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이변
<플란더스의 개>, <살인의 추억>으로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일으켰던 봉준호의 마법은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마저 홀렸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많은 상 중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게다가 무려 65년만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자신의 우상 마틴 스콜세지 감독 앞에서 당당히 이름 석 자를 알린 동시에, 아카데미의 오랜 유리 천장을 깨뜨린 셈이다.
그보다 일 주일 전에 열렸던 2020년 그래미 어워드 역시 이변의 무대가 됐다. 이제 만으로 18세가 된 아티스트 빌리 아일리쉬가 그래미 어워드의 대상 격인 올해의 레코드 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상까지 수상했다. 장르와 무관하게 상을 주는 제너럴 필드에서 10대 여성 솔로 아티스트가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은 그래미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자본력을 갖춘 레코드사와의 인연도 없고 홈 스쿨링으로만 음악을 배운 빌리 아일리쉬가 그래미 어워드의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팝 역사에서 의미가 크다.
아카데미 시상식과 그래미 어워드는 미국의 수많은 시상식, 행사 중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정평이 나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의 경우, 투표인단의 80%가 백인이다. 그러다 보니 비미국 국적 감독이 만든 영화, 백인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 영화에게 인색한 적이 많다. 그래미 어워드도 연차가 쌓이지 않은 뮤지션이나 유색 인종 뮤지션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으며, 비욘세나 칸예 웨스트같은 아티스트들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물 먹은 적도 여러 번 된다.
그랬던 두 시상식에서 보기 드문 이변이 일어났으니, 어쩌면 이는 미국 사회를 위한 넛지 (Nudge) 일 지도 모르겠다. 넛지란 ‘팔꿈치로 쿡 찌르다.’란 뜻인데,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이나 합리적인 방향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금번 아카데미 시상식과 그래미 어워드는 미국 대중 문화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하는 넛지라고 볼 수 있겠다.
미국의 대중 문화계는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에서 온전히 자유롭다고 볼 수 없다. 이전보다 인종의 장벽이 많이 허물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미국의 많은 대중들은 아메리칸 아이돌의 등장을 바란다. 한 시대의 대중 문화를 이끄는 이가 백인이기를 은연 중에 바라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백인이 가장 대우받는 리그이며, 팝 음악계는 백인 스타들의 등장을 선호한다. 특히 그래미 어워드는 유튜브나 틱톡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떠오른 음악 스타들을 탐탁치 않게 바라보는 경향이 짙었다.
게다가 미국은 상당히 마초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대중 문화계에서 자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물론 그 동안 머라이어 캐리, 비욘세 등의 디바들이 여럿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성 팝 스타들만큼 롱런하기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며, 레코드사의 지원 없이는 음악 활동을 지속하기 쉽지 않다. 메이저리그에 여성 코치가 등장한 것도 무려 150년 만의 첫 사례일 정도니, 그만큼 대중 문화에서 금녀의 벽은 금성철벽에 가까웠다.
그 정도로 보수적이고 변화에 쉽게 대응하지 못했던 미국 대중문화의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과 빌리 아일리쉬가 최고의 별이 되었다는 것은 자극이 된다. 시상식의 변화, 나아가 대중 문화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그들의 등장은 변화를 위한 자극으로 작용할 것이고, 이는 새로운 트렌드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영화 <기생충>의 쾌거는 충무로는 물론 할리우드 영화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니, 이만한 넛지 효과도 없을 것이다.
기분 좋은 자극이 기분 좋은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 단 한 번의 자극이 선택을 바꾸고 결과를 바꾼다. 그것이 넛지의 힘이다. 우리는 2020년초에 봉준호와 빌리 아일리쉬의 넛지를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