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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dcat혜진 Jul 11. 2021

세계와 세계, 4에서 5까지

| 안부: 변화하는 것들, 변함없는 마음





남자 친구일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녀를 대신해서 묘지까지 안내해  안젤로라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혜숙과 현우는 원우와의 통화에서 그의 이야기를 제법 많이 했다. 혜숙 현우에게 친절하게도 알려줬다는 그의 SNS 계정을…, 기어이 뒤졌다. 그리고 결국  얼굴을 찾았다.


매력적인 남자의 뒤편, 몇 되지 않는 사진 속에 무표정한 옆모습이나 얇은 잔을 들고 화려한 파티복을 입은 채 먼 곳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 본인의 SNS는 없었다.




“뭐해?”

“그냥.”

“너 SNS 해? 안 하잖아.”

“회사 계정으로 들어가 본거야.”

“왜? 누군데?”




선베드에 누워있던 원우는 시호가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재희의 모습이 있던 사진을 넘겨버렸다.




“심심해서 이것저것 봤어. 수영은 다 했어?”

“저게 지금 수영처럼 보이냐? 초딩들 물놀이지.”




호텔 수영장은 이미 시끌벅적하게 난리가  상태였다. 콘서트 일정을 앞두고 있는데도 긴장감보다 설렘이 앞서는 멤버들의 모습이 익숙하다. 시호는 이미 흠뻑 젖은 모습이었고, 수영을 못해서인지 귀여운 튜브를  팔로  끌어안고 있었다. 문득 재희와 함께 셋이서 웃으며 놀던 때가 떠올랐다.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원우는 안경을 벗어서 미간을 주물렀다. 아무래도 이곳은 햇빛이 너무 강하다.




“들어가게?”

“좀 자야겠어. 리허설까지 시간 좀 있잖아.”

“그래, 이따 봐.”




튜브를 낀 채 그대로 총총 뛰어가 수영장에 뛰어드는 시호의 뒷모습이 영락없는 10대 때 그대로였다. 지금은 분명히 20대인데….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자신이 선택한 길은 너무 멀리와 버렸고, 몇 년 전 내려놓을 뻔했던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아주 많이 커졌고 더는 혼자 결정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다시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면 자신의 어떤 의견이든 존중해줄 형제 같은 멤버들이지만, 그것을 알기에 이제는 더더욱…, 그럴 수 없다.




“원우야! 어디가! 같이 놀아!”

“난 쉬러 간다. 실컷 놀아.”




다른 멤버들이 시호에게 덤비면서 손을 흔들었지만, 원우는 고개를 저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소녀는 자신을 철저히 떠났다.


처음에는 미친놈처럼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원래 연습량이 적은 편이 아니었지만, 소녀가 떠난 후의 시간은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연속이었다. 정신이 없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몸이 피곤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달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어느새 무대 위에 있었다.


화려한 조명은 자신을 비추고, 텔레비전 화면에 저와 친구들이 하나의 그룹으로 나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주목하고, 셀 수 없는 많은 무대를 서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하고, 도미노처럼 인터뷰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받고, 유명한 잡지의 사진 촬영을 하고, 단독으로 화보 촬영도 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높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빼곡한 스케줄과 해외에 나가도 저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되었을 때….


원우는 원하던 모든 꿈은 이루어졌고, 제 속에 있는 소녀를 향했던 감정이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감정은 기다림에서 억울함으로 번졌다. 아주 가끔은 화가 났고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는 타인에 대한 냉정함으로, 또다시 여전한 기다림으로, 그리고 그리움으로…. 모습만 달리 했을 뿐, 결국은 누군가를 향하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감정이었다.


지금 당장 재희가 자신의 눈앞에 등장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 미웠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준다면……, 어떨까 하고.


지금과 아무것도 변한 건 없을 것 같았다.




“지금처럼…, 그냥…, 그래.”




사실은 늘……, 한결같은 감정이었으니까.


원하는 꿈은 모두 이룰 수 없다. 자신의 꿈속에 있는 재희는 늘 상상하기 어렵다. 모순되게도 자신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할수록 진짜 원하는 누군가에서는 멀어지는 기분이다.




“남자 친구…, 라.”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재희가 이제 정말 세상에 혼자 있을 거라고 걱정하고 마음 쓰였던 것이 것이 우스울 정도로, 지금 그녀의 곁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3년, 혹은 4년, 자신도 그녀도 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더는 그녀의 꿈속에 자신이 없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혼자서 울고 있을까 봐 떠오를 때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윤재희….”




소리 내어 이름을 읊조렸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다.


그녀의 이름이 귓가에 자신의 목소리로 내려앉으니 알 수 있었다. 변했지만, 변한 것은 없고, 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달라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녀의 곁에 많은 사람이 있든 없든…, 자신의 걱정은 변할 수 없었다. 그녀를 향해 계속해서 쓰이는 이 마음도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다.


설령 재희가 예전과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자신만큼은 재희의 삶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었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반지처럼 미련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재희’라는 존재는 절대로 자신의 인생에서 변하지 않은, 변하지 않을…, 그 무언가였다.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 사이에 새로운 사진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해가 지는 석양과 함께 해변을 거니는 실루엣이 작게 보였다.





“뭐야, 자꾸 남의 사진만 올리고….”




원우는 안젤로의 SNS를 보며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진 속의 그 작은 실루엣을 뚫어져라 계속 바라보았다. 재희의 어떤 표정에서 혹시라도 여전한 슬픔을 발견할까 걱정하면서도 자꾸만 보게 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젠장….”




그리고 몇 장 안 되는 사진이었지만, 그곳에 웃는 얼굴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여전히 그녀의 곁에 자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괜한 기대를 하게 만들어 버린다.


정작 그때도 지금도 자신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주제에….


큰일이다. 아무래도…, 괜히 봤다.




-




재희는 불편함을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거실 소파 맞은편에 앉은 노인은 주변을 흘깃거리며 살피다가 찻잔의 차를 겨우 한 모금 마셨다.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제인이 가끔 네 안부를 전해줬어.”

“네.”

“장례식에는 참석 못해서 미안하구나.”

“괜찮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네게는 혈연이고 ‘가족’이니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줬으면 좋겠구나.”




지금 자신의 눈앞에 앉아있는 ‘외할머니’라는 갑작스러운 존재의 등장은 낯설고, 또 불편할 뿐이었다. ‘가족’이라는 말에 재희는 흠칫 놀랐다. 그 말이 이렇게 소름 끼친 적은 없었다. 마른 입술을 몇 번 적시던 작고 작은 동양계 노부인을 바라보던 재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해요. 제가 지금 나가봐야 해서요. 다른 용건이 없으시면…….”

“어, 아…. 그, 그래. 그렇구나.”




당황한 노인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여러 번 입을 달싹거리다가 결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정문으로 몸을 돌렸다.




“저, 혹시…. 아, 아니다. 미안하구나 갑자기 찾아와서 너도 당황했을 텐데….”

“…….”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 하마. 잘 지내렴.”




정문 앞에는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노인을 기다리던 젊은 남자가 있었다. 열리는 문 너머로 거실을 살펴보던 남자의 눈이 배웅을 하던 재희와 마주쳤다. 반사적으로 눈인사를 하던 남자는 자신의 팔을 잡아끌고, 대문으로 급히 나가려던 노인을 붙잡아 세우며 말했다.




“할머니, 돈 빌렸어?”

“쉿, 얼른 가자.”

“부자라서 돈 줄지도 모른다고 온 거 아니었어? 고모라는 사람이 대학 등록금으로 들고 간 돈이라도 받아오라고 할아버지가….”

“그냥 가자니까!”

“아, 그럼 형 보석금은 어쩔 건데?”




재희는 문을 닫지 않은 채 정원에서 떠드는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말리는 노인을 억지로 떼어 놓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기, 그쪽 낳아준 사람이 우리 아빠의 동생이고 말하자면 우리는 사촌인데…, 지금 우리 형이 돈이 없어서 교도소에 가게 생겼거든.”

“…….”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 갔던 사람이 그쪽 엄마, 그러니까 뭐, 나한테는 고모라던데…, 아무튼 할아버지랑 아빠가 오겠다고 하는 거 할머니가 온 거야. 돈 받으러. 그래도 그 돈 정도는 돌려줄 수 있을 정도로 부자라고 들었는데, 아니야?”




재희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민머리에 가까울 정도로 머리를 짧게 민 남자는 목 부근에 타투가 있고, 손가락 끝은 불안함에 물어뜯은 흔적들이 있었다. 재희는 한 동안 그렇게 남자의 외향 어딘가에서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남자 어깨너머로 보이는 작은 노부인의 얼굴에서 자신을 낳아준 사람의 얼굴을 찾아보려고도 했다. 제인이 좋아했다는,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그녀의 얼굴을.


  


“원하는 게…, 그건가요?”

“그래. 우린 돈이 필요해.”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5만…, 아니, 10만 달러 정도?”




남자의 입에서 10만 달러라는 말이 나오자 뒤편에 서 있던 노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입술을 달싹거렸다. 마주친 눈에는 눈물이 맺히는 것 같았지만, 그 시선을 피한채 재희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다시 되물었다.




“10만 달러요?”

“예전에 너희 엄마가 가져간 돈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고 그랬어. 줄 수 있어? 줘야 할 거야. 아니면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올지도….”

“계좌번호를 제 변호사에게 남기세요. 곧 보낼 겁니다.”

“정말? 진짜야?”

“원하는 건 그게 전부 인 가요?”


  


두 손을 말아 쥐며 작은 환호성 같은 걸 지르던 남자는 재희의 마지막 말에 곧 표정을 싹 바꾸었다.




“그래, 사촌도 어쨌든 가족이지. 앞으로 자주 봐. 우리 집에 오면….”

“아니요. 갚아야 할 돈이라고 해서 갚는 것뿐입니다. 오해는 마세요.”

“뭐?”

“법적으로 저는 그쪽 ‘가족’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멀리서 찾아오신 손님에 대한 예의로, 또 저를 낳아주신 분이 빌린 돈이라고 하니 도의적으로 드리는 것뿐입니다.”

“뭐야, 그렇게 말해도 어쨌든 우리는….”

“앞으로 제게 전달할 말씀이 있으시다면 변호사를 통해 연락 주시면 좋겠네요.”

“야, 야!”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 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계좌번호는 변호사에게 남겨주세요.”




재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걸음을 옮겨 정문 옆 협탁 서랍에서 변호사의 명함을 꺼냈다. 그리고 문 앞에서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남자에게 건넸다.




“저에게 법적으로 가족은 한 명뿐이었고, 그 가족은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어, 그럼 저기…, 돈을 조금 더….”

“그만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노인은 손자의 팔을 낚아챘다. 그리고 얼른 대문 쪽으로 남자를 밀면서 쫓아내듯 데려갔다. 작고 작은 노인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억새 보이는 행동이었고, 결국 그를 막지도 못하고 남자는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밖에서 큰 소리가 몇 번 났다. 언쟁이 이어지는 것 같더니 곧 자동차에 시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멍하게 그 소리를 듣다가 버튼을 눌러 대문을 닫으려던 재희는 다시 정원으로 조심해서 들어오는 노인을 보았다.




“아까 하던 이야기는 변호사와 해 주세요.”

“미안, 미안하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온건 아니야.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이야….”

“…네, 하지만 다시는 이렇게 만나고 싶지는 않네요.”

“그래…, 알겠다. 알겠어. 정말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어깨를 떨구며 돌아서는 노인을 보던 재희는 자신을 낳아줬다는 그녀가 저렇게 어깨가 얇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건강…, 하세요.”




작게 중얼거리는 재희의 인사를 노인이 들은 건지 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결국 도망치듯이 정원을 빠져나가 대문으로 밖으로 사라졌다.


정문을 천천히 닫고, 재희는 문에 기댄 채 한 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주저앉았다. 주방에 있던 마리아가 천천히 나와 그런 그녀를 보더니 괜찮은지 물었다.




“괜찮아요. 저 별채에서 작업할 테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오늘 저녁은 생각이 없네요.”





겨우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재희를 딱한 얼굴로 보던 마리아가 안젤로에게 연락을 하겠지만, 그는 오늘 도시 반대편에서 중요한 학회에 참석한다고 했으니 올 수 있을 리 없었다.


제인의 장례식이 끝나고 혜숙과 현우가 돌아간 후에도 오롯이 혼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캔버스 앞에 앉아 재희는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빈 여백은 재희의 마음 같았다. 공허하고 공허했다. 안젤로에게서 온 전화를 무시하던 재희는 결국 다섯 번째 만에 받았다.




-“여보세요? 괜찮아?”

“마리아가 기어이 전화했구나. 괜찮아. 바쁜 거 아니야?”

-“바쁘지만, 걱정되는 친구에게 전화할 시간 정도는 있어.”

“안젤로.”

-“응?”

“가족이라는 건 뭘까.”

-“무슨 말이야. 너를 걱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가족인 거지.”

“가끔은 화도 내고?”

-“그렇지. 또 가끔은 싸우기도 하고, 오해도 하고.”

“그래, 그런 거구나. 거기서 오늘 하룻밤 지내고 온다며? 호텔은 좋아?”

-“응, 수영장에 핫한 남자들이 잔뜩 있어.”




스케치가 끝났다. 안젤로의 마지막 말에 웃으며 재희는 연필을 내려두었다.




“그래, 실컷 즐기다가 와.”

-“누가 들으면 진짜 놀러 온 줄 알겠네. 아니야, 너드들만 잔뜩 있어. 그런데 그것도 나쁘지는 않아.”

“안젤로.”

-“응?”

“돌아오면 내 방에 있는 그림 좀 치워주겠어?”

-“왜? 어디가?”




공허한 마음이 아니었나 보다. 스케치가 끝난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던 재희는   숨을 쉬었다. 버틸 수 있다고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진짜 가족이…, 보고 싶어 졌어.”




더는 버틸 수 없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어떻게든 멀리 서라도 볼 수 있다면 지금 보다는 괜찮을 것 같다.




-“…, 잘 생각했어. 빨리 가.”

“응.”

-“너 없는 동안 내가 거실 AV기기 써도 되는 거지?”

“언제는 안 그랬어?”




캔버스 가득, 안젤로가 보여주었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방금 본 것처럼 생생한 그 장면 속에서 원우는 자신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재희는 이제 정말 버틸힘도, 견딜힘도 더는 없었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의 한계였다.


그의 곁이 아니라도, 그를 사랑하는 가족 곁에 잠시라도 있고 싶다.




-“J, 확실한 건 제인이 기뻐할 거야.”




안젤로의 말에 제인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간단히 짐을 챙긴 재희는 혜숙이 만들어준 외투를 입고, 별채를 나섰다.




“응, 알아.”




재희는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이 꿈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그리고 꿈에서 깨기 전에 얼른 그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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