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을 만드는 것은 과거의 경험이다
우리는 흔히 생각을 하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뇌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길 원하기에 경험한 것 안에서 답을 찾는다. 나 역시 그랬다. 단시간에 큰돈을 벌어본 기억은 나를 다시 똑같은 방식의 투자로 이끌었다.
이번에 타깃으로 삼은 곳은 ‘강남’이었다. 하지만 합정역 꼬마빌딩을 사고팔았던 그 짧은 사이, 강남의 매매가는 저 멀리 달아나 있었다. 처음 투자했던 돈에 수익금까지 보탰으니 훨씬 좋은 건물을 고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막상 마주한 건물의 컨디션들은 처참했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그러다 한 물건을 소개받았다. 평당 1억이 넘어가는 동네에서 평당 5,700만 원에 나온 물건이었다. 역에서 걸어서 딱 3분, 땅도 78평이나 됐다. 물론 싼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도로에 붙은 게 아니라 앞집 뒤에 숨어있는, 이른바 ‘자루형 토지’였다. 아파트로 따지면 사람들이 제일 꺼리는 1층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내 눈에는 단점보다 ‘저렴한 가격’이 훨씬 크게 들어왔다. 건물은 시간만 지나면 어차피 오를 텐데, 이렇게 싼 걸 빨리 사서 되팔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첫 건물을 살 때 3달을 고민했다면, 두 번째는 한 달도 안 되어 도장을 찍었다.
매매가 : 45억
(취등록세 및 수수료 포함 총 48억)
대출 : 35억 (금리 5.7%대)
필요 자금 : 약 13억
계약을 하던 22년 4월. 금리가 꿈틀대고 있었지만 저금리에 너무 오래 길들여진 탓일까. 금리가 오르면 사람들이 겁을 먹을 테니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복병이 터졌다. 저 멀리서 일어난 러우전쟁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내 신변이 위험한 건 아니었지만, 전쟁이 끌고 온 인플레이션은 내 피부에 직접 닿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복기해 보면 ‘건물이 왜 오르는가’에 대해 더 신중했어야 했다. 건물은 신축이나 리모델링으로 임대료를 높여 가치를 올리거나, 시중에 돈이 넘쳐나서 자산 가격이 오를 때 가치가 뛴다.
코로나가 불을 지핀 인플레이션에 러우전쟁이 기름을 부었다. 건물을 손보는 공사비는 30% 넘게 뛰었고,
그렇게 뛰는 물가를 잡기 위해 나라에서는 금리를 올려 돈줄을 죄기 시작하자, 은행으로 돈이 들어가면서 부동산 가격은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23년 1월 잔금 날. 시장은 매서운 겨울바람보다 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잔금을 치르려 대출을 받았는데 금리가 5.7%였다. 첫 건물 때보다 2배나 높아진 이자였다. 한 달 이자만 1,700만 원이 나갔다.
‘이러다 금방 좋아지겠지.’ 워낙 저금리에 익숙했던 터라 이 상승이 일시적일 거라 생각했고, 단기 매각만 생각했기에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으며 버텼다.
하지만 건물을 살 때 그렇게 연락하던 중개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해졌다. 답답한 마음에 먼저 전화를 걸면 “요즘 시장이 안 좋아서요...”라는 뻔한 소리만 돌아왔다. “저희 물건 싼 거 아시잖아요... 잘 좀 부탁드려요.”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간절하게 매달려봐도 주인을 찾는 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흐르자, 비어있던 집은 폐허로 변해갔다. 벽엔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올랐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사람들이 몰래 버린 쓰레기가 쌓이고, 내 땅은 어느새 무단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주인인 나조차 그 건물에 발을 들이기 싫을 만큼 건물이 망가져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이자는 매달 1,700만 원씩 꼬박꼬박 통장을 비워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처음에는 복비 0.9%가 왜 이렇게 높나 싶어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복비를 2% 넘게 줘서라도 팔아만 준다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식처럼 클릭 한 번에 팔리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처럼 대기 수요가 있는 것도 아닌 이 시장에서 중개사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중개사에게 전화만 돌리는 건 답이 아니었다.
“간단하게 리모델링이라도 해서 살 사람이 호감 가게 만들어 두는 건 어때?”
지인의 제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매수자라도 이렇게 쓰러져가는 건물은 싸도 쳐다보지 않을 것 같았다. 흉물이 된 내 건물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