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짧은 이야기

‘그 해 겨울’

by Kidcat혜진

인간,
이제 그만 들어가.

너, 그렇게 나를 보고 있다가는 얼어 죽을지도 몰라.
그런 맨발로 기어 나와서 여기 있는 건 아무리 인간이라도 좋지 않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으니까.
밤이 되었으니 친구들이 곧 이리로 오겠지.
그리고 늘 그랬듯이 길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고는 사라질 거야.
매정하다고 여기지 말아 줘.
우리에게 그런 헤어짐은 늘 흔한 일이고, 흔하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야.
다만, 우리들의 삶에서 그런 많은 슬픔에 일일이 눈길을 주다 보면 지금의 소중한 시간을 갉아먹어 버리게 될 거야.
슬픔에 눈인사를 해주고, 돌아서 꼬리를 흔들고 나면 그 후에는 절대로 그 자리를 돌아보지 않는 것...
영원한 헤어짐에 대처하는 우리들 만의 방식이고, 그로 인해 지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거야.

넌 그동안 많은 시간을 나와, 아니 우리와 함께 해 주었지.
물론 인간의 시간으로 그건 아주 짧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네가 주는 먹이와 깨끗한 물, 그리고 몹시 그리울 것 같은 간식들.
그런 것들 때문에 너와의 시간이 소중 했다는 것은 아니야.
어디를 가더라도 경계받는 것에 익숙한 내가 너로 인해서 환영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봄날에 민들레 씨들이 날아다니는 공터에서 네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꼬리를 한 껏 추켜올리고 나도 모르게 마구 달리기 시작했어.
그 소리가 정확히 나를 부르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난 숨을 헐떡이며 제법 먼 거리를 달렸어.
커다란 손을 흔들며 나와 눈을 맞추려 몸을 낮춘 너를 보고 얼른 속도를 낮추기는 했지만.
그런 날들이 있었어.
눈을 맞추려 몸을 낮춘 너와 최대한 도도한 몸짓으로 그 주위를 맴돌던 나.
저 너머에 공터 끝의 벽돌에 누워 가만히 밤의 소리를 들어보면, 네가 있었어.
슬그머니 달려가 멀찌감치 너를 보다가 조금 더, 조금만 더 다가가면 결국 우리는 나란히 있었지.
넌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난 그 밤의 풍경이 좋았어.
그 밤의 풍경에는 나와 네가 함께 별을 보고, 숨을 쉬고, 웃는 모습들이 검은 하늘 속에 숨겨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떠날 수 없었어.
공터가 사라지고 점점 내가 있을 곳도, 우리가 쉴 곳도 사라져 갔지만 그곳을 맴돌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낙엽이 지고 눈이 오는 이 계절까지 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구나.
내 황금빛 눈동자와 뾰족한 귀 끝에, 말랑거리는 코 끝과 누구보다 우아한 꼬리 끝까지 그 시간들이 가득해.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소리를 내는데, 지금 소리를 낼 수 있다면 나는 기쁨의 소리를 낼 거야.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
그저 헤어짐의 눈인사를 한 번 하고 나를 보내줘.
이미 충분히 행복했던 어느 날의 우리처럼 너는 나에게 웃어주고,
나는 그런 너에게 도도한 척 꼬리 한 번 흔들어 줄 테니까.

인간,
이제 그만 들어가.
너 지금 앞 발도 뒷 발도 빨갛다고.
난 내리는 눈을 조금만 더 보다가 곧 갈 테니까, 걱정 마.
그러니까 이제 그만 안녕, 안녕 하자.


우리가 있었던
압구정 거리 어느새
또 눈이 내리네

용기 내 나눴던
그 겨울밤의 입맞춤
네 포근한 숨소리

너를 만나
추억이 참 많아
지워지지가 않아
니 말투 습관 향기까지

그래 아마
우린 서로를 닮아
그냥 이렇게 남아
아파야 하나 봐

It was my mistake
that I let you go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It was my mistake
that I let you go
니 곁에 기댈 줄 알았다면

우리가 걸었던
눈 소복하던 그 거리
어떻게 잊겠니

입술에 닿았던
너의 온기에 스르르
난 녹아내렸지

너를 만나
추억이 참 많아
지워지지가 않아
니 말투 습관 향기까지

그래 아마
우린 서로를 닮아
그냥 이렇게 남아
아파야 하나 봐

It was my mistake
that I let you go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It was my mistake
that I let you go
내 곁에 기댈 줄 알았다면



I’ll (아일) -그 해 겨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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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추운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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