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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학농구 적폐, 답은 얼리 엔트리

적폐 청산, 그리고 또다른 기회

지난 9월, 미국 대학스포츠 계가 발칵 뒤집혔다. FBI에서 정치계의 '게이트' 사건과도 같은 대학농구 뇌물 수수 사건을 공개한 것이다. 대학농구 팀의 코치들이 자신들의 힘을 이용하여, 특정 에이전트나 특정 학교들에게 뇌물을 쥐어주고 코치가 원하는 유망주를 데려오는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 그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 바로 아디다스의 관계자들이 사적으로 코치들 뒷주머니에 꽂아준 돈이었다. 이 일로 애리조나, 오클라호마 주립 등 4개 대학의 코치들이 자격 정지되거나 해임되었다. 만일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간다면 엄청난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디다스 관계자가 아디다스가 후원하는 대학으로 유망주가 입학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선수의 가족에게 10만 달러를 준 것이 추가로 드러났다. 그 대학이 바로 루이빌 대학이었고, 이로 인해 루이빌 대학의 감독 릭 피티노가 전격 경질되었다. 릭 피티노는 1996년에 켄터키 대학을 대학농구 토너먼트 우승으로 이끌었고 2013년에 루이빌 대학의 우승을 이끈 명장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그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이미 2015년에도 성추문으로 한번 풍파를 맞은 피티노에게 이번 사태는 호흡기를 뗀 격이었다.


아직 모든 수사가 종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으로 NCAA (전미 대학 체육 협회) 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졌다. 게다가 선수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믿음을 잃어버리면서 전례없는 위기를 맞이했다. 한국의 경우 예전부터 선수 스카우트 경쟁에서 상당한 비리가 있었다. 그러면서 국내의 상당수의 스포츠 팬들은 '한국은 이래도 미국은 이 정도로 지저분하지는 않겠지.'라는 일말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았다. 만만찮은 부패가 미국 대학농구를 덮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명장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이 사건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진단서가 있지만, 결국은 미국 대학농구의 오랜 적폐와 무능이 다시 한 번 표면으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그 동안 NCAA는 NBA와 대립의 각까지 세워가면서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해왔다. NBA를 돈밖에 모르는 조직이라고 비판하면서, 코트 위에서 뛰는 학생들의 순수한 승부욕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학생들은 외려 피해자였다. NCAA 사무국과 대학 농구 팀 감독 및 코치들만 돈을 벌었을 뿐, 학생들은 단 한 푼도 벌지 못했다. '학생들은 사적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는 NCAA의 오랜 관행 때문이었다. 한동안 이러한 원칙이 NCAA의 전통이라 여겨졌지만, 이제는 전통이 아닌 적폐로 변질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대학 졸업생들 중 70%가 학자금 대출, 월세 대출 등으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 있다고 한다. 한국의 대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더구나 미국의 일부 사립 대학 등록금은 그 비싸다는 한국의 사립 대학 등록금보다도 훨씬 비싸다. 대학 농구선수들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4년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니는 선수들은 전체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학교에서 4년 전액 장학금을 주고 데려올 수 있는 농구 선수는 1년에 4명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일반 학생들처럼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녀야 한다. 4년이 지나면 이들도 빚더미의 슬픔을 마주할 지도 모른다.


이렇게 학생 선수들이 돈에 쪼들리는 동안 NCAA 관계자들의 눈앞에는 돈방석이 가득하다. NCAA는 지난 2010년에 CBS, 터너社와 14년 간 108억 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심지어 지난 2016년 4월에 계약 기간을 8년 더 연장했고, 총 중계권 계약 금액은 88억 달러가 더 늘어났다. 총 22년 간 196억 달러, 연간 9억 달러에 달하는 돈 잔치이다. 그 돈은 고스란히 NCAA 관계자들, 대학 관계자들, 그리고 농구 팀 감독 및 코치들의 몫이다. 실제로 일부 대학농구 감독들의 연봉은 웬만한 NBA 선수들보다 더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돈의 유혹을 떨쳐내기 어렵다. 특정 학교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거나, 특정 스포츠 브랜드에서 조금만 바람을 불어넣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유혹은 특급 유망주들일수록 더 많다. 고등학교 농구 선수 중에서 돋보이는 이들이 있으면, 대학농구 코치들이나 브랜드 관계자들이 바로 접근한다. 대학 입장에서는 그런 특급 신입생이있어야 대학교 체육관이 꽉 차고 농구 인기가 올라가며, 브랜드 관계자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광고 모델을 확보하는 마케팅이다. 그러다보니 어린 선수들, 특히 흑인 선수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릴 수밖에.

그들은 여전히 배고프다

대부분의 흑인 농구 선수들은 가난하다.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더라도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그들이 농구공을 잡는 목적은 간단하다. 돈을 벌어서 가난을 탈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4년을 보내면 NCAA의 엄명 때문에 돈을 벌 기회가 없다. 규정상 금품을 받으면 처벌을 받게 되고, 에이전트를 고용하면 대학 선수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래서 아예 졸업하기 전에 프로 무대에 진출하는 얼리 엔트리 (Early Entry) 를 시도하는 선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얼리 엔트리란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원칙적으로 드래프트에 참여하려면 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참가 자격이 고등학교 졸업이면 무조건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대학교 졸업이 자격이라면 대학교를 졸업해야 드래프트 참가 신청이 가능하다. 그러나 얼리 엔트리 제도가 있다면, 학교 졸업을 하지 않아도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바로 프로 무대로 진출할 수 있다.


NBA의 경우 드래프트에 지명되는 선수들 중 상당수가 대학 졸업 전에 드래프트에 나온 얼리 엔트리 대상자이다. 지난 6월에 있었던 2017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된 선수 30명 중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단 두 명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1라운드 막판에 지명된 선수들이었으니, 구단들이 원하는 선수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얼리 엔트리 선수들이었다. 그 중에는 정말 실력이 있어서 대학을 등지고 NBA에 진출하는 이들도 있지만, 당장에라도 NBA 팀과 계약하여 돈을 벌려고 하는 선수들도 있다. 그 선수들에게는 대학 졸업장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당장 내 지갑에 들어올 돈이 중요하다.


하지만 NBA 규정 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NBA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없다. 대학에 입학하여 1년 이상 다니거나, NBA 외의 프로농구 리그에서 1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야 한다. 이를 원앤던 (One-and-Done) 이라고 한다. 이 규정 때문에 고교 최고의 농구 유망주들은 의무적으로 대학에 들어가거나, 미국 외의 지역에서 프로 선수로 뛰게 된다. 


바로 이 의무적인 대학 입학 규정 때문에, 대학농구 코치들이나 브랜드 관계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특급 유망주들이 1년만 대학에 다니고 NBA로 가면, 또다른 유망주로 그 빈 자리를 채워야 한다. 그렇게 매년 입도선매 레이스가 펼쳐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고교 선수들을 입도선매하기 위한 뒷거래, 혹은 물밑 경쟁을 치열하게 벌인다. 혹시나 대학농구에 선수들이 대학에 입학하지 않을까봐 만든 규정이 뒷돈 경쟁으로 악용된 셈이다. 


이렇게 대학농구에 만연한 적폐를 청소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이다. 얼리 엔트리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면 된다. 학업에 별 뜻이 없고 NBA로 가고 싶어 하는 선수들은 아예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만들면 된다. 그렇게 되면 정말 대학에 오고 싶어하는 선수들만 받아서 다니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의 기대효과를 볼 수 있다.


특급 고교 선수들이 미리 NBA 진출을 선언한다면, 지저분한 경쟁을 벌일 이유도 없고 감상할 필요도 없다. 대학에 가지 않는 선수를 두고 대학농구 코치들이 경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에 오는 선수들의 대부분은 NBA에 진출하는 선수들보다는 실력이 떨어진다. 코치나 브랜드 관계자들이 그들을 데려가려고 달려들 이유는 없다. 사업적으로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에게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 특급 선수들이 독식하다시피 했던 기회가 벤치에만 앉아있던 선수들에게도 갈 수 있다. 변변한 후원 하나 제대로 못 받는 평범한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코트를 뛰어다니면, 그 때서야 진짜 순수한 승부의 장이 펼쳐진다. NCAA가 늘상 추구했던 학생들의 순수함은 간절히 뛰고 싶어하는 평범한 선수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최초의 얼리 엔트리

한동안 NCAA는 물론 NBA에서도 얼리 엔트리를 반기지 않았다. NBA 최초의 얼리 엔트리 선수였던 스펜서 헤이우드는 NBA 올스타에 5회 선정된 실력자였지만, 선수 생활 내내 따가운 눈초리와 관중들의 야유만 받다가 은퇴했다. 생활고 탈출을 위해 얼리 엔트리로 NBA 드래프트에 참여한 대가였다. 그러나 지금 NBA는 얼리 엔트리로 뛰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NCAA는 얼리 엔트리 제도 때문에 NBA로 선수들이 유출된다면서 얼리 엔트리를 부정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대세를 애써 부정할 수도 없다. 게다가 기존의 제도는 고인 물이 되어 순환을 막고 있다. 대학농구계의 적폐를 해결하고 싶다면, 대학농구 스스로 얼리 엔트리를 인정하고 선수들을 풀어주는 것만이 답이다. 대학생들을 허울 좋은 명분으로 잡아둬봐야, 지금 상태에서는 그들의 빚만 더 늘어나는 애달픈 결과만 보여줄 뿐이다. 잡기 위해서는 때로는 놓아주는 지혜도 필요하다. NCAA에게 필요한 것은 놓아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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