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9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 보니
지구가 한 바퀴 돌 동안 계속 아파요
댕이는 생후 만 9개월을 넘기자마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선배 엄마인 친동생이 아들 둘을 돌 전부터 어린이집에 보냈기 때문에, 아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뭔가 일할 거리를 찾아볼 생각이었고, 사실 집에서 아이와 둘이 있으니 힘들기도 하고 좀이 쑤셔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5월생인 딸아이의 첫돌은 지나고 여름에 보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는데, 어린이집에 상담했을 때 그때는 자리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혹시나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되어 덜컥 3월부터 등록을 해 버렸다.
등원 첫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놓고 나오던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풍경이 달라 보였다. 아파트 단지 안의 푸른 나무들,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 그날따라 유난히 눈부시게 느껴졌던 햇살을 맞으며 걷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옆에 누구 없이 혼자 이 길을 걷는 게 얼마만인지. 댕이를 맡기고 돌아다녔던 한 시간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었다. 다시 아이를 찾으러 어린이집에 오니, 아이는 울지 않고 놀고 있었다.
댕이는 어린이집을 좋아했다. 엄마와 떨어진다고 불안해하지 않았고,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한 달 만에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기 시작했고, 아침 9시 반에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고 1-2시에 데려올 수 있게 되었다. 그 3-4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큰 자유를 줬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이유식을 만들어 어린이집에 싸서 보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몇 시간의 자유를 위해 도시락을 싸고 아이를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오는 수고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한 3일째부터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던 거다. 주말 내내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던 댕이의 얼굴에 벌겋게 열꽃이 피었다. 내 다리를 붙들고 계속 우는 소리를 하는 아이를 내내 팔에 안고 집안을 돌아다녀야 했다. 며칠간 앓다가 조금 나아지면 일주일 후에 다시 아팠다. 아무리 해도 열은 떨어지지 않고 아이가 우느라 탈진할 정도가 되어 응급실행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집 근처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어린이집에 다닌다는 말에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어린이집에 가면 바이러스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아파요. 그렇다고 어린이집에 안 가면 안 아픈가 그건 아니에요. 돌 때쯤 되면 아이들이 돌치레 한다고 많이 아픕니다. 위에 형, 언니가 있는 둘째인 경우 또 더 일찍 아파요. 어린이집에 일찍 가는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더 일찍 아프죠. 그 대신 그다음 해에 처음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들이 아플 때는 또 덜 아파요. "
뭔가 설명이 좀 복잡했지만, 집중해서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크게 원을 그렸다.
"지구가 한 바퀴 돌 때까지, 그러니까 18개월 정도까지는 계속 아프다고 보면 됩니다."
지구가 공전하는 것과 아이가 아픈 것이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앞으로 1년 가까이 아플 거라는 얘기였다. 절망적이었다. 어린이집에 보내나 보내지 않으나 아프다니.
그 당시 언제쯤 올까 했던 18개월이 지나고, 딸아이는 만 20개월이 되었다. 1년 동안 수족구, 눈병도 걸렸고, 폐렴 직전까지 갔다. 열이 오르면 어린이집을 며칠 쉬고, 나아지면 또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렇게 한 2-3주를 무사히 보내면 또다시 아팠다.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내가 어린이집에 너무 일찍 보냈나.' 오다가다 일면식도 없는 동네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듣게 되는 말들이 그런 생각을 더 부추기곤 했다.
"걸음도 잘 못 걷는데 어린이집에 벌써 가?"
"애가 벌써 어디 다니는 거 보니 엄마가 일하나 보네."
"엄마 때문에 네가 고생이다."
초면에 오지랖 넓게 별 참견을 다 하는 그들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지만, 가끔 그 말들이 생각나곤 했다.
댕이네 어린이집은 정원이 20명 정도 되는 가정식 어린이집으로, 댕이가 속한 영세반은 정원이 세 명이다. 영세반은 한국 나이로 3세가 되기 전의 아기들을 위한 반인데, 영세반을 운영하지 않는 어린이집도 꽤 있다. 그 말은 댕이 정도의 개월 수에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별로 없다는 얘기도 된다. 댕이를 제외한 나머지 두 아이의 엄마가 워킹맘인 걸 보면, 엄마가 주부인 경우 대부분 3세가 되기 전에는 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 같다.
3세가 되기 전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기가 어릴 때는 엄마가 끼고 있어야 해'라는 통념도 있고, 또 혹시 있을지 모를 어린이집에서의 불상사를 우려해서 '그래도 애가 의사소통이 될 때 보내야지'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할 거다. 또 너무 어려서 보내면 우리 댕이가 그랬듯 너무 아플까 봐 걱정되서이기도 할 거다.
아마 운이 좋았던 것도 있겠지만, 내 경우 아이가 자주 아팠던 것 빼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서 좋지 않은 점은 하나도 없었다. 베테랑 선생님이 아이를 전담해주시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육아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곤 했다. 댕이는 집에는 없는 각종 놀이도구들로 언니 오빠들이 노는 걸 따라 하며 노는 법을 익혔다. 같은 반 친구가 생긴 다음에는 친구와 놀잇감을 뺏고 뺏기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는 보채고 짜증을 내다가도 어린이집에 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질 때가 많았다. 어린이집에서 숟가락을 잡고 스스로 먹는 법을 배웠으며, 집에서 엄마는 만들 줄 모르는 균형 잡힌 영양 식단으로 밥을 먹었다.
또 무엇보다도 어린이집은 엄마인 나에게 좋았다. 댕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시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운동 시간이 확보되었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다. 가끔씩 친구도 만났다. 알바 일이 들어오면 일도 하며, 앞으로의 돈벌이 방법을 모색할 시간을 가졌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냄으로써 나는 댕이 엄마에서 사회인으로 복귀하는 기분이 들었다. 재충전 시간을 거치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더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몇 달 전, 나보다 1년 늦게 출산한 친구의 집에 가서 어린이집에 대한 내 의견을 얘기한 적 있다.
"애를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서 아팠던 건 맞는 것 같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이를 또 키우게 된다면 그때는 어린이집에 좀 늦게 보내볼까 싶기도 해. "
"그럼 지금이라도 댕이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고 집에 데리고 있으면 되잖아."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아아아니"
"왜?"
"이왕 보낸 거 보내야지."
친구는 '그게 뭐냐'며 웃었다. 나도 나의 모순적인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될까.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어린이집은 엄마와 아기 모두에게 혜택이 되는 시설이다. 다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아픈 건 피할 수 없으므로 아픈 걸 감당할 수 있을 때쯤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해서 돌 때까지 매우 아팠고, 아직 아기였기 때문에 안쓰러웠다. 조금만 더 커서 아팠으면 마음이 좀 나았을까 상상은 해보지만, 아이가 아픈 걸 보는 건 언제든지 가슴 아픈 일이므로 그 비교가 의미가 있을까 싶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