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dcat혜진 Jan 27. 2016

일상과 상상,
현실과 소설의 경계 어디쯤에서...

-현실과 소설 어디쯤에서...

20130422




 ‘Solo’ 그리고 ‘홀로’는 닮은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다르다.


 ‘Solo’가 유독 모를 앙칼진 느낌으로 다가온다면 ‘홀로’는 느슨한 외로움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했다. 'Solo'가 다른 이들이 나를 말하는 단어라면, '홀로'는 내 스스로가 나를 짊어지게 만드는 말이었다. 


자립적인 스스로가 되자고 생각한 적은 딱히 없으면서도 다른 이에게 손 벌리기 힘들어하고 가족에게 조차 내색하지 않는 것은 성격이 아닌 후천적 증후군 같았다. 그건 어릴 적부터 자라온 환경 탓인지도 모르고, 어른들에게 듣고 자라온 여러 가지 이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성인이 된 후 연인에게 많은 애정을 갈구하거나, 친구들에게 관심 받고 싶었냐면, 그 것도 아니었다. 


 아니, 사실 알고 보면 무의식중에 나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양보하고, 이해하는 척 했던 일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번도 그런 이유로 불행하다고 느껴 본적은 없으니 다행인 것이다. 자기 전에 문득 ‘Solo’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다가 ‘홀로’라는 단어와 겹쳐져 생각이 났다. 


발음의 차이일 뿐, 의미는 비슷할 것이다. 단독의, 혼자서, 등등 여러 가지 의미를 내재하겠지만, 어쨌거나 둘이 아닌 오롯이 하나. 네가 아닌 나. 타인이 아닌 스스로인 것이다. 내 안의 나를 오롯이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내가 나를 너무나 잘 안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있을까. 


그러면서 언제나 ‘홀로’ 있다고 말하고, 간혹 타인에게는 스스로를 가리켜 ‘Solo’라는 단어를 내뱉는다. 나 또한 그러니까….


 유독 외로워서 혼자 울었던 기억이 몇 번이나 있었다. 헤어짐을 겪은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으며, 그 날 괴로웠던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무작정 그랬었다. 왜 우는지, 지금 눈물이 나는 이유가 뭔지 떠올려 봤지만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서 저 깊은 곳에 있던 단어를 끄집어내 들여다보니 그랬다. ‘홀로’ 있어서 외로웠다. 내 마음 안에 내가 오롯이 ‘홀로’ 있었다. 그렇게 울다가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Solo’가 되었다. 앙칼지게도 스스로를 혼자 있게 만들고, 또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지냈다.


 그리고 지금도 해가 뜨고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Solo’로 웃으며 지낸다. 


 시간이 지났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앞으로 달라질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렇게 외로움의 시간조차 딱딱하게 굳어져 느끼지 못할 ‘홀로’ 된 마음속의 나…, 더는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고, 기대지도 않는 딱딱하게 굳어져 버릴 나. 그럼에도 진심으로 불행하지 않다고 느끼는 나….


 ‘Solo’ 그리고 오늘도 ‘홀로’, 언제나, 이대로.






작가의 이전글 일상과 상상, 현실과 소설의 경계 어디쯤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