자기 몰려왔고, 까무룩 하게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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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네요.”
하얀 배경색 너머에 언젠가 본 적이 있었던 얼굴 하나가 보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런 표정이 보이지 않는 그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냈다.
불안과 불편함이 공존했고, 미움과 걱정도 함께하는 그 미묘한 얼굴을 보고 있던 재희는 고개를 돌려 언제나 그랬듯 제인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인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못 봐요. 왜냐면….”
“…….”
“이건 내가 불러낸 무의식이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익숙한 의자에 앉아 넓은 책상 너머로 그를 보고 있으니 뭔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아, 권능은 일정량만 정해져 있지만, 이건 제 권능이니 사용해도 규정에 어긋나는 건 아닙니다. 직위를 약간 이용하기는 한 거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그가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밝은 공간 안이지만 왠지 무서운, 아니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이건 꿈일 뿐인데…. 꿈….
“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은 알지 않습니까. 모른 척 그만 하고 돌아오세요.”
“…….”
“그렇지 않으면 더…, 일이 일어날 겁니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이미, 제 통제를 벗어난……, 그러니까 더는 그곳에 있으면 안 됩니다.”
목소리가 끊어지는 것 같아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니, 답답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곧, 재…, 프로젝트가 시작될 겁니다. 제가 지시한 업무를…, 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별로 그건 의미가 없어졌어요.”
“…….”
“당신이 이곳에 없다는 걸, … 대리와 … 대리가 알아버렸어요. 자신의 공간에서 뭔가를 열심히 계획하는 건 분명해요. 저는 그걸 막을 권한이 없고요.”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희는 황급히 입을 열려고 하다가, 곧 입을 다물었다. 아주 잠시지만 왠지 그의 얼굴은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을 본 것 같았다.
“계속 그곳에 있다면, 그래서 당신이 사랑하는…, 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모두….”
“…….”
마지막에 떨어질 그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꿈인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으니까.
“당신 탓입니다.”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를 하듯이 또렷하게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에 머리가 멍해졌다. 재희는 이곳에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정신 차려.”
분명히 원우였지만, 그의 얼굴이 낯설었다. 낯선 영혼을 그의 껍데기로 덮어 둔 것처럼. 나지막한 목소리가 한 번 더 크게 들렸다.
“잘 들어. 이건 꿈이야.”
“…, 원우야.”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지 마. 네가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없어.”
“원우야…, 도망가.”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점점 원우의 어깨너머로 다가오는 익숙하지만 모르는 그 얼굴이 무섭고, 무거웠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원우를 어떻게 할 것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자신의 등 뒤로 다가오는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원우는 그저 재희를 바라보며 다시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를 구할 수 있는 건 너 밖에 없어.”
“… 도망쳐.”
“뭐로부터? 너로부터?”
“도망쳐, 원우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재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원우는 몸을 살짝 더 앞으로 기울였다. 이미 원우의 등 뒤로 낯선 남자는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다가와 있었다.
“잘 들어.”
“원우야, 도망가.”
사슬, 낯선 이의 손에 사슬이 원우의 목에 둘러졌다.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전히 재희에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울리듯 공간을 메웠다.
“나를 통해 너를 보지 마. 너는 너일 뿐이야.”
원우의 목이 사슬로 천천히 감기더니 곧 그의 등 뒤로 빙그레 기묘하게 웃는 하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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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느끼며 눈을 떴다. 재희는 자신의 눈앞에 여전히 있는 원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저녁잠을 이렇게 오래 자는 거야. …, 울었어?”
조금 더 고개를 숙여 저를 들여다보던 원우를 보다가 재희는 벌떡 일어나 그의 목을 끌어당겨 안았다. 깨어나면 잊히는 꿈의 절반, 그리고 남은 절반 속에 그의 목에 여전히 사슬이 걸려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어, 너무 격한 환영이네.”
“…….”
“무슨 꿈을 꾼 거야. 왜 울었어?”
“기억이…, 안 나.”
원우는 재희의 등을 쓸어주면서 다독였다. 험한 꿈을 꾼 그녀의 곁에 지금 자신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다.
“스케줄 때문에 여행은 같이 못한다고 했잖아.”
“여행은 못하지만, 다른 멤버들보다 하루 일찍 이동해서 얼굴을 볼 수는 있지.”
“혜숙 씨랑 현우 씨는?”
“근처 호수로 산책 가신다던데.”
“우리도 갈까?”
“난 추운 거 싫어.”
“여전하네.”
고양이가 꼬리를 말며 몸을 웅크리듯, 원우가 재희의 머리를 더 꼭 끌어안으며 바짝 몸을 붙여 안았다.
스텝들과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 일찍 오기를 잘한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내내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재희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꿈꾸기를 멈추는 건 재희도 바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단지, 아직도 그녀의 꿈속에 자신은 여전히 없을까 봐 걱정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긴 밤의 어느 순간에 저를 찾을 때, 지금처럼 함께 있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네 꿈에 나는 없어?”
“아니….”
“이제 내가 있어?”
“그런 것 같아.”
“다행이네.”
“그런데…, 네가 죽는 걸 봤어.”
“그거 좋은 꿈이야.”
여전히 자신의 품 안에서 어떤 의지도 없이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는 재희가 눈을 깜박이면서 바라본다. 동그란 눈에는 걱정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원래 꿈은 반대잖아.”
“그래도…, 무서워. 무서웠어.”
이 눈동자가 계속 자신만 바라봐 준다면, 그렇다면 그녀의 꿈에서 백번을 죽어도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마. 그냥, 내 생각만 해.”
“…, 응.”
반듯한 이마 위 갈색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원우가 다정하게 속삭이자 재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듯하게 감았다.
“누가 겁 많은 고양인지 모르겠네.”
“게으른 고양이는 너, 겁 많은 고양이는 나.”
원우의 말에 대꾸하며,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목에 두르고 있던 재희의 팔에 힘이 빠져나간다. 그렇지만 여전히 제 품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충분하다…. 지금 만큼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그 꿈속에 이제 자신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길을 잃고 헤매지 않으면 된 거다. 꿈속의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재희를 지킬 테니까.
어둠을 틈타 빛나는 별빛 아래로 호수 근처까지 함께 걸었다. 입김이 새어 나왔고, 원우가 싫어하는 추위가 온 몸을 휘감지만 오늘은 괜찮았다.
“시호는 또 연락 왔어?”
“응, 여행 잘하고 있냐고 연락 왔는데.”
제 주머니에 안에서 마주 잡고 있던 보드라운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더니 곧 대답 속에 섞인 웃음소리처럼 간질거린다.
“계속 그렇게 물어볼 거야? 그럴 때마다 난 말해줘야 하는 거야?”
“그냥 생각나서 물어본 거야.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진짜 괜찮아?”
원우도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의 대답이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리고 재희도 그걸 알고 있으니 눈꼬리를 휘어지게 웃고 있는 것도.
“시호는 무대 위에서 정말 멋있더라. 반짝반짝 빛났어.”
“나는?”
“넌….”
늦은 밤의 호수 위로 달빛과 차가운 바람에 일렁거리는 물결뿐이었다. 호수 옆으로 길게 난 목조로 된 다리를 걷다가 원우의 질문에 재희는 짐짓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행복해 보였어.”
“…….”
“네가 정말 행복해 보여서 기뻤어.”
“…….”
“그때, 내 행복은 너라고 생각했는데…. 내 행복을 곱게 두고 가길 잘했구나…, 싶었어.”
반칙이다. 지금 내 앞에서 그렇게 예쁜 답을 말하는 너는….
달빛이 재희의 입김과 함께 흩어지는 것 같았다. 반짝거리는 호수의 물결 위로 흩어지던 진심이 모이고 그대로 내려앉았다.
이 모든 것들이 꿈이라면 정말 행복한 꿈일 것이며, 지금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이라면 영원히 붙잡고 싶은 순간이었다.
“아, 춥다. 넌 너무 예쁘고….”
“응. 추워. 넌 너무 멋있고….”
원우는 여전히 지는 게임을 하는 기분이었지만, 한 번도 이길 수 없는 이 게임이 매우 즐거웠다.
“추우니까 이제 그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하얀 손이 원우의 볼을 어루만지더니 살짝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겨 곧 차가운 입술이 맞닿았다.
늘 지는 게임, 어느 것도 예측할 수 없는 그녀의 마음.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다.
차가운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져 어둠 속에 선 두 사람의 그림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진 게임의 벌칙은 너무 달았고, 한참 만에 드러난 달 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가 된 채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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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앙] 과 4 대리 님의 기획안이 상신되었습니다.
[본사] 대리의 [직능 권한]에 의한 [긴급 결재권] 사용으로 윗선의 결재 없이 [본사] 직속으로 업무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 관련 지부의 [사고사] 팀에게 협조 공문이 곧 전달됩니다.
…, 4 대리 님의 성공적인 업무 수행을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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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업무 수행을 기원해 주다니…, 친절하군요.”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아주 작고 소름 끼쳤다.
손가락이 자유롭게 온전히 있었다면 ‘우두득’ 소리를 시원하게 낼 텐데, 어쩔 수 없이 목을 한 번 천천히 움직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오랜 시간 애써 공들인 보람이 있다. 상체가 구속복으로 감겨 있고, 발목에는 사슬이 걸려 있지만, 그래도 목은 움직일 수 있다.
검고 긴 머리카락이 눈을 덮고 있었지만, 화면을 바라보는 눈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얼마 만인가, 이게 대체 얼마만의…, 고통인가.
적막하던 공간에 갑자기 우아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자연스러운 공기였다. 자신을 이곳에 버려둔, 관리자의 ‘부재’.
“다른 대리는 몰라도 나는 알아, 당신이 바라는 것을.”
마약상은 무기 거래를 하지 않는다. 단, 마약 조직 소탕 작전 중 흘러나온 무기 중 일부가 아주 자연스럽게 ‘불행’을 자초하는 인간에게 흘러들어 갈 것이고, 그리고 그 ‘불행’의 옆에 ‘어쩔 수 없이’ 부수적인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다.
인간 세계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뉴스에도 나오겠지만 어차피 지나가는 ‘사건사, 사고사’ 일 뿐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자신들에게 어떤 말도 없이 가버린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으니, ‘친절하게’ 그리 만들어 주리라.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제 감정이 스스로를 갉아먹도록…, 고통의 도미노는 완벽하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바라던 고통이라면 마음껏 만들어 주리라. 어차피 자신의 존재 이유는 그것이니까.
“큭…, 큭큭큭….”
우아하게 울리는 선율 사이로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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