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게 휴직은 했지만, 진짜 고민은 그때부터였다.
막상 월급이라는 안전벨트를 풀고 나니 눈앞에는 막막한 바다가 펼쳐졌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남편의 벌이에만 기대는 평범한 외벌이의 삶을 꿈꾸며 나온 건 아니었다. 회사원이라는 틀 밖에는 분명 더 나은 인생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다 문득 핸드폰 바탕화면을 보았다. 그곳엔 있는 건물 사진 한 장.
‘그래, 건물...!’
2010년 이후 저금리 시대가 이어지며 투자자들 사이엔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나 역시 그 유행의 파도에 올라타, 언젠가는 월세 받으며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담아 그 사진을 저장해 두었었다. 매달 통장에 꽂히는 임대료와 '건물주'라는 근사한 명함.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수십 억을 호가하는 건물을 무슨 돈으로 산단 말인가? 하지만 물러설 곳은 없었다. 휴직까지 배수진을 친 마당에 뭐라도 해야 했다.
'해볼 만하겠는데?'
유튜브를 뒤지며 공부를 시작하자 신세계가 열렸다. 지금까지 투자했던 아파트와는 판 자체가 달랐다. 아파트는 정부의 대출 규제로 매매가의 50%도 빌리기 힘들었지만, 건물은 달랐다. 규제에서 자유로운 덕분에 매매가의 8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즉, 매매가의 20%만 있으면 건물을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개인보다는 법인이 대출에 유리했고 다행히 법인을 만드는 건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았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50억짜리 건물을 현금 10억이면 손에 쥘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장 수중에 10억은 없었지만, 불가능한 숫자도 아니었다.
건물 투자는 처음이었지만, 아파트 투자로 돈을 벌어 본 경험도 한몫하고 있었다
"그래, 해보자!"
2020년 당시, 제로 금리에 가까운 정책 덕분에 마이너스 통장 금리는 고작 2%대. 나와 남편의 신용을 털어 4억을 마련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친구와 사촌동생.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호기롭게 외쳤다.
“10억이면 건물을 살 수 있대! 우리 4억씩 모아서 건물주 되어볼래? 발품은 내가 다 팔게!”
역시 직장인들의 꿈은 하나였다. 그들은 흔쾌히 손을 잡았고, 그렇게 모인 12억의 자본금과 함께 나는 건물주로 향하는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돈이 마련되자마자 본격적인 건물 탐색이 시작됐다.
청담동, 신사동...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강남의 빌딩 전문 중개업소들을 찾아갔다. 문을 열면 눈부신 조명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나를 반겼다. 정장 차림의 직원들이 에비앙 생수와 고급 쿠키를 내어오며 나를 ’ 대표님’이라 불렀다.
처음엔 그 호칭이 어색해 몸 둘 바를 몰랐지만, 어느새 그 분위기에 취해갔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수십 억대 매물 브리핑을 듣다 보니 이미 건물주라도 된 양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물론 그 화려한 대우 뒤에는 매매가의 0.9%, 즉 100억이면 9천만 원에 달하는 엄청난 수수료가 숨어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중개사에게 대접받는 듯한 느낌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매일이 여행 같았다. 밸류맵 어플로 실거래가를 체크하며 서울 구석구석을 누볐다. 대구 출신에 수원 직장인이었던 내게 서울 지리는 낯설었지만, 네이버 지도를 나침반 삼아 걷는 길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골목길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세를 파악하는 일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짜릿한 탐험이었다.
그렇게 거의 매일 서울로 다니다 보니 지역별로 대략적인 시세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건을 받아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서울의 꼬마빌딩은 수익률이 2~3% 대라는 것
월세 받아서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생각했던 건물주의 이미지와는 달랐지만,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건물 값을 보며 매달 월세가 남지는 않더라도 시세차익이 크니 하루라도 빨리 사서 시세차익을 남기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연락하던 중개사에게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대표님, 이 건물 당장 가보세요! 가등기가 걸려 있어 시세보다 훨씬 싸게 나왔습니다. 해결 가능한 문제니 무조건 잡으셔야 해요!”
합정역 인근, 대지 90평의 5층 건물이었다. 아들의 사고로 급처분이 필요한 상황이라 60억에서 시작한 가격이 54억까지 깎였다고 했다. 아파트라면 상상도 못 할 '단위가 다른 네고'였다. 현장으로 달려가 보니 입지는 확실했고, 시세보다 저렴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매매가: 54억 (취등록세 및 수수료 포함 총 57억)
대출: 45억 (금리 3%대)
필요 자금: 약 12억
우리가 모은 돈과 딱 맞아떨어지는 운명 같은 매물이었다. 남편은 "진짜 살 줄은 몰랐다"며 무리 아니냐고 손사래를 쳤지만, 내 눈엔 이미 확신이 서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중개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거 제가 하겠습니다!”
가계약금을 입금하고 며칠 뒤, 드디어 계약서를 쓰기 위해 중개업소를 찾았다. 아파트 계약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매수자와 매도자를 각각 다른 방에 앉혀두고, 중개사가 양쪽 방을 분주히 오가며 협의 사항을 조율하는 일종의 '셔틀 협상'이 시작되었다.
협의할 내용은 산더미 같았다. 층별 세입자와의 관계부터 보이지 않는 건물의 하자 상태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할 숫자와 조항들이 종이 위를 빼곡히 채웠다.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모든 조건이 맞춰졌고, 마지막 도장을 찍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상대 방에 있던 매도자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명도: 아들이 사용 중인 1층 상가와 주택으로 쓰고 있는 4~5층을 모두 비워줄 것.
용도 변경: 잔금 전, 주택 부분을 상가로 용도 변경하는 데 전적으로 협조할 것.
잔금일: 2021년 12월.
당시는 주택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법인의 주택 투자를 강력히 규제하던 시기였다. 법인이 주택을 취득하면 무려 12%의 취등록세 '폭탄'을 맞아야 했고, 대출 문턱은 높았다.
그런 규제로 시중에 풀린 막대한 돈이 갈 곳을 잃고 상업용 건물로 몰리며 건물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치던 때이기도 했다.
정부의 규제를 피하면서도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주택'을 '상가'로 탈바꿈시키는 기술이 필요했다. 주택 부분을 상가로 용도 변경한 뒤 매수해야 취등록세를 아끼고 대출을 최대한 끌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도자의 협조는 이 거래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열쇠였다.
그렇게 모든 협상을 완료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서에 날인을 마치자마자 나는 친구들과 함께 법인을 설립했다. 서류상으로는 딱히 하는 일 없는 페이퍼 컴퍼니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나는 '진짜 대표'가 되었다.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다행히 모든 톱니바퀴가 계획대로 맞물려 돌아갔다. 까다로웠던 용도 변경 승인이 떨어졌고, 대출 역시 약속된 만큼 실행되었다. 2021년 12월, 마침내 거액의 잔금이 치러지며 건물의 주인이 바뀌었다.
내 생애 첫 건물주. 핸드폰 바탕화면 속에만 갇혀 있던 그 사진이 비로소 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앞으로 해야 할 세입자 관리, 리모델링, 그리고 텅 빈 공간을 채울 임대까지 산더미 같은 숙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길거리의 불빛들조차 나를 축하해 주는 전구처럼 반짝였다.
"그래, 드디어 해냈어."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그렇게 막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