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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dcat혜진 Mar 20. 2021

세계와 세계, 2에서 3까지

| 재회: ‘J ‘그리고 ‘재희’





비행기 안에서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이어폰을 빼고 창밖을 봤지만 아직은 너에게 가는 길이 너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으니, 다시 몰려드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 하나도 아닌 그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다시, 또다시....


나는 너에게 가고 있는 지금이 꿈이 아님을 믿을 수 없어서 잠에 들 수 없어....


눈 앞에 있는 종이에 끄적거리던 너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다가 혼자 인사를 한다.




“안녕.”




난 아직도 장례식장에서 처음 본 너의 얼굴을 기억해.


제인은 그날 한국에 도착하고 호텔에서 짐을 풀자마자 준비해 온 옷을 나에게 입혔어. 그때까지도 지금과는 달리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제인이었지만 그날 내게 입혀주던 실크 재질의 원피스 촉감을 잊지 못해. 장례식장이 아니라 파티에 가는 기분으로 준비를 하던 제인이 흥얼거리던 소리와 드라이기 소리, 그리고 장갑을 낀 손을 내게 내밀던 그녀의 우아한 눈빛까지.


모든 것들이 어린 나에게는 낯설면서도 황홀한 기억들이었지만, 너에게는 그 날이 가장 최악의 날이었겠지.




“이제 아빠 만나는 거야?”

“그래, 맞아. 지금 아빠를 만나러 가는 거야.”




내 인생에 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 반짝거리는 거리와 시끄러운 연말의 분위기가 뒤섞여 있었어. 도착한 곳이 어떤 곳인지 알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고, 타인의 기분을 읽기에는 한 참이나 모자랐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제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기억해. 미국에서는 흔하게 입는 장례식장의 옷차림이 한국에서는 눈에 띄기는 했으니까. 그리고 이질적인 제인의 외모도. 또각거리는 까만 구두 소리가 장례식장의 복도를 울리고 이윽고 도착한 그곳에서 제인은 내 손을 조심스럽게 놓더니, 눈 앞에 있는 여자와 남자에게 차례로 다정하게 포옹했어.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자그마한 남자아이가 너였어. 슬픔과 고통, 아픔과 시련 같은 것들이 느껴지던 너의 표정이 나와 제인을 보자마자 경계로 바뀐 건 아마도 그 후에 일어날 일을 예감해서였을거야.


그 사람들이 ‘너의 가족’이었지. 그리고 남자가 나를 바라봤을 때 나는 알았어. 제인이 늘 말하던 ‘그 남자’라는 걸 말이야. 검은 머리색과 그 보다 더 짙은 눈썹, 뭔가 유약한 것 같은 얼굴 속에 있는 날카로운 눈매. 제인이 만났던 남자들 중에 가장 평범했던 남자.


도현우, 그 사람은 제인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남자라고 했었어. 그리고 제인이 나의 아빠라고 늘 말했던 사람이었지.




“네 아이야.”

“뭐?”




장례식장 뒤편에서 제인의 품 안에서 눈을 감고 있던 내가 잠이 든 줄 알았겠지만 아니었어.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제인이 한 말에 그는 놀랐어. 당연했지, 그의 옆에는 아내가, 그러니까 지금의 네 엄마가 있었으니까. 혜숙은 제인과도 아는 사이였는데, 어떻게 태연한 얼굴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했을까.


사실 그 후에 그들이 나눈 이야기들은 잘 몰라. 난 그 순간 정말 잠이 들어버렸으니까. 어쨌든 그 후에 내가 너의 집에서 한 동안 함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두 사람의 동의가 있었으니 가능했을 거야. 내가 겪은 너의 부모님은 그런 사람들이니까.




“흐흑, 엄마..., 아빠....”




잠에서 깨었을 때, 여기가 어딘지 잠시 생각하다가 네가 내 옆에서 울고 있는 소리를 들었어. 장례식장 한편에 어두운 방 한 구석에서 말이야. 살그머니 다가간 내가 너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주면서 물었지.




“안녕? 왜 울어?”

“.......”

“울지 마. 괜찮아.”




난 평소 울지 않았으니 우는 사람을 달래는 법을 몰랐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마음은 기억이 나. 지금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넌 분명히 그 날 처음 본 아이였고, 어둠 속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지던 그 얼굴이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그 순간이 아주 많이 인상적이었던 건 분명해.


그래서 가끔 지금의 네가 우는 얼굴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었어.


하지만 정작 난 몰랐어. 그 장례식이 너의 진짜 부모님 장례식인 줄은. 혜숙에게는 언니, 그리고 너에게는 엄마.


아직 어린 너에게 세상의 전부가 떨어져 나가 버린 그 날, 나는 어쩌면 너에게 남아있던 가족마저 빼앗으러 간 사람이 되어버린 것을.


그래서 넌 나를 싫어했겠지..., 두렵고 무서웠을 거야.




“아직 애도 없는 동생네가 데리고 간다며? 친가 쪽은 친척들이 데려가기 꺼려한다고 하니까....”

“애만 불쌍하지.”

“차가 형체도 없었다면서요, 애만 어떻게 살았데?

“그러니까, 지 부모 전부 죽은 자리에서 저만 멀쩡하게 살았다잖아.”

“친가 쪽에서는 그래서 더 꺼려한다더구만. 쯧쯧... 무슨 일 이래, 이게....”




문 밖에서 두런두런 들리던 소리들, 눈물방울이 더 많이 떨어졌어. 내 손은 네 귀를 막았고, 바들바들 떨리던 너의 몸이 잦아들 때쯤. 난 너에게 뭐라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타인에게 건네는 위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어.


난 여기까지 온 제인의 마음을 알고 있었어. 나를 여기 두고 간 목적도 알고 있었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부질없지만 잘 보이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건 나와는 상관없었어. 나에게 도현우라는 사람은 그저 처음 본 ‘아빠’ 일뿐이었으니까.




“넌 이제 아빠도 엄마도 없는 거구나.”

“.......”

“난..., 제인만 있어도 괜찮아.”

“.......”

“그러니까 내 아빠는 너 가져.”

“.......”

“대신 나랑 놀아줘. 제인이 이제부터 난 한국에 있을 거라고 했는데, 여기는 친구가 없으니까.”




사실 난 어디서도 친구 따위는 없었어. 하지만 눈 앞에 있는 너는 모를 테니까.


훌륭한 제안이었어. 난 지금 너에게는 가장 필요하지만 내게는 가장 의미 없는 것을 준 거니까. 아마 그때의 내 표정은 뿌듯한 얼굴이었을까.


하지만 넌 갑자기 내 손을 뿌리쳤어. 그리고 큰 소리로 엄마를 찾으며 울었지. 갑자기 소리 내어 크게 울던 네 앞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혜숙이 문을 열고 들어와 너를 안아주자 그 울음은 겨우 그쳤어. 한 번도 그렇게 크게 소리 내어 울지 않던 네가 울어서 더 놀랐을 거야. 너를 안아주던 혜숙이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난 혜숙의 눈에서 번지던 혼란스러움을 먼저 읽었어.


그 순간들이 자세히 기억나는 이유는 마치 슬로모션처럼 모든 표정과 감정들을 읽을 수 있었던 쓸데없는 내 능력 탓이야.




“미안해, 많이 놀랐지?”




혜숙의 질문에 난 그냥 고개를 저었어. 내 아빠를 줄 거라는 나의 약속은 유효했어. 내 입 밖으로 나가버린 말들은 이미 지울 수 없으니까. 단지, 넌 아직 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아서 조금 기분이 상했지.




“이름이 뭐니?”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손가락으로 아직도 울고 있는 너를 가리켰어. 난 너의 이름이 궁금했어. 하지만 끝내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장례식이 끝날 때 까지도.




“자, 이제.... 우리 집으로 갈까?”




제인이 나를 두고 어딘가로 가버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난 놀라지 않았어. 작은 캐리어가 내 옆에 있었고 그때서야 넌 내 상황을 똑바로 봤지. 머나먼 나라에서 엄마와 살다가 이제 그 엄마는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처음 만난 아빠라는 사람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여자와 그리고 너와 함께 살게 된, 어린 소녀의 상황을 말이야.


혼돈 속의 또 다른 혼돈이었지만, 난 최대한 담담한 얼굴로 그저 가만히 서 있었어.


혜숙이 손을 내밀었을 때, 난 그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너의 손을 잡았어. 이번에는 뿌리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나만의 약속은 유효했어. 난 절대로 너의 아빠를, 너의 가족을 빼앗지 않을 거라고.




“이름이 뭐야?”




‘너의 집’으로 돌아가던 차 안에서 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어. 네가 다시 울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네가 나를 미워하는 것보다 그 편이 더 걱정이었어.




“..., 원우.”

“난 J.”

“재희?”




한국말이 서툴다고 생각한 건지 네가 다시 물었을 때, 난 그 이름이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지 않았어. 그 이름이 썩 마음에 들기도 했었고, 나쁘지 않았으니까.




“응. 재희”




그때부터 내 이름은 ‘재희’가 되었어.


말 그대로 넌 내게 이름을 주었고, 나의 친구가 되었고, 나의 가족이 되었고, 또..., 소중한 사람들을 알게 해 주었지.




“안녕.”




한국은 너무 많이 변했구나. 그때도 지금도 공항에 도착한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어. 괜찮아, 지금부터 내가 너를 찾아갈 테니까.


그때처럼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더라도, 또 불편해하더라도 나는 너를 찾아갈 거야.


약속은 아직 유효하고, 여전히 넌 내 친구이며..., ‘가족’이니까.


제인이 최근 혜숙의 편지를 모두 찢어버린 덕분에 너의 연락처는 모르지만, 그래도 편지의 내용은 대충 기억이 나니까, 어떻게든 너를 찾아갈 거야.


잊지 마, 우리는 곧 만날 거야.




“너.......”

“... 찾았다.”




이것 봐. 찾았잖아.


제법 오래도록 볼 수 없었지만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본 너를 향해 달려가, 그리고 너를 안았어.


미안하지만 너에게는 다시 시작된 ‘악몽’ 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야.


난 내 인생에게 가장 찬란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보내게 되겠지. 다시없을지도 모를 이 순간에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을래.

그저, 그저....




“보고 싶었어. 진짜, 많이.”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할래.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또다시 너의 ‘악몽’이 될게.

그래야 네가 나를 절대로 잊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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