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야구장에 갔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20160424
처음 야구장에 갔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아직은 ‘대프리카’라고 불리기에는 그리 덥지 않은 2012년의 초여름. 직업을 놓은 나는 직업을 쉬고 있던 친구를 따라서 야구장을 처음으로 방문했었다. 나와 달리 한 번의 야구장 방문 기억이 있었던 친구. 친구는 몇 년 전에 야구의 룰도 모른 채 따라갔던 그 날이 흥겨웠던 모양이다. 그 때의 우리는 직업은 없었으나 무척 피곤했고, 무료했고, 짧은 해외여행 준비는 아직 말로만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가자고 했던 그 야구장을 따라갔었다.
당시 시민운동장이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장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올해 처음으로 개장한 삼성 라이온즈 파크는 첫 삽도 뜨기 전의 일이었다. 경기 시작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도착해서 협소한 주차장은 아예 근처에도 못 갔고, 골목 구석구석을 돌고 돌며 경차 한 대 놓을 자리를 찾았으나 결국 포기. 한 블록 정도 떨어진 대형마트의 주차장에 겨우 주차를 하고 천천히 걸어오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와아!!!”
야구장은 조금이라도 일찍 와서 여유롭게 입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날 늦게 도착했던 우리는 경기 초반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쏘아 올리는 장면을 안타깝게 놓쳤다. 경기장 가까이 다가갔을 때 건물이 무너질 듯 갑자기 들리는 큰 함성소리에 움찔하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기운에 놀랐다. 저들의 열정에 내가 동참할 수 있을지 사실은 겁이 났었다. 경기장 주변을 둘러싼 노점들의 모습과 담배냄새,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 그 노후화된 주변 공간들.
외야석 표를 샀는데, 30분 정도 늦게 입장을 했으니 앉을 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표를 들고 외야석으로 입장하는데, 외야좌석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기 전 그늘지고 서늘한 그 복도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매캐한 담배냄새, 금연공간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담배 연기가 조금씩 보였다. 여전히 오지 말아야 할 곳은 온 사람처럼 낯선 기분으로 친구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그 때 안타라도 친 건지 함성 소리가 쏟아지고, 한 발 한 발 올라갔을 때. 드디어 녹색의 인조잔디와 함께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우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이상했다. 그 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만 집중한 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로 응집된 그 열망 혹은 끝을 알 수 없는 염원이. 그리고 그런 공간 안에 내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이상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낯설음은 아니었다. 그 때까지 느끼던 낯설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피부로 직접 와 닿는 군중들의 단합된 무언가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드디어 처음으로 시야에 들어온 녹색의 그라운드. 천연잔디냐 인조잔디냐 따질 때도 아니었고, 야구장이라고는 처음으로 구경을 왔던 나로서는 이 정도도 괜찮은 경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은 정말 그랬다. 아마 비교할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의 난 완전한 야ㆍ알ㆍ못이었으니까.) 흥분, 열정, 함성. 그 이상의 모든 복합적인 것에 휩쓸려 나 또한 즐거움이 전염되고 흥겨움이 전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공격인가보다.”
펜스 그물 너머로 20명의 선수들이 보였다.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선수들은 두산 선수들이었다. 어떤 선수는 바지에 흙이 묻어있고, 어떤 선수는 모자를 고쳐 쓰며 수비를 위해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저 멀리 홈에서 배트를 들고 있는 선수도 보였다.
친구는 분명히 ‘우리’가 라고 말했다. 언제부터 저 팀을 응원했다고. 한 번도 야구팀을 응원한 적 없는 친구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 우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선수의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하얀 옷이 나도 괜히 반가웠다. 난 팬도 아니고, 그냥 아는 선수라고는 이승엽 밖에 없었는데. 심지어 그 사람이 오늘 쏘아올린 홈런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랬던 내가 계단을 계속 올라가서 외야석의 가장 뒤쪽에 섰다. 아마 내 친구도 나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나와 내 친구는 3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응원소리에 맞춰서 흥겹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외야석에서 불편한 자세로 앉아 한 손에는 치킨을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응원하던 ‘야구 늘 보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저 멀리 내야에서 흘러나오는 응원가가 뭔지 몰라서 ‘뭐라고 하는 거야?’를 외치면서도 그냥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야구공이 ‘딱’하고 배트에 맞는 순간 ‘와’하는 함성에도 이제 함께 했다. 우리 손에는 치킨도 맥주도 아무것도 없었고, 가끔은 통로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주기도 하는 불편한 자리였지만, 서 있는 내내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멀리서도 잘 들리는 응원가 하나를 골라서 그것만 나오면 함께 따라 불렀다. 그 선수가 포수인지, 내야수인지, 외야수인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그날 우리는 끝까지 신나게 웃고 노래 부르기를 반복했다.
몇 년이 지났다. 난 여전히 야구를 좋아한다. 야구장에도 가끔 간다. 타 팀 구장도 궁금해서 가까운 곳은 원정 경기도 갔다. 그 전까지 관심 없던 스포츠 뉴스도 이제 본다. 야구가 없는 겨울에는 아쉬워한다. 삼성 라이온즈 파크의 첫 삽을 뜬다는 기사를 보며 ‘언제 짓느냐.’ 했었는데, 어느새 새 구장이 지어져서 얼마 전에 신나게 친구와 다녀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야구와 관련해서 ‘처음’ 그 날 만큼의 강렬한 기억은 없다.
시도하지 않았다면, 내게 여전히 ‘처음’ 그 날은 없었을 테고, 그래서 일어나는 그 후의 재미있는 기억들도 아쉽게 놓쳤을 것이다. 놀라고, 걱정되고, 불안하고, 낯설어도 결국 ‘처음’이 지나면 그 것이 무엇이 되었든 나에게 돌아온다.
처음 야구장에 갔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얼마나 서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뒤에서 흥겹게 서있던 우리를 보고는 아들과 함께 왔던 아저씨께서 자리를 양보해 주셨던 것은 기억한다.
처음 야구장에 갔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이승엽 선수가 쏘아 올렸던 그날의 홈런이 몇 호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안타 하나에도 함성을 지르던 관중들의 열정은 기억한다.
처음 야구장에 갔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가기 전까지 왜 무료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후 야구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에 친구와 수다를 떨었던 것은 기억한다.
처음 야구장에 갔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그 날의 경기 결과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짙푸른 그라운드에서 느꼈던 낯설면서도 이상했던, 그래도 기분이 무척 좋았던 나를 기억한다.
고작 그 것 하나뿐이었을까.
단 하나의 장면으로 떠오르는 강렬한 기억이,
길고 긴 인생에서 어디 야구 하나 뿐이랴.
그러니 잊지 말자.
처음의 그 기억이 지금까지 나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이 되었는지를.
얼마나 값진 추억이 되었는지를.
얼마나 괜찮은 시간이었는지를.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었는지를.
야구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기억나지 않는 처음도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그 ‘처음’을 시작으로 ‘끝까지’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