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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 그것은 우리가 걸어온 길

규칙은 인류의 본질이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미친듯이 뿌리는 잭슨 폴락의 드리핑 (Dripping) 기법은 얼핏 보면 엄청난 카오스와도 같고, 아무런 패턴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여러 색깔의 물감을 보고 있자면, 그저 모든 모양이 우연의 현상 같다. 하지만 잭슨 폴락은 캔버스 위의 난장판이 의도된 연출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우연을 가장한 계산인 셈이다.


그런데 폴락의 작품을 과학적으로 뜯어보니까, 어떤 규칙이 발견됐다. 캔버스 전체의 그림의 패턴이 캔버스의 일부분에서도 반복된다는 주장이 과학 잡지 <네이처>에 실렸다. 부분이 전체를 닮는, 반대로 전체가 부분을 닮는 규칙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구조를 프랙탈 (Fractal) 이라고 부르며, 프랙탈 구조는 실제로 폴락의 작품의 진위를 가리는 데에도 쓰였다고 한다. 



지난 2000년에 발매한 서태지의 솔로 앨범 <울트라맨이야> 표지에도 프랙탈 도형이 그려져 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대표적인 헤어스타일인 콘로우 (Corn Row) 역시 프랙탈의 표본이다. 나뭇잎의 구조 역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프랙탈의 세계와 같다. 얼핏 보면 모양이 복잡해서 기분대로 만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러한 구조가 규칙적으로 무한하게 반복된다. 


프랙탈의 세상에서 무엇을 꿰뚫어볼 수 있을까. 이렇게 복잡해 보이는 세상도 알고 보면 단순한 반복이고, 규칙이 반복되는 세계다. 자연 속의 불규칙한 절경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고, 복잡한 건물 단지 설계 안에도 패턴이 숨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달리 얘기하면, 우리는 바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살아가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규칙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 


돌아보면 인류의 수학사와 철학사, 심지어 예술사까지도 어떤 일정한 규칙을 찾아온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학은 기하학과 대수학의 논리와 규칙을 찾아왔고, 철학은 만물의 재료부터 인간의 사고 패턴, 나아가 존재의 규칙까지 탐구해왔다. 예술이라고 크게 벗어나지는 않아서, 음악과 미술, 문학이 걸어온 길에도 일정한 룰이 있었다. 인간은 부지불식간에 규칙대로 움직여온 존재다.



우리는 스스로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라고는 하나, 무의식적으로 패턴을 만들어간다. 사람은 유사한 패턴에 익숙해지는 관성이 있어서, 한번 익숙해진 패턴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확장해 나간다. 하루의 습관 만들기, 도화지에 색칠하는 방법, 수능 문제 풀이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션들을 수행할 때, 우리는 작은 규칙부터 조금씩 고정시킨다. 고정된 습관이 하나의 패턴이 되고, 그 패턴이 확장되면서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습관이자 컨셉이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가 그렇게 패턴에 갇힌 존재였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 얘기하면 그런 패턴의 확산이 인간의 본질이자 만물의 근원이다. 사람은 근원적으로 모든 것을 자기 생각대로 통제할 수도 없고, 자신의 작은 행동조차 완벽한 자유 의지로 실천하지 못한다. 사람의 생각 역시 틀이나 한계에 갇힐 때가 많아, 생각의 줄기를 무한하게 뻗어나가기 어렵다. 그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패턴의 형성과 반복을 통해 세계관을 넓히고 행동 반경을 넓힌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


자기 유사성을 바탕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는 프랙탈, 외관상 복잡해 보이는 프랙탈이야말로 어떤 개념의 근원으로 향하는 길이 아닐까. 동시에 사람이 살아온 길을 압축해놓은 도면과도 같다. 잭슨 폴락의 캔버스 위에 뿌려진 수많은 물감은 규칙을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인류의 흔적을 상징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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