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짧은 이야기

'가을 아침'

by Kidcat혜진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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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눈을 떴을 때,

천장에 아른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이 무엇의 그림자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참을 보고 있었다. 주문한 커튼이 아직 오지 않아서 보게 된 검은 그림자. 하얀 천장에 그것이 아른거리는 순간을 그녀는 그렇게 음미하였다.


아, 이제 이곳이 내 공간이구나.


더운 여름 한 철. 얼마 동안 지낼 공간을 찾아다니느라 애썼고, 처음 겪는 서류들과 계약서를 마주하였고, 필요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혹은 메모로 정리하며 얼마 되지 않는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고, 소박하다 못해 얼마 안 되는 그녀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아직은 낯선 이곳에 누워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오늘.


삼십 년을 넘게 살아온 어느 날, 그 어느 날.

오늘이 진짜 ‘혼자서’ ‘살게’ 된 그녀의 첫날이었다.


부모님을 떠나 대학교의 기숙사로, 친척집으로, 사촌 언니의 자취방으로, 다시 기숙사로, 그러다가 외할아버지께서 혼자 계시는 그 양옥집의 이층 방 어디쯤으로. 그렇게 십 년을 넘게 지냈다.


에어컨이 없는 2층의 양옥집에 그 여름, 찜통과 맞먹는 더위와 열대야. 욕실의 물을 틀면 차가운 물이 절대로 나오지 않던 8월.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아 전기장판으로 견뎌야 하는 추위. 주방에서 솥에 물을 데워 욕실로 가져가야 하는 겨울 동안의 수고로움.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한 날들을 그녀는 수긍했다.


적응이 아닌, 수긍.

그것은 어쩌면 그녀가 받아들여야 하는 당연함이었다.

불편한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자신을 누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그녀였기에 그것은 받아들여야 하는 일상이 되었다. 십 년을 넘게 지내며 그녀를 딱하게 여기고 미안해하는 엄마에게조차 그녀는 괜찮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딱 한 가지. 그녀가 가끔씩 안타까워하는 점이 있었다면.

친한 사람들 외에 그녀의 집에 들일 수 있는 이는 없다는 점이었다.


친한 이들도 가장 더운 계절과 가장 추운 계절은 피하여 그녀의 공간을 방문하였다. 어쩌다 타 지역의 친구가 그녀의 공간에 하루 밤 함께 지내다 돌아가는 날이면 그녀는 뭔지 모를 씁쓸함을 안았다.


보통은 그냥 훌쩍 지나가는 시간이었지만, 아마 십 년을 넘게 지내다 생긴 아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아쉬움은 그녀가 생활하는 그 공간, 작은 방 한 칸보다는 훨씬 컸다.


가끔은 꾹꾹 눌러 담은 아쉬움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올 때가 있었다.


‘언젠가, 내가 독립하면.’

‘언젠가, 내가 혼자 살게 되면.’


그 새어 나온 말들은 그녀의 작은 방 한 칸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아무것도 없지만 편안한 나의 공간 안에서 친한 이들이 앉거나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고, 간혹 이야기가 끊어지고, 그러기를 반복하며 무릎을 끌어안은 채 깔깔거리며 웃다가, 밤을 지새우는 상상을 가끔 했었다.


그 상상의 말들은 날개를 달아서 어딘가를 날아다니기만 했다. 정해진 자리도 공간도 없는 그녀의 마음처럼. 그렇게 언제까지 날아다닐 것만 같았던 그 말들이 이제 저 창 밖의 검은 그림자처럼 제자리를 찾았다.


엄마가 이번에는 버리라고 그렇게 말했던 오래된 이불을 부여잡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떴다. 아무것도 없는 방 안의 벽면과 아직 주문한 책상이 오지 않아서 덩그렇게 놓여있는 컴퓨터 한 대. 공간박스 위에 대충 정리해둔 화장품들과 작은 상자 안의 잡동사니들.


방문을 열고 나가니 거실 한 편에 세워둔 책장, 그 안에 가득 쌓여있던 정리 덜 된 책들. 그 외에는 그녀의 얼마 되지 않는 옷, 몇 되지 않는 가방과 신발. 이곳까지 오는 이동시간보다 짧았던, 사다리차로 짐을 올리고 단 삼십 분 만에 끝나버린 이사를 생각했다.


그 작은 방 한 칸을 가득 채웠던 그녀의 물건들은 넓고 낯선 공간에 꺼내놓고 보니 특별한 것이 없었다.


아, 별거 없네.


거실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 넓은 공간을 받아들이느라 애쓰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이 낯선 공간이 싫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동안 작은 방 한 칸을 채우던 아쉬움이, 당연하게 생각하던 그 계절들의 수고로움이, 여기 이곳에는 이제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왠지 모를 웃음과 함께 갑자기 긴 한 숨이 새어 나와서 그녀는 이상했다.


수고했어.


작게 말해주는 그녀의 그림자가 아직 책장과 상자만 덩그러니 있는 그 거실에 함께 있었다.


너에게 주는 ‘상’이야.

그림자가 말했다.

잘 해왔어, 잘 했어, 잘 할 거야.


작게 다독이는 그녀의 그림자가 아직, 여전히, 함께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너에게 주는 ‘안식’이야.

그림자가 다시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괜찮아, 괜찮아.


커튼이 없는 거실에 햇볕이 내려와 그녀의 그림자가 자꾸만 말을 걸었다.


그동안 잘 지내줘서, 정말 고마워.

정말, 고마워.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눈 비비며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 가고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 음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 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구수하게 밥 뜸 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겐

아이유 -가을 아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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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도 낯선, 가을의 어느 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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