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퇴사 시대의 흐름을 타다
1년 3개월 만의 복직
2021년 1월. 복직을 앞두고 오래간만에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꺼내 입어 보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다행히 임신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내 안의 공기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였고, 무엇보다 휴직 기간 동안 상승한 부동산과 같이 나의 자신감도 상승해 있었다.
부동산 투자의 시작은 2015년, 남편과 가정을 꾸린 직후였다. 부모님은 늘 월급을 아껴 저금하는 것이 미덕이라 가르치셨지만, 나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우연히 집어 든 부동산 책 한 권이 방아쇠가 되어 경매에 뛰어들었고, 3천만 원의 '갭'으로 낙찰받은 첫 아파트를 시작으로 어느덧 3주택자가 되었다.
그렇게 사둔 아파트들의 가격이 육아휴직 기간 동안 거짓말처럼 두 배로 치솟았다. 아직 내 손에 쥐어진 현금은 아니었지만, 그 숫자가 주는 든든함은 대단했다. 동시에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초라해졌다. 시대의 흐름은 그렇게 나의 노동 의욕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회사 사람들은 그대로였다
휴직 전 같은 팀 사람들 쪽으로 가서 인사를 건네곤, 팀내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L부장을 찾아 갔다. 인사를 건네니 나를 흘금 보고 잠깐 안부를 묻더니 새로운 업무를 주었다. 애당초 나의 의사는 관심도 없는 듯 했다
대기업은 누군가 꼭 있어야만 회사가 돌아가는 상태를 극도로 싫어한다
사람은 언제든 나가고 들어올 수 있기에 사람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중요했고, 직원들의 의지보다는 부족한 곳에 끼워 맞춰서 돌아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 이유로 업무가 적성에 맞다 해도 3~5년 정도가 되면 로테이션을 통해 다른 자리로 옮겨지곤 했는데, 이렇게 직원들은 어디에 넣어도 적응해 나가는 부품 같은 존재여야 했다
대신에 이러한 구조는 누구 하나가 빠지더라도 회사가 문제 없이 돌아간다는 장점도 있었다. 내가 조산으로 갑작스럽게 육아휴직을 했을 때도 누군가 이렇게 내 자리에 들어와 다시 부품처럼 일을 해주었을 것이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누군가 휴직하며 남긴 '빈자리'였다. 업무를 가르쳐줄 사수도 없고, 손발을 맞출 동료도 모두 낯설었다. 가시방석 같은 자리에 앉아 2주를 버티자,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로웠던 집안 거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이 일,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해도 아무 상관 없는 거 아닌가?’ 회사가 나를 부품 취급하듯, 나 역시 회사의 업무를 무의미한 소모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다시 L부장을 찾아갔다.
중국어 전공에 농담을 잘 던지는 부장님은 나를 보며 알아듣지 못할 중국말로 장난을 쳤다.
"니츠판러마(你吃饭了吗)”
밥 먹었니?라는 질문이었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자세를 고쳐 앉은 부장님은 사뭇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자신을 찾아온 건 업무가 힘들거나 고민사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다.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했나?’
‘부장님, 저 기존에 하던 업무를 계속할 수 없을까요?’
잠시 뜸을 들이던 부장님은 내 눈을 쳐다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회사에서 월급 받는 사람은 원하는 일만 계속할 수 없습니다’
반박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거절을 당한 것에 얼굴이 달아올라 자리에 돌아와서 모니터만을 쳐다보고 있다가 묘한 도전의식이 생겼다.
‘월급을 받는 사람들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라면... 월급만 포기한다면 이곳의 어떤 누구도 내 시간을 가져갈 수 없겠구나...’
아파트 가격이 준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 결심이 섰다. 월급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다행히 내게는 쓰지 않은 1년의 육아휴직이 남아 있었다. 이 유예 기간을 퇴사 준비를 위한 골든타임으로 삼기로 했다.
누군가는 용감한 선택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만약 내가 회사에 1년 이상 일을 한 상태였다면 이런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었을 테다.
아직 조직에 스며들지 못했기에, 그리고 노동 소득의 가치가 희석된 시기였에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이 유행했던 건 이런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해 주는 결과였다.
다시 휴직
‘부장님 저 1년 더 휴직을 하겠습니다’
복직한 지 두 달 만이었다.
다시 휴직을 선언하자 부장님은 난처해 보였다. 다른 업무를 제안했지만 이미 휴직에 대한 마음을 먹은 지라 정중하게 거절했다.
다시 휴직을 한다니 주변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느껴졌다.
하나의 조직에 적응해 나가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궁금증, 질투 그리고 반발을 동시에 느낀다.
2달 만에 다시 휴직을 선언한 나의 행동은 회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지만 그것도 잠시,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내가 빠진 회사는 늘 그렇듯 잘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