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짧은 이야기

'이별을 걷다'

by Kidcat혜진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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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겠지만, 먼저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너였어.

그럼에도 후회되는 일이 있냐고?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세상에 그 많은 이별들 중에 우리의 이별도 단지 하나잖아.

눈 쌓인 골목을 오고 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중에 그저 하나일 뿐인 내 발자국처럼.

그 많은 이별들 모두 후회가 가득하다고 노래를 부르잖아.

그러니까 우리의 이별에 후회가 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야.

내가 먼저 끝을 낸 일이 아니라도,

후회되는 일이 없다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겠지.


뭐가 후회되냐고.

글쎄, 우리가 만났던 일? 아냐, 농담이야.

우리가 만났던 일은 후회하지 않아.

나는 아직도 이렇게 여기까지 와서

흩어진 발자국 사이로 혹시 너의 발자국이 있는지 찾고 있잖아.

우리의 만남 자체를 후회한다면 이러지는 않을 것 아니야.

네가 자주 했던 말을 따라 하자면.

“몰랐어? 이제라도 알아, 이 바보.”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대답한다면.

가로등이 깜박거려서 무섭다던 이 골목길에서 너를 데려다주다가 놀라게 했던 일.

너 놀린다고 내가 앞서서 막 뛰어갔더니 따라오다가 결국은 주저앉아서 울었잖아.

난 정말 몰랐어, 그렇게까지 무서워하는 줄은.

울먹거리면서 넌 또 말했지.

“이제라도 알아둬, 이 바보야.”

깜박거리는 가로등을 너 보란 듯이 일부러 발로 ‘뻥뻥’ 찼어. 기억나?

그다음부터는 절대로 안 그랬어. 그건 확실해.


다시 또 후회되는 일을 물어본다면.

음, 또 이 골목에서 있었던 일인데.

오늘처럼 눈 온 후에 빙판길에서 장난치다가 너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지도 않고 막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웃었잖아.

맞아, 미안해. 그때 나 넘어진 너를 보면서 웃다가 사진까지 찍었어.

두고두고 놀려먹을 생각이었어. 인정해.

“애인이 넘어졌으면 일으켜 세워줘야지! 그것도 몰라?!”

네 말이 맞아. 그때 내가 너무 너를 편하게 대했어.

나중에 보니까 네 하얀 손도 까지고, 무릎에 멍도 들고.

생각보다 너무 많이 다친 널 보니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

내가 약 발라주면서 미안하다고 천 번은 말한 것 같지만, 그래도 미안해.

만 번은 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지금 생각하니까 그렇더라.

이렇게 후회할 줄도 모르고 정말 바보 같았어.


골목 끝에 카페 하나 있었잖아, 거기 아직 있더라.

거기서 네가 음료수 내 옷에 쏟았을 때, 내가 엄청 화냈잖아.

그래, 그것도 후회가 되네. 지금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날 처음 입은 새 옷이었어.

지금은 어떤 옷이었는지 생각도 안 나지만.

분명히 너한테 잘 보이려고 거금 들여서 산거였어.

그렇게 너한테 잘 보이려고 입고 간 주제에,

그날 결국 너한테 화만 내다가 헤어졌지.

생각해보니까, 나 정말 네 말처럼 바보가 맞나 보다.

옷 따위가 뭐라고, 정작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너한테 그렇게 화만 냈는지 몰라.

미안한 얼굴로 서 있던 너를 두고 그냥 막 나와 버렸잖아.

그때 네가 나 안 잡아줬으면 아마 훨씬 빨리 후회했을지도 몰라.


만약에 그랬다면,

그랬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아니.

조금 더 빨리 내가 네가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

정말 헤어져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랬다면…,

너를 잃는 기분이 어떤지 조금만 더 빨리 깊이 깨달았다면.


다시 그 골목길 끝 카페에서.

네가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그때 말이야.

넌 그전까지 며칠째 연락 안 됐었잖아.

난 그 일로 화가 난 상태였어.

네가 먼저 그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대뜸 네가 그냥 헤어지자고 하는 바람에 잠시 멍했어.

그리고 더 화가 난 거야.

그 헤어짐은 모두 그때 네 잘 못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묻지도 않았어.

며칠 째 연락이 안 된 이유 따위는,

그 상황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도 네가 나를 잡아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나 밖에 모르는 바보 같이, 무척이나 안일하게.


먼저 화가 나서 나왔지만 나는 갈피를 못 잡고 그저 서 있었지.

하지만 너는 나를 잡지 않았어.

맞아, 너는 작심한 듯이 나를 스치고 그저 앞만 보고 지나가버렸어.

먼저 걸어가던 너의 뒷모습은 골목길을 배경으로 그렇게 한 참 있더니 사라졌어.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너를 잡지 않았어.

멍청이, 바보.

지금 생각해도 네 말대로 난 바보였어.

그저, 내가 먼저 한 마디만 물어봤다면.

왜냐고,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거냐고 한 마디만 물어봤다면.

그랬다면,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같은 모습일까.


아니야, 넌 대답하지 않았을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먼저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너야.

헤어짐에 앞서 이를 악 물고 나왔을 너.

그런데 후회가 가득하게 남은 건 또 나야.

골목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서성거리고 있는 나.

후회되는 일, 가장 후회되는 일은.

이별의 이유를 묻지 않았던 그때,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았던 그 이유를 묻지 않았던 나.


몇 개월이 지나서야 나는 이 이별의 후회와 싸우고 있어.

이별의 이유는 너의 병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그러니까 그때 아무리 내가 너를 붙잡았어도 지금의 우리는 달라지지 않아.

이 골목 끝까지 가더라도 다시는 너의 발자국을 찾을 수 없는 현재.

눈은 언젠가 너를 데려다주던 그 날처럼 이렇게 흩날리는데,

앞으로는 절대로 이 눈을 너와 함께 맞을 수 없다는 사실…….

드라마처럼 힘든 병을 이겨내고, 오해를 풀고, 다시 만나는…….

그렇게 우리가 함께 맞을 해피엔딩 따위는 절대로 없을 거야.


넌 오늘 조금의 재가 되어서 사라졌고,

너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네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

그래, 나도 이제 알아. 너무나 명확하게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자꾸 재촉하지 마.

이 골목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하지 마.

이 골목이 끝나는 그곳에서 이제 너를 버리라고 그러지 마.

너와의 기억과 함께 이제야 찾아온 후회 때문에 이러는 난 너무 당연한 거야.

바보, 멍청이,라고 말해도 좋아.

난 이제 겨우 제대로 된 이별을 시작했고,

지금 이 골목의 끝에 도달해도 내 이별은 결말이 나지 않을 거야.

이 기나긴 이별 끝에 계속 내리는 내 눈물을 멈추라고 하지 마.

이 눈물은 나도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몰랐어? 이제라도 알아둬, 이 바보야.

내가 너를 많이 사랑했어.

아니, 우리는 참 많이 사랑했었어.

네가 나를 두고 이 악물고 멀어질 만큼,

그런 너와 헤어지고 내가 여태껏 아팠던 만큼.

그래서 이 이별은 우리가 수 없이 오고 갔던 이 골목만큼,

그만큼……, 아주 길고, 길고 또 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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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걷다 혹 눈물이 난다면
그때 꼭 한번 뒤돌아보기로 해
수화기 너머로 불러준 노래도
조금은 시시한 농담도
나 모두 여기에 두고 갈게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오고 간 이 길이
이상하게 낯설고 막 아프고 버거워
돌아갈 수 없어 또 수많은 밤을
난 헤매게 될지 몰라
이별을 걷다 난 이별을 걷는다
걸음걸음이 모두 다 이별이라
억지로 발끝만 보고 서 있지만
오늘이 힘겨울 널 위해
나 그만 여기서 돌아설게
안녕 부디 좋은 꿈 꾸기를


황치열 -이별을 걷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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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슬픈 것이 아니라,

슬픈 이별도 있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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