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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신이 Feb 13. 2019

사람 아기 탐구 생활

돌 전 아기 관찰 일기

태어난 지 100일이 넘어가니, 아기가 하나씩 할 줄 아는 게 늘어난다. 웃기도 하고,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몸을 뒤집어 바둥거리며 배를 밀다가, 손을 뻗어 물건을 잡는다. 그걸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다. 나도 분명히 아기인 적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새로운지. 엄마와 아빠, 주변 어른들은 아기 옆에 앉아서 그저 손뼉을 치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양가 할머니들은 아기를 한동안 구경하시다가, 이런저런 총평을 내놓으신다.


"우리 아기~ 다리에 힘이 좋네. 금방 겄겠다! 네 아빠는 성장이 빨라서, 돌 때 돌떡을 자기가 돌렸잖아. 호호호호"

"이제 기기 시작했으니, 다다음 주쯤에는 아마 방문을 열고 얼굴을 쏙 내밀걸."


주로 이맘때의 관심사는 아기의 성장이다.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기어가는 아기의 모습은 놀라움 자체다. 자신의 몸을 뒤집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기를 보고 있자면, 잊고 있었던 원초적인 대자연의 신비를 체험하는 느낌이다. 갓 태어난 기린이 수 분 후에 걸음마를 하게 되는 걸 목격하는 기분과 비슷하달까.


언젠가 기린의 출산 장면을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엄마 뱃속에서 15개월이나 보내고 태어난 아기 기린은 키가 성인 남자만큼 크다고 했다.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두 발을 딛고 일어나 휘적휘적 걸어가는 아기 기린. 신기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기린이 그렇듯이 모든 포유류는 엄마의 다리 밑에서 태어나 엄마의 젖을 먹고 엄마의 돌봄 속에서 한동안을 자란다. 나는 지금 아직 걸음을 떼지 못한 인간의 아기가 ‘인간의 한살이’ 중 가장 초반부를 지나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관찰 중이다.



생후 110일째/ 눈빛이 또렷해진다


몸무게는 7.5kg.
몸을 뒤집은 채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노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래서 그런지 게우기도 자주 게운다.

맘마는 200ml씩 5회 정도 먹는데, 새벽 맘마는 항상 부족해하는 것 같아 240ml을 주니 다 비운다.


밤잠은 보통 9시쯤 자서 아침 6시에 손을 빨며 뒤척거린다. 피곤한 날은 혼자 잠에 들기도 하지만 보통은 잠들기를 힘들어하고 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서럽게 우는 통에 안아줘야 하는 때가 많다.

힙시트를 하고 안고 서성이다 내려놓고 다시 울면 안아 어르다 다시 내려놓고 하는 식으로 재우고 있다. 가끔 쪽쪽이로 재울 때도 있지만 애가 엎드려 자기 때문에 물리는 게 쉽지는 않다.


낮잠은 하루에 두세 번, 한 시간씩 잔다. 낮잠 시간이 점점 줄고 있다. 피곤하지 않은 날은 한 번에 30분만 자고 일어나기도 한다.


깨어있을 때는 놀아달라고 보챈다. 색색깔의 공을 눈 앞에 뉘어주었더니 조금 관심을 보이고, 방울 소리가 나는 마트료쉬카 오뚝이도 유심히 쳐다보지만, 아직 손으로 건드릴 줄은 모르는 것 같다.


눈빛은 점점 또렷해진다. 자다가 일어나 눈을 마주치면 바로 빙긋 웃고, 얼굴이며 손이며 만지면 좋아하고, 손을 잡으면 내 손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장난을 친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더 놀아달라고 요구한다.

그저께는 오빠가 공을 뻥뻥 차자 소리 내어 깔깔 웃었다. 새로운 자극이 오면 크게 웃기도 한다.




생후 133일째/ 되집기를 했다


일주일쯤 전에 이미 한번 목격했지만 아기는 어제 되집기를 했다. 엎드려있는 상태에서 엉덩이를 높이 쳐들고 있다가 옆으로 넘어지더니, 똑바로 누운 상태가 된다. 엎드려 잠자던 아이가 이불 저 끝에 가 있는 건 예사다.


오오오 하면서 뭔가를 혼자 말하기도 한다. 아침 첫 우유를 6-8시 사이에 먹은 후에는 혼자 잠을 못 이루고 뒹굴뒹굴하기도 한다. 누워서도 앉아서도 발가락을 가지고 논다.


만 4개월이 지나자마자 이유식을 시작했다. 쌀미음, 찹쌀 미음, 호박 미음 정도를 먹여봤는데 첫 며칠에 비해 음식을 흘리는 양이 적어졌다.


부쩍 운동을 좋아한다. 뒤집은 채로 팔다리를 바둥거리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잡고 걸려주면 환히 웃으며 한 발씩 딛는다.




생후 184일째/ 스스로 앉는다


코감기로 2주간 고생하더니 감기가 낫자마자 아이가 갑자기 스스로 앉게 되었다. 이제 누워있다 앉는 건 일도 아니다. 어딜 가면 엎드려서 바둥거리던 아이가, 의젓하게 앉아있을 때가 많다.


이제는 방에 혼자 두면 매트리스 밖까지 기어 나와있다. 아직 기는 정도는 아니고 포복 정도랄까. 몸부림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 속도가 제법 빠르다.


물건을 두면 쥐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꾸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바닥에 있는 먼지를 집어 먹지는 않을까, 가서 어디 부딪히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직은 기는 수준은 아니라 거실에 앉혀두고 주방에서 일을 하는 게 가능하다.


물티슈로 입안을 닦아주다 보니 걸리는 게 있다. 아기 앞니 두 개가 올라온 것. 이빨의 등장과 함께 먹성도 좋아졌다. 한 동안 아파 식욕이 없었는데, 이제 우유 200ml를 타 주면 남기는 법이 없다. 이유식도 주는 대로 꿀떡꿀떡 먹는다.



생후 191일째/ 기기 시작했다


8.6kg.

사람을 보면 아는 척하고 옆에 있다가 자리를 뜨면 엥 하며 싫은 내색을 한다. 안아달라 손도 벌리고, 안아주면 환히 웃는다. 또 물고 있던 장난감을 입에서 빼앗으면 엥 한다.


이제 소통이 되는 느낌이다. 눈빛도 장난기로 반짝거린다.


10일 전쯤 혼자 다리를 끌어당겨 처음으로 혼자 앉았던 아기는 이제 기기 시작했다. 한쪽 다리를 약간씩 끌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힘들면 중간에 쉬었다가, 또 앞으로 나간다.


엉덩이를 쳐올리니 제법 풋샵 자세가 된다.




생후 200일째/ 보행기를 탄다


보행기를 타고 집안 구석구석 안 가는 데가 없고, 이 방 저 방 기어 다닌다. 보행기를 태운 첫날은 10분 앉아있다 찡찡거리더니, 다음날은 후진을 연습하고, 그다음 날은 보행기를 타고 집안 구석구석 여행을 했다.


어제는 등원 준비 중인 사촌 오빠들이 양치할 때는 화장실 앞에, 신발을 신을 때는 현관에 따라 나와서 배웅을 했다. 보행기가 아이에게 다리를 달아주니 여기저기 안 끼는 데가 없는 참견쟁이가 됐다.


기는 능력도 일취월장이다. 마루에 앉혀놓으면 부엌에 와 있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기어간다. 기는 폼은 한쪽 다리를 끌면서 기는 게 조금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속도가 놀랍다.


문제는 아이가 이렇게 활동적이 될수록 잠을 못 잔다는 거다. 낮에는 곧잘 혼자 자고, 밤에도 몇 분만 울다가 토닥거리면 잠들고 했던 아기가 요즘 이런 난리가 없다. 졸릴 때면 앉았다 일어났다 굴렀다 정신을 못 차리고, 안아줘도 몸부림을 친다. 컴컴한 방 안에서 울며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통에 다시 안아다가 잠자리에 눕혀놓자니 엄마의 기력이 딸린다.


어제도 잠투정이 심하길래 보행기에 앉혀놓았더니, 울던 아이가 금세 싱글거린다. 자지 않고 놀고 싶어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

 



생후 209일째/ 잡고 서 있다  


다른 데 정신이 팔려있다가 문득 보니 아기가 뭔가를 잡고 서 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선 건 처음이다.


요즘 아기는 온 집안 곳곳을 탐험하며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기저귀 가방에서 온갖 물건을 가 꺼내 헤집어 늘어놓고 기저귀를 물어뜯는다. 그러더니 충전 중인 청소기의 전깃줄을 잡아당긴다. 책 표지를 북북 뜯어버리고 입에 잘근 씹기도 한다. 뭐든지 입으로 가져가 씹는다.


난 아기가 뒤로 넘어가 머리를 콩 찧을까 봐 매트를 대주기도 하고, 전깃줄을 물어뜯고 있는 걸 떼내기도 하며 계속 아기 옆에 머물며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생후 271일째/ 엄마 아빠를 부른다


아이를 재울 때 엄마에게 파고들며 ‘엄마엄마’ 하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니 ‘아빠’를 부른다. 아빠를 몇 번씩이나 부르며 우는데 그런 적은 처음이라 놀랍다. 확실히 아빠를 찾고 있다. '아빠' 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정확히 아빠를 찾는다는 느낌은 이번이 처음이다.


요즘 아이는 나랑 있을 때 '엄마'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로 엄마를 부를 때도 있지만 그저 말 연습하고 있는 느낌일 때가 많다. 매우 또박또박 발음하고 아주 큰 소리로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 할 줄 아는 말은 ‘아빠’, ‘까꿍’ 정도다.


명절을 지낸 후 아이는 또 컸다. 더 부산스러워졌다. 활짝 웃기도 하고 다리에 매달려 안아달라고도 하고 전깃줄을 입에 넣고 빨다가 걸리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아빠를 찾는 아이에게 아빠와 통화시켜주니 환하게 웃는다. 내 등에 업힌 아이는 바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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