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도 끝도 없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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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맑은 술잔 하나. 그리고 초록색 병 하나. 누가 시킨 건지 알 수 없는 안주 하나.
누군가와 늘 함께 왔던 포장마차에 혼자 앉아있으려니 뭔가 몹시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 플라스틱 의자에 앉을 때 까지도 자신은 그저 우동이 한 그릇 먹고 싶어서 온 것뿐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한다.
“정말 그냥 가?”
“응. 그냥 가요. 내가 알아서 갈게요, 형.”
그냥 술이 마시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저 캐리어는 어쩌고.”
“아, 참. 저거. 저건…, 형이 좀 싣고 갈래요? 아, 아니다. 일단 둬요.”
몇 시간 전, 승철과 함께 살던 곳에서 짐을 대충 챙겨서 나왔다.
“조금만 있다가 갈게요.”
일상의 안온함이 한동안 계속되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의 생활이 너무나 바빠도 눈만 마주치면 깔깔거리다가 입을 맞추고, 서로의 체온을 찾던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것 같아서 아쉽기만 한 순간들이, 맑은 잔에 담겨 지금 입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정한아, 바빠?’
‘점심은? 아직 밥도 못 먹은 거야?’
‘어디야? 언제 오는데? 내가 데리러 가?’
정한의 진로가 예상했던 방향이 아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때도 승철은 묵묵히 옆에 있어주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지만, 함께 하던 일상은 어쩌면 그때부터 변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야,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냐.’
‘걱정하는 줄 알면 연락이라도 주던가.’
‘일단은 씻고 얼른 자. 나중에 이야기해.’
평범하게 그냥 ‘유치원 원장 아들’ 역할에 맞게 살았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역시 자신이 전혀 엉뚱하게도 연예계로 발을 들이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된 걸까. 졸업과 취업,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던 자신의 ‘애인’도 그냥 평범하고 바쁜 회사원이 되었고, 어느새 생활 패턴이 달라져 같이 살면서도 하루에 한 번 얼굴을 제때 볼 수 없는 날이 많아졌다.
‘또 일찍 나가야 한다며, 나도 내일은 일찍 나가야 해.’
‘나도 야근이었어. 너만 바빠?’
짧은 말에 서운함이 묻어나고, 가끔 마주하는 표정에서 느껴지는 얕은 감정 사이로 자신이 모르는 상대방의 시간을 견딜 수 없을 때 쯤에는 사과의 말만 늘어났다.
‘미안…, 어제 일이 너무 많아서. 예민하게 굴었어. 미안해.’
‘알았어, 내가 미안해. 나중에 이야기해.’
그 사과는 상대방이 아닌, 자신에게 돌아와 더 큰 미안함, 그리고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되었다.
-“더는 안 되겠다. 내가 나갈게”
-“…, 왜 그래.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
-“왜 그러는지 너도 알잖아. 우리…,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얼굴은 보고….”
-“너 오늘도 야근이지? 그럼 너 없을 때 짐 가지고 갈게.”
-“야!”
-“나중에 연락하자.”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째 서로의 부재 아닌 부재로 엉망인 거실과 주방을 보고, 정한은 한숨을 쉬었다. 오래도록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집안일을 미룬 적은 없었다.
자신은 광고 촬영으로 새벽부터 나가야 했고, 승철은 늘 그렇듯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출근했을 것이다.
미루지 않았지만, 그대로 있을 뿐인 집안일처럼. 두 사람의 관계도 그냥 고정된 채 나아가기는 커녕 서로를 갉아먹는 것 같았다.
촬영장에서도 오늘 짐을 정리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문득…, 돌아오는 차 안에서 든 생각이었다.
오늘도 누군가 한 명은 상대방의 부재중인 시간을 오롯이 지켜야 하는구나 싶어서.
“형, 저 회사 오피스텔 써도 된다고 했죠?”
또다시 그 시간을 견딘다고 내일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서.
캐리어에 대충 짐을 넣고, 현관문 앞에 세워두고 거실 정리를 했다. 함께 소파 위에서 영화를 볼 때 둘둘 말고 있던 담요를 예쁘게 개어서 두고, 언젠가 정한의 생일에 승철이 들고 왔던 아직도 이름을 못 외운 화분에는 물을 주었다.
손 닿는 곳마다 이상하리만치 뚜렷한 기억들. 주방에는 아직도 커플 머그컵이 걸려 있고, 정한이 마음에 든다고 한 마디 했을 때, 승철이 주문해 준 앞접시와 토끼 모양의 주방장갑까지…. 커플로 산 운동화를 들고 갈까 말까 고민하며 현관에 서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어디야?”
-“집. 이제 나가려고.”
-“너 진짜….”
-“바쁠 텐데 전화 끊어. 나중에…, 퇴근하면 통화하자.”
-“정한아, 잠….”
역시 그냥 두고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캐리어를 끌고 나오기는 했는데, 막상 가려니 이상하게 우동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여기 앉아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술이 고팠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니다.
역시 사실은….
“너 야근 아니었어?”
“…, 간다며.”
“어, 이거만 마시고 가려고.”
늘 같이 오던 포장마차에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있으면 이렇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자신의 술잔을 빼앗아 갈 것 같아서. 그래서 여기…, 내내 앉아 있었다.
“그만해. 이거만 마시고 같이 집에 들어가.”
“집? 난 집 없는데?”
“윤정한.”
“나 집 없어.”
늘어난 술병만큼 조금 흐트러지는 정신과 쉽게 흘러나오는 감정들에 정한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최대한 담담하면서도 또박또박.
“이제 네가 없어.”
“내가 왜 없어. 여기 있잖아.”
“우리가…, 없어.”
또박또박 말하는 한마디마다, 이상하게 술잔에 술이 더 채워졌다. 얼마 전 염색한 갈색머리를 거칠게 넘기며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승철을 똑바로 쳐다봤다.
“더 이상 같이 있다가는 내가 너를 망칠 것 같아. 네가 힘든 거 난 싫어.”
“너는.”
“뭐가.”
“넌 괜찮아? 이대로 가면 넌 안 힘들 것 같아?”
“…응.”
“알았어.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가.”
하던 일을 모두 제쳐두고 달려왔다. 사실 정한의 연락을 받은 후부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갑자기 무작정 나간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봐야겠다 싶어서 오기는 했지만, 마주한 얼굴에 있는 처음 보는 표정에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없다.’는 그 말에 더더욱 잡기 어려웠다. 아니, 사실 슬펐다.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정한의 마음이 어떨지 알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몰라서.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게 자신의 책임 같아서. 자신이 아니라고 한들 정한이 믿을 것 같지도 않아서.
더는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은 여전하다고, 네가 하는 그 말은 전부 사실이 아니라고…, 그렇게 부정하려 하면 할수록 지금은 더 상처만 낼 것 같으니까.
지금 목이 메이도록 슬픈 건 자신인데, 술잔에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건 정한이었다.
결국 기싸움하듯이 앉아있고 싶지 않았던 승철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모르게 서류 가방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일단 일어나. 데려다줄게.”
“…….”
“캐리어 가져가야 되지?”
승철이 정한의 옆에 세워둔 캐리어 손잡이를 잡는 순간, 뭔가가 날아와 재킷을 스쳤다. 돌아보니 나무젓가락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나, … 진짜 가?”
“가고 싶다며. 넌 안 힘들 것 같다며.”
“…….”
“너하고 싶은 대로 해. 언제나 그랬잖아.”
자신도 모르게 나무젓가락을 던졌다. 그리고 제가 먼저 입 밖으로 꺼낸 이별인 주제에, 투정 같은 질문이 나왔다. 정말 이런 걸 원했던 건가.
사실은 ‘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건가. 그도 아니면 ‘우린 여전히 괜찮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한 마디가 듣고 싶었던 건가.
뭐가 되었던, 지금 승철의 입에서는 나올 것 같지 않은 말이었다.
‘털털’ 거리며, 캐리어 바퀴가 내는 소리를 따라서 정한은 입술을 꼭 깨문 채로 승철과 나란히 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한 걸음씩 디딜 때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멀어질 때마다 같이 했던 순간들을 버리고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
“회사 오피스텔.”
“주소 불러봐.”
이사를 도와주는 친한 친구처럼 오피스텔까지 캐리어를 옮겨주고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가는 승철을 보고 정한은 결국 현관 앞에서 주저앉아서 소리 내 울었다.
그 긴 시간은 어떤 의미도 없었는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구나.
제가 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승철은 돌아보지도 않았고, 돌아서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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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좀…, 많이 힘들어요.
난 괜찮다고, 힘들지 않을 거라고 거짓말했지만, 사실은 너무 많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때가 가끔 있어요. 가끔이 아니라 자주…, 사실은 매일, 매 순간이 그렇더라고요.
걔도 저처럼 저 때문에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그건 또 싫어서. 그게 아니면 힘들 때라도 내 생각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또 그래서 내 생각이 자주 나면 그것 때문에 힘들었으면 좋겠다 싶고…, 그렇게라도 생각이 났으면 좋겠다고…, 도돌이표처럼 계속 반복하고 반복해요.
“참 못되고 못난 마음만 자꾸 커져서 생각 안 하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안 되네요.”
“거기 우동 먹으러 갈 거야?”
“오늘 같은 날씨에 딱 이잖아요.”
“너도 참….”
“고마워요, 형.”
촬영이 끝나고 모처럼만에 시간이 비었다. 관리하던 것도 며칠은 내려둘 수 있다고 하니, 한쪽으로 밀어두었던 감정들과 가라앉았던 어떤 것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차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하다가 저도 모르게 독백처럼 그렇게 또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늘 듣던 레퍼토리라서 매니저는 이제 그냥 듣기만 할 뿐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고, 정한은 그런 반응이 오히려 고마웠다.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요, 그냥 가요. 어차피 형 술도 못 마시잖아요.”
“그 친구…, 오늘도 못 만나면 그냥 가.”
“걔 만나러 온 거 아니에요.”
“알았어, 그래. 나 저기서 30분만 있다가 갈게. 그전에 다 마시면 연락해.”
술잔 하나, 우동 하나. 그리고 내리는 비까지. 포장마차 천막 위로 투둑거리며 소리가 나는 것도 운치 있었다.
그런 날에는 꼭 둘이 시간을 내서 여기에 나란히 앉아 우동을 먹고 소주도 마셨다. 그리고 우산 하나에 꼭 붙어 집으로 돌아갔다. 알딸딸하게 취한 기분에 좁은 우산 하나 안에 맞붙어있는 체온으로 서로를 녹이며 ‘찰박’ 거리는 소리에 걸음을 맞춰……, 씨발.
“뭐가 이렇게 많아…, 버리고 버려도.”
목구멍에 넘어가는 액체만큼 그냥 사라지면 좋으련만. 잠이 들었다가 깨고, 운동을 하고, 끼니를 챙기고, 일을 하고, 이렇게 감상에 젖을 때 까지도 당연한 듯 모든 것들에 스며들어 있다.
자신의 앞에 있던 빈 잔에 술이 저절로 다시 채워졌다. 딱 적당히 채워진 술잔을 보다가 정한은 다시 웅얼거렸다.
“혼자 갈 수 있다니까요. 근데, 형. 이렇게 자주 오는데, 왜 한 번도 못 보는 걸까. 아…, 걔 만나러 온 거 아니라고 했던 건 진짜예요. 진짠데…, 그래도 한 번쯤은 더 볼 수도 있잖아요.”
“…….”
“참 쉽지 않네요. 너무 오래 함께 했나 봐요. 버리고 버려도….”
“…….”
“오래된 물건 버리려고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거 있잖아요. 내가 딱 그러고 있어요. 매번…, 어라.”
그제야 다시 자신의 술잔을 채워주는 손에 눈길이 갔다. 손가락에 끼워진 익숙한 반지도.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한 번쯤은 더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사람, 그 사람이 있었다.
미련하게…, 미련하게. 나도 나지만, 너도 참….
“너…, 뭐야?”
“이거만 마시고 그만 가.”
“…….”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거야?”
“그런 게 궁금했어? 잘 먹어.”
“그래, 다행이네”
“…….”
“…….”
“같이 마셔줄 거 아니면 먼저 일어나.”
“나도 우동 먹으러 온 거야.”
“그럼 한 잔만 같이 마셔.”
승철이 제 앞에 새로 놓인 술잔을 바라보다가 단숨에 없애는 걸 보고, 정한은 그 술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채워도 채워도 허전한 마음처럼, 술잔의 술도 오래가지 않았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
“…….”
“왜…, 안 잡았어?”
정한이 테이블에 턱을 괴고, 살짝 삐딱하게 고개를 돌려 묻는다. 맑은 눈동자가 묻는 질문, 그 눈동자와 비스듬하게 시선을 맞추고 그대로 승철은 술잔의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시선은 전혀 어긋남이 없었다. 그리고 오로지 저만 바라보는 이 시간이 얼마만이던가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만을 바라보던 그 시간이…, 얼마만이더라. 시선은 부딪친 채 그대로 계속 떨어질 줄 몰랐다.
“네가 가고 싶다고 했으니까.”
빗소리가 더 요란해졌다. 요란한 빗소리와 반대로 승철은 아주 천천히 정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취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을 따라서 몸이 움직였을 뿐이다.
“그게 다야?”
“그 이유 말고 뭐가 더 있어야 해?”
“…, 넌 아니었구나.”
“…, 응. 당연히. 난 아니었어.”
“미안.”
정한은 장난치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맑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술기운이 오르는지 턱 괴고 있던 손을 풀며 오른쪽 눈두덩이를 살짝 긁는다. 이번에는 승철이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빤히 봤다.
보고 싶었어, 아주 많이.
연락하고 싶었어, 너한테.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러지 못했어.
하고 싶었던 말들이 아주 많았다. 그 말들을 다시 털어 넣고 삼켰다.
그날 그렇게 정한이 떠난 후, 정한의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다. 다음 날 필요할 거라고, 가끔 사다 줬던 죽집을 알려주었고, 단골이었던 디카페인 커피를 파는 카페와 그 밖에 정한이 좋아하는 식당들을 알려주었다.
살짝 마른 볼을 보니 전혀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무언지를 떠올렸을 때 생각난 대로 했던 일이었다
고개를 기울인 채 그대로 술잔을 다시 털어 넣고 나니 정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래.”
“응.”
“안녕.”
“응.”
“…….”
“……”
“…, 나쁜 놈.”
“응.”
승철의 무뚝뚝한 한결같은 대답에 정한이 또 나무젓가락을 가볍게 던지고는 그대로 포장마차를 벗어났다. 승철은 긴 숨을 내쉬다가 정한의 자리에 제법 많이 세워진 초록색 병을 보고는 곧 얼른 일어나 뒤 따라나섰다. 비가 세차게 오는데, 우산도 없이 저 앞에 걸어가는 것을 보고, 얼른 뛰어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춥다.”
“그러게 왜 비를 맞아.”
“우산이 없으니까.”
“… 가. 데려다줄게.”
“네가 없으니까….”
또 그런다. 난 여기 있는데.
이상하게 목이 메어서 말은 나오지 않고, 정한의 어깨만 바짝 당겨 우산 안으로 들였다. 비틀거리는 정한의 마른 몸을 데리고 걷다가, 점점 떨궈지는 고개를 보고 승철은 길게 한 숨을 쉬었다.
“붙잡으면…, 있을 거야?”
“…….”
“정한아.”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 때문인지 정한에게 자신의 물음이 닿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이 지나고 나면 좀 나아질까.
난 지금 여기 있는데, 넌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힘든 걸까.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어렵다면 내가 가면 되는데, 나한테 조금이라도 손 내밀고 잡아달라 하면 잡아 줄텐데.
요란한 빗소리 사이로 위태로운 두 사람이 ‘찰박’ 거리는 소리에 걸음을 맞춰, 나란히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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