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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 채울 수 없는 빈 자리

MI의 only one으로 남는다는 것

고등학교 2학년 때 세계사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계셨다. 제대로 닦지 않은 안경을 걸쳐 쓰고, 수업 시간에 이런 저런 얘기들을 엄청 하셨던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그랬던 선생님이 한 말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본인이 담임을 맡은 반의 급훈으로도 걸어놨다.


"Not Best One, but Only One"


사람들 바글대는 곳에서 최고를 꿈꿀 것이 아니라, 대체 불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튈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꺼낸 얘기였다. 입시에 치여 살던던 그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지만, 나이를 먹은 요즘에 그 의미가 더 와닿는다. 누군가 쉽게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질 정도로 일해야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세상에 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체 불가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한테 MI는 그런 직무다. MI란 Market Intelligence로, 시장 분석력과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비즈니스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편집하여 비즈니스 의사 결정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뜻한다. 한때 리서치 기관이나 컨설팅 업체들이 MI 기능의 역할을 강조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 나의 직무가 비즈니스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업종은 컨테이너 해운업이다. 해운업은 다른 업종과 다르게 MI 기능이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세밀한 시장 분석을 위한 IT 기반도 부실할 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표준화조차 되어 있지 않아서 분석의 초기 단계부터 꼬일 때가 많다. 다행히 최근에 해운 분야에서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늘고 있어, 숨통은 트이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MI 업무를 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간단하다. 보는 눈이 넓어야 한다. 나는 해운업의 MI를 하고 있지만, 정보를 해운업에 국한해서 찾은 적은 없다. 아주 넓게는 거시 경제를 파악해야 하고, 각 산업군의 트렌드와 물류를 파악해야 한다. 그 흐름 속의 정보를 캐내야, 먼저 선택지를 고르는 운을 쥐기 때문이다. 자동차 운송을 예로 들면, 자동차 운송 선박 (Car Carrier) 시장의 동향만 알아야 할 것이 아니라 자동차 업계 동향은 기본으로 알아야 하며, 나아가 자동차의 개념이 바뀔 때 같이 변화할 자동차 부품 운송의 흐름의 시나리오도 염두해 둬야 한다.


참고로 전세계 컨테이너 선사 1~3위는 모두 유럽 선사들이다. 그들은 이전부터 구축한 데이터 웨어하우스를 바탕으로 각 산업군의 물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각 산업군별 전문가를 별도로 채용해서, 전문가들이 MI를 총괄하고 해운 영업 비즈니스맨들이 MI 산출물을 바탕으로 영업 플랜을 구축하여 실행에 옮기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그 과정에서 스타트업 기업들의 IT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MI가 IT와 직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만큼 MI 직무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 많은데, 아직 국내 해운업에서는 그런 정보를 수집하고 예측하는 개념까지 잡혀있지는 않으며 IT 기반 업무 프로세스 기능도 미약하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해운업 MI의 기능을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면? MI 데이터 표준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 때 나는 Only One이 된다.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은 되지 못할지언정, 가장 독특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 자연히 내 자리의 가치도 높아진다. 나의 MI는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확대될 듯 하다. 


최근에 퀸이 내한하여 콘서트를 열었다. 원 멤버는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두 명이었고 보컬로 아담 램버트가 참여했다. 결성된지 50년이 가까이 되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열광시킨다지만, 나는 왜인지 퀸의 공연을 갈 수가 없다. 베이시스트 존 디콘의 빈 자리 때문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디콘이 없는 퀸의 공연은 갈 수 없을 것 같다.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로저 메이처럼 앞에서 빛나는 존재는 아니지만, 그의 묵직한 베이스 사운드가 음악의 색을 더한다. 또,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 색을 가장 확실히 이해한 것도 디콘이었고, 디콘의 깐깐한 눈을 거쳐야만 퀸의 음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 정도로 디콘의 역할은 매우 컸다. 그런 디콘이 없는 퀸은 너무도 허전하다. 디콘이 퀸의 Only One이기 때문이다.


나는 MI 분야의 존 디콘이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금도 잔걸음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Only One이 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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