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고 지금에야 알게된것

by 키도


어릴때는 피아노 치는게 좋았다.

두드리는대로 고운 소리를 내는

까만색-흰색이 교차된 얼룩말같은 악기.

닭장같은 학원 방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시간가는줄 몰랐다.

그리 넓지 않은 집에서 삼남매를 북적이며 키웠던

우리집엔 피아노를 놓을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더 갖고싶었나보다.

밤이고 낮이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시골집에 쌓여있는 클래식, 판소리 CD들.

그래서인지 집으로 전화를 하실때면 나를 바꿔달라 하시고는

피아노 아직 잘 치고 있냐 물으시며

피아노 한대 할아버지가 꼭 사주마 하셨다.

음악을 좋아하시니 손녀가 악기하나 다루는게 퍽 마음에 드셨나보다.


영영 자라지 않을 것 같았던 꼬마아이는 자랐고 그 약속을 잊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집에서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다

할아버지는 왜 피아노 사준다고만 하시고

끝내 사주시질 않았을까 하는 말을 던졌다.

그 얘기를 듣고 아빠랑 엄마가 눈을 마주치시더니, 조금은 서글픈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사실 그때 너 피아노 사주라고 주신 돈이 있었는데

집을 사게되며 보태서 쓰느라 사주지 못했다고.


어린마음에 말뿐인듯한 할아버지의 약속이

야속해서 속으로 푸념했는데

약속을 지키신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참 뒤에서야 알게됐다.


그래서 여전히 피아노를 보면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이제는 오른손으로밖에 못치지만

괜시리 두드려보게 된다.

더듬거리며 옛 사랑을 복기하듯, 회상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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