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거하신다고요?”
매수 당시 건물은 5층 규모였다. 2~3층엔 세입자가 있었지만, 나머지는 텅 비어 있는 상태. 자금적 여유가 없이 건물을 매수했기에 당장 숨 가쁘게 돌아오는 이자를 감당하려면 비어 있는 층부터 서둘러 리모델링해 임대를 맞춰야만 했다. 부지런히 업체들을 컨택해 견적을 뽑고 드디어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중 3층 세입자에게 연락이 왔다.
“사업이 번창해서 더 큰 사무실로 옮기게 됐습니다. 퇴거할게요”
사업이 잘되어 나간다니 축하할 일이었지만, 내 눈앞은 캄캄해졌다. 3층마저 나가버리면 남은 건 2층 세입자뿐. 매달 이자는 1,200만 원씩 꼬박꼬박 나가는데, 들어오는 월세는 고작 300만 원이었다. 여유 자금이 없는 상태에서 매달 900만 원의 생돈을 메꿔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월세 받는 건물주가 되어 당당히 퇴사하는 꿈을 꿨건만, 현실은 이자를 내기 위해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그때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그냥 지금 팔아버릴까?’
다행히 시세보다 저렴하게 샀고, 주변 지가도 오르는 추세였기에 지금 팔아도 수익은 충분해 보였다. 특히 법인으로 매수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개인이라면 단기 매매차익에 대한 징벌적인 양도소득세 때문에 엄두도 못 냈겠지만, 법인은 보유 기간과 상관없이 그해 수익에 대한 법인세만 내면 그만이었다. 굳이 오래 버틴다고 혜택이 더 있는 것도 아니었다.
리모델링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잔금을 치른 지 불과 두 달 만에 중개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건물을 매도하고 싶습니다, 희망 매매가는 73억입니다.”
주변 건물 시세와 비교해 보았을 때 적정가격이라고 생각한 매도가를 제시했지만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매도인의 기를 꺾어 가격을 낮추려는 중개사 특유의 전략이었겠지만, 초보 건물주였던 나는 그 심리전을 읽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의 냉담한 반응에 '역시 복직밖에는 답이 없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복직까지 남은 시간은 단 한 달.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가족들과 제주도로 떠났다. 3월의 제주도는 흐드러진 동백꽃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처량하기만 했다.
그런데 여행 중이던 밤 9시, 적막을 깨고 중개사에게 전화가 왔다.
“사모님, 73억에 가계약금 바로 넣겠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54억에 사서 73억에 매도하는 계약이었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도살장 같던 회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온몸을 감쌌다. 세금도 떼고 친구들과 수익도 나누어야 했지만, 내 힘으로 이
판을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에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래, 퇴사하자. 이제 진짜 자유다!’
제주에서 돌아오자마자 2층 세입자에게 6,000만 원의 명도비를 주고 내보냈다. 과한 비용이었지만, 이미 확정된 큰 수익 앞에 그 정도는 기분 좋게 건넬 수 있는 보너스 같았다. 세금, 인테리어비, 명도비를 다 제외하고도 손에 쥐어진 돈은 10억. 금방이라도 세상을 다 가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모두의 부러움 섞인 축하 속에 마침내 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그날 밤, 가족들과 축하 파티를 하던 중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16년을 몸담았던 조직을 떠난다는 허망함이었을까, 아니면 지독했던 압박감으로부터의 안도감이었을까.
만약 거기서 멈췄다면 내 인생은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퇴사 바로 다음 날, 나는 마치 홀린 사람처럼 또 다른 건물을 찾기 위해 다시 임장 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