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소설 어디쯤에서...
20130519
겨울이 가야 봄이 오는 것이 아니고,
겨울의 숲이 봄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숲은 계절을 기다리지 않았고,
겨울의 한복판에 봄이 이미 와서 뿌옇게 서려 있었다.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중
되씹어야 하는 문체, 라고 친구는 표현했다. 서점에 나열된 책들을 뒤적이며 그랬다.
그래서 별로라고 했다. 친구에게는 김훈 작가의 문체가 읽는 순간 한 번에 이해되거나 가슴에 ‘쿵’하고 닿는 글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런 비슷한 이유 때문에 김훈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을 읽다가 역사적 사건의 본질 외에 그 속에 섞인 다른 것들이 보였다. 사실은 거대한 사건이나, 크게 기록되는 인물들보다 더 중요한 순간과 인간들이 있는 것 같아서 한 참을 읽다가도, 다시 몇 장 앞을 뒤적이기 일쑤였다.
‘공무도하’, ‘흑산’, ‘내 젊은 날의 숲’도 마찬가지였다.
인물과 인물, 그리고 사건과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지독하게 발을 담그고 있는 우울함, 회색, 안개 같은 것들이 책속에서 흩어져 있어서 몇 번이고 그 속을 다시 헤집고 뒤집어 보면서 곱씹어버리게 만들고는 했다. 그래서 책장에서 김훈 작가의 책을 다시 꺼내어 읽는 날은 그런 것들이 내 기분이나 감정에 섞여 있는 날이 많다.
어떤 날은 언제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던 감정들이 다시 내 기억 속에서 파도치듯이 밀려와 나를 덮칠 때가 있다.
그 파도에 떠밀려 넘어지느냐, 아니면 그 파도에 휩쓸려 그대로 둥둥 떠다니느냐는 순전히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끔은 그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서 저 멀리까지 나갈 때도 있는 것 같다. 둥둥 떠 다니다보면 어느새 나만 아는 무인도로 갈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안식과 평화를 얻을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