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상상 어디 쯤에서...
20130424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머뭇거리게 된다. 좋아하는 책의 종류는 많은데, 설마 그걸 다 알려주길 원하는지….
내 힘으로 돈을 벌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사고 싶은 것들을 나만의 책임 하에 살 수 있다는 거다. 책임이라고 말하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가진다는 건 뭐든 책임이 따르는 행위 같다. 어쨌든 그런 의무 혹은 책임 하에 사게 되는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책이다. 책은 내 스스로 가지는 것들 중에서 책임보다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 중에 하나이다. 큰 문고에 가서 직접 책을 고를 때도, 인터넷으로 꼼꼼히 리뷰를 읽을 때도, 그리고 내 손에 들어온 책의 표지를 만지며 질감을 음미 할 때마저도 그 즐거움은 연계 되어 있다. 그래서 항상 책은 그 어떤 사람만큼이나 나를 기다리게 하고 설레게 한다.
나에게 책을 읽는 기분을 표현하라면, 씹어 먹는 질감의 것들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풋풋한 연애소설을 읽을 때는 달콤한 사과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 것 같고, 추리소설을 볼 때는 비릿한 육포를 질겅이는 것 같으며, 건조한 인문서나 경제학 관련 책을 읽을 때는 다이어트용 건식과자를 먹는 기분이고, 역사서를 읽을 때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잘 말린 북어포를 잘근잘근 씹어 먹는 기분이다.
……쓰고 보니 우스개 소리 같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기준이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읽는 방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음식을 삼키기 전에 입안에서 오래도록 곱씹고 되씹어내는 것처럼 책을 읽는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이 책의 지면으로 내기까지 단 1초도 허비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며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고 문장과 문장을 최대한 똑바로 삼키려고 애쓴다. 특히나 무겁다고 생각되는 소설이나 산문일수록 그러하다. 무겁고 단단한 음식은 오래 씹지 않으면 체하듯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은 책은 나에게 늘 체증처럼 다가오니까.
그렇다고 늘 책을 심각하게 읽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신선한 과일 스무디나 달달한 아이스커피 같은 음료처럼 휘리릭 마시고나면 한결 마음이 상쾌해지는, 그냥 있는 그대로 마셔버리는 책들도 있기는 하다. 굳이 시간을 오래 끌어 미적지근해진 음료는 마시고 싶지 않으니 한 번에 말끔히 비워버리듯 읽어버리면 뭔가 개운한 기분이랄까. 그래서 여름에는 청량한 음료와 그 보다 더 청량한 기분이 드는 소설들에 구미가 당긴다.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맛있는 음식들과 좋은 책들은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문득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면서도, 나의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더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이 오늘도 새벽까지 인터넷에서 새로운 도서들을 열심히 뒤지는 내 모습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비싼 선물하는 사람보다, 둘만의 서재를 꾸미자고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겠지.
어쨌든…, ‘어떤 책 좋아하세요?’ 보다는,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계세요?’ 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훨씬 더 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