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양 옆으로 줄지어 섰던 은빛 억새풀이 어깨 뒤로 내달리며 휙휙 소리를 낸다. 희고 붉은 코스모스도 뒤엉켜 분홍 더미가 되어 사라진다. 억.새.풀. 코.스.모.스, 꾹꾹 눌러 박힌 채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던 것들이 어깨 뒤로 달아나며 무더기가 되더니 휙 뭉뚱그려진다. 뭉뚱그려진 그것은 느낌이나 감정 같은 것이었다. 사람이나 사물을 접하는 순간, 눈가의 주름이나 나뭇잎의 잎맥이 손끝에 와닿을 듯 세세한 것이지만 내 뒤로 달아나면서 섬세함은 사라지고 대충의 윤곽만 남는다. '좋았다, 나빴다, 우울했다, 먹먹했다’는 등의 느낌과 함께 냄새를 남긴다.
오늘도 억새풀 무더기에서 갈잎 버석거리는 소리와 마른 풀냄새가 묻어났다. 그 냄새는 학교 운동장 한쪽에 수북이 쌓여있던 건초더미로 나를 데려갔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는 날, 아버지도 과제물을 지게에 지고 학교에 오셨다. 퇴비증산이니 뭐니 해서 여름방학 과제로 내준 건초 때문에 애먼 아버지가 숙제를 했다.
어떻게 니들이 들고 간다냐? 내가 갖다 주마!
지게에 언니 것과 내 것, 두단 불끈 지고 학교까지 오셨던 아버지.
지금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마른풀 냄새를 맡으며 속도를 냈다.
자고 있는데 전화했는갑다!
엄마였다.
왜? 엄마!
전화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는 마음 깊숙이 숨어있던 불안을 건드렸는지 엄마의 말투를 닮았다.
느그 아버지가 없어야. 대문은 열려있고 골모실로 해서 아리대미까지 가봐도 없어야. 어쩔끄나!
시골집의 텅 비어버린 바람이 어두운 새벽을 타고 내 방까지 밀려왔다.
엄마, 좀 더 찾아봐요! 아버지가 얼마나 멀리 가셨겠어? 쫌만 찾아보다가 안 되겠음 내가 경찰서에 신고를 하던지 할게요...
옆에 누워있던 남편도 휴대폰 벨소리에 깨어났다. 지금 내려가 봐야 하나 아니면 경찰서에 신고를 먼저 해야 할까를 두고 걱정을 했다. 그러다 남편에게 아이들 아침식사와 등교를 부탁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나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다시 휴대폰 벨이 울렸다.
아버지 찾았다!
엄마 전화였다.
오메, 고맙기도 하지! 정류소 아재가 모시고 왔어야...
아직 가을이지만 밤은 제법 쌀쌀했다. 때문에 생길지도 모를 오만가지 생각을 밤새 고개를 저어가며 상상했을 엄마 목소리는 아직도 떨렸다.
아버지는 면 소재지에 있는 정류소까지 십리 남짓을 걸었다. 파자마 차림으로 오들오들 떨며 걸어오는 것을 때마침 정류소에서 가게와 매표소를 운영하는 집안 친척 아저씨가 발견하고 모시고 오셨다. 시골길인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의 차량이 다니지 않는 새벽이었다.어둠 속에서 텅 빈 눈으로 터벅거리셨을 아버지 모습이 전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를 타고 건너왔다. 넘어졌는지 무릎과 팔꿈치에 까인 상처가 있어 이제 약 바르고 옷 갈아입혀 주무시게 하려고 한다고 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 돌아오셨으니 다행이었다. 한참 동안 섬망 증세가 있어 대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주무신다고 했는데 요즘 증세가 나아지신 듯해서 신경을 덜 쓰신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귀환은 시골로 가는 길을 좀 늦춰주었을 뿐 발길을 막은 것은 아니었다.
두 시간여를 달려 동네어귀에 들어서니 저만치 당산나무 앞에서 누군가 이쪽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엄마일 것이다. 너릿재를 넘으며 통화를 했으니 다 왔음직한 시간에 맞춰 나왔으리라.
오지말랑께 뭐 하러 온다냐. 아버지 무사히 집에 돌아왔당께.
오지 말라고 하는 말이 사실은 그 말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아무것도 사 오지 말어라! 퐁퐁도 가스도 내가 장에 가서 사면 된다!
염색약도 비싸면 사지 말어라. 좀 희커먼 어쩐다냐?
이런 식이었다. 자식이지만 해달라고 요구하기에는 미안하고, 그냥 지나치자니 장이 열리는 날 당신 힘에 버거운 것을 들고 버스를 오르락내리락하기에는 쉽지 않았으리라. 손을 내저어가며 거부하셨지만 그 손사래가미안함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버지의 맑은 눈이 사라진 후 엄마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편지나 고지서였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일곱 살부터 보리쌀 갈아 밥 짓고, 길쌈 품앗이를 다니느라 곁눈질로 배운 엄마의 한글은 매끄럽게 붙여 읽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엄마는 가장을 잃어버렸고, 대신 어른 아이가 하나 더 생겼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그다지 다정한 편이 못되었다. 하지만 엄마 이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동네 개들도 아버지가 지나가면 꼬리를 치며 반가워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지 아버지는 말 수가 줄어들었다. 밥상 앞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식사만 하기 시작했다. 가족들 모두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신장기능 이상과 통풍으로 온몸에 독소가 쌓여 사경을 헤맬 때였다.
이년 전이었다. 추석을 얼마 남기지 않은 가을, 아버지는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신장이 거의 제기능을 못해 입원과 동시에 혈액투석을 했다. 그리고 입원 중 치매 진단을 받았다. 지나고 보니 엄마가 부정한 짓을 했다며 동네 아저씨와 싸워 얼굴에 멍이 들었을 때에도 치매는 진행 중이었다. 우리들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 때문이라고 여겼다. 조금만빨리 알았더라면 진행을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병실에 앉아있으면 창밖으로 산책로가 훤히 내다보였다. 아버지는 6인실 병실에 누워 다른 환자들을 관찰하다 병실 창밖 너머로 보이는 산책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버지 뭘 그렇게 보세요? 주무세요...
밖에 쳐다보는 것이 재밌어야... 뭣이 계속 산에서 왔다 갔다 해야...
아버지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의사 선생님께 두 손을 잡고 고마움의 인사를 했고, 어떤 날은 간호사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어떤 날은 총총했고 또 어떤 날은 흐렸다.
주중에는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내가 병간호를 했고, 주말이면 언니들과 동생들이 번갈아 다녀가는 동안 우여곡절 끝에 혈액투석은 안 해도 되는 시점에서 퇴원을 했다. 그 후 나는 두 달에 한번 시골집에 들러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정기검진을 했고, 커다란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기 봐봐라.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해야. 오메 징헌거... 못 보겄다!
침대 끝자락에 엉덩이를 걸친 채 안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피약골을 내다보며 아버지는 몸서리를 쳤다. 엄마는 아버지를 침대밑으로 끌어내려 눕히려 했다.
뭣하러 거기 앉아서 내다보면서 그라요? 참말로...
밤새 걸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아버지는 고단함도 지워버린 모양이었다. 다리와 팔꿈치에 남은 생채기가 아니었으면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아버지 시선을 돌리고자 다시 눕혀드렸다.
피약골에서 육이오 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안 하냐... 아버지가 헛것이 보이나 봐야... 아무래도 비가 올려나보다. 꼭 날이 궂어질라 하면 정신이 흐려지드랑게...
옥상 위로 올라갔다. 아래층의 어수선함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후’ 한숨을 내뱉고 한 바퀴 둘러보니 왼쪽으로 피약골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안산이 들어왔다. 안산 밤나무가 태풍에 쓰러진 뒤 주인이 소홀해졌는지 듬성듬성 비어있는 것을 빼면 고향 앞모습은 그대로였다.
옥상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항아리가 가을볕에 반질반질 익어가고 있었다. 빈항아리에도 엄마의 여문 손끝에서 물기를 뺀 고사리, 토란대, 고구마순, 애호박 말린 것들이 차곡차곡 들어앉아 있을 것이었다. 옥상에 설치해 놓은 하우스는 자연 건조장이었다.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을걷이해 온 고추, 토란대, 호박꽂이가 꼬들꼬들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하우스 천정에는 입구에서 저쪽 끝까지 길게 늘어진 주황색 빨랫줄에 지난밤 아버지가 입고 나갔던 옷가지들이 그 흔적과 물기를 지우고 있었다.
야, 이놈아!
뒤쪽에서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렸다. 뒷집에서 나는 소리일까? 아니면 앞집? 아니었다. 옆집 마당에서 나는 소리였다. 하우스 밖으로 나왔다.
구부정한 어깨에 작은 키, 멀리서 봐도 두툼한 돋보기안경을 낀 옆집 할머니는 나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지난번에는 참깨를 잃어버렸는데, 이번에는 쌀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방에는 농약이 뿌려져 냄새가 나서 살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바람을 찢는 듯한 목소리였다. 바락 바락 악을 쓰며 알고 있던 욕을 모두 쏟아냈다. 그 기세에 눌려 나는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그때 저 아래쪽에서 이모가 올라왔다. 이모는 온전한 정신도 아닌 아버지가 쌀 도둑으로 몰리는 상황에 부화가 치밀었는지 평소에 입에 담지 않던 말까지 담아 더 떠들면 무고죄로 신고해 버린다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한 참을 일방적인 말들이 오갔다, 옆집 할머니는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했고, 이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치매는 병이었다. 누군가 내 것을 훔쳐가 버린 것만 같아 내 것을 찾아 지극히 웅숭그리는 병. 옆집 할머니도, 아버지도 정작 잃어버린 것은 당신들의 기억이었는데 가장 가까운 누군가 갉아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떠들썩한 소리들에 모여든 동네 사람들과 이모가 집으로 들어왔다. 밤새 길을 잃어버린 아버지 소식은 새벽 마을 방송을 타고 온 동네사람들에게 소문이 난 뒤였다.
나는 부엌에서 아직 맛이 덜 된 단감을 깎아 쟁반에 받쳐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푸르렀다.
아버지가 어제 낮에 밭에서 따온 단감이었다.
아직 덜 익었다며 따지 말라는 엄마의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서두르고 계셨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당신 손으로 한 마지막 단감 수확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