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상상 어디쯤에서...
20130423
처음은 언제나 소중하고 아련하다. 그래서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읊조리면 더 소중하고 아련해진다.
얼마 전에 ‘우리들이 있었다.’ 라는 영화를 봤다. 전편, 후편을 합해서 4시간 정도의 분량이었는데도 계속 보고 싶어진 마음에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만화가 원작이며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왔다지만, 영화를 먼저 보고 싶었다. 대강의 스토리는 알고 있었기에 남녀 주인공의 간절한 마음을 조금 더 생생하게 움직이는 표정이나 장면들로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 나오는 남자주인공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속에 있던 남자주인공은 내가 굉장히 많이 애착하며 사랑했던 첫사랑을 닮아있었으니까.
외모, 성격, 그리고 웃는 모습도….
이런 사실은 최근에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들 중의 대부분은 그 첫사랑과 닮은 점이 한 가지쯤은 있다는 사실…. 내가 제법 많이 좋아하는 어떤 가수도, 일본배우도 모두 그때의 그 첫사랑과 닮은 점이 많다. 물론 지금도 그와 닮았는지는 모르겠다.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십여 년 전 내가 사랑했던 ‘그 때’의 ‘그 사람’일 테니까.
비교적 예쁘장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마초적인 말투를 자주 쓴다, 낯선 타인에게는 경계심이 강한 반면 내 사람이다 싶으면 다 내어준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지만 이기적이지는 않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며 그런 자신의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게임과 만화책을 좋아한다, 눈치가 빠르고 적응능력이 뛰어나다, 언변이 훌륭해서 대화를 잘 이끌고 뒤 끝이 없다, 상상력이 풍부해서 이야기를 잘 만들어 들려주었고, 무엇보다 혈액형은 AB형.
쓰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기억속의 첫사랑을 떠올린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우리들이 있었다.’를 보면서 몇 번이나 되돌려봤던 장면은 남자주인공이 옥상 위에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던 장면. 그 후로도 영화를 두 번 씩이나 다시 봤지만, 그 장면만큼은 두세 번씩 꼭 되돌려서 봤던 것 같다. 절망에 빠진 주인공이 케이크 위의 촛불을 앞에 두고 혼자 멍하게 앉아있던 장면 또한 그러했다. 원작 만화책에서의 주인공과 싱크로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분명 현실과는 다른 전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전개는 따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되는 이유만큼은 충분했다.
그 영화 속의 몇 장면만으로도 깊숙하게 넣어두었던 나만의 첫사랑을 꺼내어서 들여다보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아팠던 순간들이 함께 떠올라 버렸으니까. 하지만 아팠다고 해서 불쾌하거나 슬픈 감정이 들었다면 영화는 이미 기억에서 지워졌을 거다.
그런 내 감정을 읽어낸 것처럼 영화는 거의 막바지 쯤, 여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서 나에게 이런 말들을 읊어주었다.
“추억은 항상 다정하다.
그 추억이 어떻게든…, 앞으로도 쭉…,
당신에게도 다정히 남아있기를…….”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이라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내밀한 감정들. 그래서 행복했던 기억뿐만 아니라 아팠던 순간들조차도 추억 속에서 만큼은 빛나고 따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나만의 순간들이라서 더더욱 그러하겠지.
그러니 부디…, 내가 기억하는 당신에게도 그 모든 추억이 다정하게 남아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