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소설 어디쯤에서...
20130527
“나는, 우린…,
당신들한테 미안하지 않아….”
- 박희정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중
만화가 중 박희정의 만화를 좋아한다.
신비로운 그림체와 함께 몇 마디 되지 않는 대사로 장면에 몰입하게 만드는 몇 몇의 작품들. 그 것은 굳이 여타 다른 수식어를 붙이며 표현하지 않은 채 그저 ‘훌륭하다’고 추천할 정도로….
‘호텔 아프리카’라는 작품을 처음 봤을 때,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 다시 읽었을 때, 몇 년 후 소장본을 전부 갖게 되어 비오는 날 다시 정독했을 때의 느낌은 모두 각각 달랐다.
사랑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을 많은 이야기가 아닌데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어머니와 아이, 아이와 친구, 친구와 친구, 그리고 다시 어머니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까지…. 모두 너무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이라서 ‘사랑스럽다’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것을 꺼리는 나로서도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마틴 앤 존’도 그러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퀴어 물에 대한 느낌을 처음 갖게 된 것도 아마 박희정의 작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부각되지는 않지만 늘 잔잔하게 깔려 있던 동성애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대해서 나도 어느 사이 동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좋다. 그렇게 늘 좋은 것들 중 하나가 드디어 제대로 작품이 되어 나왔을 때, 나는 기꺼이 지갑을 열어서 사들였다. 만화책 단권으로 4권이라 짧다면 짧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속에 있는 감정들은 절대 짧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짧지 않은 감정들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짧은 감정들로 이어지는 일상이다.
흘러가는 것 같지만 몇 번이나 거세게 감정이 굽이치는 일상을 보내면서, 하루에도 여러 번 나를 뒤 돌아보는 요즘…. 이상하게 가라앉아있는 부담들은 버리고 싶다. 안 좋은 일은 한 번의 웃음으로 잊고 싶다. 누군가에게 미안하지 않다면 나는 그 것으로 되었다. 아니, 미안하다고 해도 나는 상처받지 않았으니 되었다. 조금은 이기적인 날도 하루 쯤은 있어야 하니까.
되었다. 괜찮다. 아니다, 괜찮다.
응, 그래,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