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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dcat혜진 Feb 17. 2016

감기와 일상

2016 일상과 현실 어디쯤에서...

20160121





한 동안 계속된 감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몸속에 깊이 내재 되어있었으며,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집요하게 따라다녀서 기침이나 재채기와 콧물이 일상인 삶이다.


내 생애 가장 지독했던 감기는 2014년 12월의 겨울. 그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진아, 할머니 돌아가셨다.


무척 추웠던 날. 감기 때문에 약을 먹고 일찍 잠들었던, 그 새벽에 받은 전화.


나는 대학교를 진학하면서 이 후 본가에는 자주 가지 않았다. 삼십 년 가까이를 같이 지내온 엄마와 할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라는 그 골의 깊이는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짐작은 했었으나 불편한 마음에 자주 가지 않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는 두 사람 모두에게 혈연이라는 진한 관계였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하고 측은하다 생각했던 쪽은 엄마였다.


할머니의 오랜 병간호로 엄마는 몇 년 동안 머리카락이 빠지고, 얼굴에 홍조와 두드러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 명절 때 마다 삼촌들이 건네주는 돈 봉투와 할머니의 가래 끓는 기침소리만큼 엄마는 점점 기력을 잃어갔다. 몇 마디의 말로, 관용적인 문장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현실들이 폭풍처럼 그리고 비와 눈처럼 지나갔다.


 그 세월이 지나가는 동안 엄마는 온 몸으로 폭풍을 맞고, 비에 젖고, 눈에 얼어붙어야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요양원으로 할머니가 들어가셨고, 가신지 5년 후 돌아가신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무도 엄마를 대신 할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엄마가 화를 내며 싸우기를 반복하는 동안 아빠는 어느새 제 3자의 입장이 되어버렸다. 할머니의 아들이었던 아빠도, 자식들이었던 삼촌도, 고모도. 하물며 엄마의 딸인 나조차도 그 짐을 나눠 질 수 없었다. 오롯이 혼자 감당했어야 할 그 스트레스와 집요하게 따라붙는 병의 경계에서 엄마는 자신을 잃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가장 많이 눈물을 흘리며 운 사람도 엄마였다.


엄마도 알았을 것이다.


 할머니 또한 모진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보다 ‘엄마’라는 존재로 살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친자식인 아빠보다 혈연도 아닌 ‘며느리’라는 위치의 엄마여서, 그래서 더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 때 난 목이 쉬어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목이 말이 아니었던 적은 태어나서 그 때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장례식장에서 아주 많이 울어서 목이 쉰 줄 알았다. 하지만, 난 그 장례식장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나 그저 심한 독감이었다.


엄마는 울었고, 나는 장례식장 구석에서 앓았다. 엄마는 피로회복제를 먹었고, 나는 감기약을 먹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울음 속에서,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엄마의 울음 옆에서, 나는 멍하게 생각했다.


산 자의 울음은, 죽은 자에게 닿지 않을 거라고.’


어디서 읽었던 말인지, 아니면 그냥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말이 생각났다.


가까운 친족의 장례식장은 일상에 가깝다. 끼니때가 되면 밥을 챙겨야 하고, 어두워지면 자야하고, 누구든 손님이 오시면 제대로 모셔야 한다. 목소리를 낮추어 웃고, 울고. 그래서 사실은 죽은 이와는 동떨어진 그저 그런 일상이다. 추운 날에 밖에서 관을 메고 갈 때, 눈물을 훔치며 따라가는 사람들도 그런 일상의 연속이다. 버스 안에서 조의금을 나누고, 상조회와는 할 일을 나누고, 쪽잠을 자던 사람들은 잠을 나누며 그렇게 어떻게든 현실을 이어나간다.


 1년이 지난 후. 죽은 이의 생신날을 맞이하여 친척들과 가족들은 모였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다들 기분 좋게 함께 밥을 나눠먹었다고 하였다. 그런 것이다. 결국, 일상을 짊어지고,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죽은 이가 아니다. 살아있는 오늘의 우리다.


 감기의 공격에도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생강차를 끓이는 내가, 추워도 딸내미 걱정을 먼저 하는 엄마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에게 유독 신경을 더 많이 쓰려고 노력하는 아빠가…. 지금, 그리고 오늘의 우리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한글 파일을 오랜만에 켜니 쌓아두었던 말들이 튀어나온 것 같다.


언제나 ‘지금’은 한 번 뿐이다. 이 순간에도 글 속의 ‘일상’은 결국 그냥 일상이다.




감기 조심 하세요.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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