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짧은 이야기

‘한 편의 너’

by Kidcat혜진


눈이 올 것 같았어.
하늘은 흐리고 구름만 가득했거든.
어제 라디오에서 들리던 날씨 예보가 생각났어.
아, 눈이 진짜 오겠구나.

그래서 너를 마중하러 가는 길이 당연하다 생각했지.
넌 또 분명히 날씨 예보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테니까.
늘 그렇듯이 내가 카페 앞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겠지.
연락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네가 우산이 필요할 때는 늘 내가 마중 나갔으니까.

오늘은 붕어빵 할머니께서 장사를 하시면 좋겠다.
요즘 날이 너무 추워서인지 보이지 않으시더라.
돌아오는 길에 네가 좋아하는 붕어빵 한 봉지를 사주면,
넌 또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겠지.

길이 너무 미끄럽다.
오늘 넌 그 보라색 장화를 신고 갔을까,
겨울마다 내가 놀리던 그거, 그 장화 말이야.
아, 그래, 그래. 알았어. 장화가 아니라, 부츠.
네가 그거 신을 때마다 생선 장수 같다고 내가 놀렸잖아.
오늘도 놀릴 수 있을까.
아니야, 오늘은 안 그럴 테니까 신고 갔으면 좋겠다.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그 부츠가 도움이 될 것 같아.

사실은 그 부츠랑 어울리는 우산을 새로 사뒀는데.
그 후로 비도 눈도 안 와서 한 번도 너한테 보여주지 못했어.
겉에서 보면 그냥 보라색 우산인데,
펼치면 하얀 눈이 오는 풍경이 그려져 있어.
이 우산을 쓰면 비 오는 날도 눈 오는 풍경 속을 걸어가는 거지.

그나저나, 눈이 진짜 많이 온다.
아무래도 붕어빵은 포기해야겠다.
정류장 앞 카페에서 머핀이라도 사 오자.

우리가 지난번에 봤던 길고양이를 오늘 전봇대 앞에서 봤는데,
글쎄, 그 녀석 친구가 생겼더라.
네가 사료 챙겨주면서도 못 생겼다고 한마디 했잖아.
그 녀석 안 듣는 척하더니 다 듣고 있었나 봐.
친구는 엄청 예쁘게 생겼어.
네가 봤으면 능력 있다고 칭찬이라도 했을까,
아니면 주제를 알라고 잔소리를 했을까.
그래도 네 가방 안에 있는 사료를 먹는 행운묘였겠지.

이제 정류장 보인다.
퇴근 시간이라 사람이 많네.
그 카페 안에도 사람이 많아.
그런데 넌 아직이네.
오려면 한 참 멀었나 봐.
연락하지 않고 기다릴래.
이건 우리만의 약속이었으니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먼저 오는 사람은 정류장에서 기다리기.
뭐, 거의 대부분은 내가 너를 기다리는 편이었지만.
어쨌든 누가 먼저 오든, 늦게 오든 탓하지 않기.
그런 날은 날씨를 탓해야지, 누구를 탓해.

어디쯤 오고 있을까, 몇 정거장쯤 남았을까.
지금 너도 내리는 눈을 보면서 내가 기다릴 걸 알고 있겠지.
나한테 연락하고 싶은걸 꾹 참는다고 그랬잖아.
너무 일찍 나오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막상 정류장에 내가 없으면 실망할까 봐 그러지 못한다고 그랬잖아.
괜찮아.
나도 너를 마중하고 기다리는 이 시간이 행복하니까.

그냥 이렇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면,
네가 곧 오겠지.
..., 올거야.
..., 그치?



정말 이상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흩어지는데, 그 속에 너는 없어.



미안...
미안해...
오늘도 내가 나한테 속아서 또 습관처럼 마중 나와 버렸네.
돌아가는 길에도 주인 없는 이 보라색 우산은 펼칠 수 없겠지.
그래도 혹시, 혹시라도....
네가 눈 맞을까 봐 걱정부터 앞서는 이 마음은 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눈은 그쳤으면 좋겠다.



-

네가 옆에 있는 게
너무 당연했었어
고마운 줄 몰랐어
때가 되면 내릴 비처럼
보고 싶어질 때면
그냥 보면 됐었어
소중한 줄 몰랐어
어차피 뜰 아침 해처럼

행복했던 장면뿐인 우리 둘
TV채널 돌리듯이 끝났어
너무 쉽게, 허무하게
몇 장의 사진만
몇 장의 기억만

한 편의 너 한 컷의 너
질리지도 않나 봐 오늘도
집에 와 너를 틀고서
네 입모양 따라
대사를 외워봐
아주 잘 찍은
너 한 편, 너 한 편



양다일, 도겸 -한 편의 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