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당신을 지나치는 수 많은 타인의 순간들

by Kidcat혜진

20160422





오늘도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오면 반갑게 탄다.


교통카드를 찍는 순간 울리는 반가운 인사. “감사합니다.”


버스 요금, 그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혼자 있지만 또 혼자 있지 않는 시간을 산다. 목적지까지 내가 모르고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 엉키며 스치는 공간. 그래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음악을 듣고, 어제의 야구 경기를 다시 되짚고, 누군가의 생각을 궁금해 하고, 게임에 몰두하며, 때로는 책을 읽는다.



“양 팀 선발 투수에게 미안하다.”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다시 스포츠 뉴스를 슬금슬금 읽고 있다. 물론 ‘야구친구’라는 재미나는 부분도 놓칠 수 없다.


어제의 경기에서는 두 팀 모두 투수가(만!) 잘 한 모양이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연고지의 팀은 며칠 전 창단 후 처음으로 9위를 했다가 다시 반등해서 올라왔다. 그렇다. 이제는 ‘이빨 빠진’ 사자라서 유명한 카툰에서도 서민으로 전락한 ‘삼성 라이온즈’이다. 경기장만 좋아지고 성적은 그냥 하위권이 아니겠느냐는 나와 내 친구와의 입방정은 정통으로 들어맞고 있어서 매우 슬프다. 그래서 강제로 MLB를 공부하게 된다. (‘ _’) 먼 산….


덕분에 챙겨보지 않던 MLB경기를 보고, MLB로 진출한 선수들의 소식을 기사로 눈동냥하고 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와 내 친구가 함께 걱정해 주었지만, 그 걱정은 역시나 반대로 드러나고 있는 박병호 선수의 기사를 읽다가, 환승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서둘러 내린다. 전에도 한 번 글에 쓴 적이 있지만 나와 내 친구가 칭찬하는 선수들은 못하고, 안 될 거라고 걱정하면(걱정이라 쓰고 욕이라고 읽는다.) 잘 한다. 귀신이 같이 잘한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미안해요, 김현수 선수. 고마워요, 박병호 선수.)



“엣취!”



환승은 내린 정류장에서 바로 할 수 없다. 꽃가루가 날리는 한 정거장을 걷는다. 도로는 마침 공사 중이다. 먼지가 날린다. 한 코스를 걷지만 걸으면서 핸드폰을 보지는 않는다. 걷는 동안에는 가로수에 피어난 벚꽃을 바라보거나, 은행잎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하는 그 푸른 어린잎을 지나치며 시선으로 훑어낸다. 벚꽃,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만우절에 발표한 가수 10cm의 신곡 ‘봄이 좋냐?’를 거의 매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니, 바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몽땅 망해라!’ 수십 번도 더 돌려서 듣고, 불렀다. 꽃가루는 비염인 사람에게는 몹시 불편한 존재이다. 나다. 내가 그렇다. 몽땅 망해라. 벚꽃! 그래봤자 식물의 생식기 같으니! 지금은 비가 몇 번 오고 난 후라서 벚꽃이 다 떨어지고 없다.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 오, 놀라운 자연의 순리라니.


도착한 정류장에서 다시 핸드폰을 꺼내지만, 연예 기사는 패스다. 연예인의 사생활, 지금 현재 무슨 프로그램에서 누가 말실수를 했는지, 누가 웃겼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요즘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태양의 후예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보여서 지겨울 정도다.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건 알겠는데, 좀 심하다 싶을 정도다.


기다리던 버스가 다시 온다. “환승 입니다.”


다시 새로운 버스에서 시작 되는 새로운 타인과 새로운 나의 공간. 그리고 시작 되는 오늘의 독서.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얇고 가벼운 기계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아무데서나 꺼내서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여러 권을 받아뒀다가 읽고 싶은걸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으니 좋다.


-다시 돌아오거든 네가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것이다. 하나 만일 돌아오지 못 하거든…….

말이 끊어졌다. 갑례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살아남아라.


그런데 가끔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대목을 읽어버리면 눈물이 갑자기 차올라서 곤혹스럽다. 동학 농민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냈는데, 읽을수록 진짜 역사서 같은 기분이다. 교과서에는 몇 줄, 몇 가지의 사건과 ‘조병갑’과 ‘전봉준’로만 핥아내던 것들을 생동감 있는 인물과 그를 둘러싼 이야기로 써내려가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매우 강하다.


-대체 그 사람들은 누가 알아준답니까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을개는 그 말이 야속하여 대꾸도 못하고 눈두덩만 훔쳤다. 바람이 옷섶을 헤쳤다. 전봉준의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후세가 기억할 것이다. 다음 세상의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줄 것이다. 더팔이를 기억하고 서럽게 살아갈 옹동네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른다.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더욱 그렇게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그 때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면 서글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해야 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잊지 않으려 해야 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달라진 것도 없고, 끝난 것도 없다.


전자책은 여기까지다. 눈물이 차오르는 건 괜찮지만, 흐르면 곤란하다. 목적지가 다가온다.



“…흔히들 이런 걸 자유나 해방이라 해.
틀렸어, 구속은 이별한 후에 시작돼.
대충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게 아니지, 절대.
당연하게 여긴 존재였기에.”



이별 노래는 이미 많다. 아주, 아주, 아주, 많다. 그런데 또 새로운 이별 노래가 계속 나오는 것도 신기하다. 그만큼 이 세상에는 만남만큼 헤어짐이 계속 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타인은 모르지만 나만 알고 있는 이별도 있다. 아니면, 나만 모르고 타인만 알고 있는 이별도 있다.



“결국 서로가 혼자가 되면 알 수 있을 거야.
그리워할 만큼 그리워해도 잊지 못할 우리였음을….”



우리는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 수도 있고, 평생을 잊지 않고 살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다. ‘그리움’이 ‘잊지 않는 것’과 같은지 다른지도,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매번 헷갈려하며 다시 되짚어 돌아본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서 나를 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평온한 일상이다. 이 세상 어딘가의 누군가는 원하고 있을 평온한 일상.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내 옆으로 흘러가는 수많은 타인의 순간.

그 것이 매일의 반복되는 생활인지,

한 때의 그리움인지, 뜻 모를 서글픔인지,

잊지 않아서 찾아오는 기억인지, 되짚어 보는 추억인지,

게으른 어느 순간인지, 부지런한 오늘인지,

나와 같이 평온한 일상인지, 어제와 다른 지금인지.



아무도 모른다. 스스로만 안다. 나 또한 버스 안의 타인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오늘 나는 당신에게 어땠을까. 당신은 나에게 어땠을까.

지금도 당신의 옆으로 흘러가는 타인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내가 그러하듯이.

당신에게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책, 이광재의 「나라 없는 나라」中

노래, 10cm의 「봄이 좋냐?」/ 블락비의 「몇 년 후에」中

당신을 지나치는 수 많은 타인의 순간들, 나도 그 중 하나.

시작은 가볍게, 마무리는 감성적으로 겉치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