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우렁된장찌개를 자꾸 끓이게 한다'라고 쓰고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늦는다고. 기껏 끓여놨는데 먹을 사람이 없다. 나는 우렁된장찌개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남편만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막 보글보글 끓여놓은 요걸 그냥 둘 순 없다. 얼마 전 동기에게서 받은 백세미로 지은 밥이 다되어 고소한 누룽지 냄새를 퍼뜨리고 있다.
'암 먹어줘야지!'
양푼에 설설 김이나는 흰밥을 퍼담고 뚝배기에 들어있는 우렁살과 두부를 떠서 쓱쓱 싹싹, 한입 넣으니 청양고추의 얼큰함과 된장의 구수한 맛이 맵짤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두부의 포실포실함과 우렁의 쫀득한 식감이 섞여 둘이 찧고 까분다. 심심치 않고 재미난 한 끼이다. 혼자 먹어도 맛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딸아이가 하룻밤 묵고 갔다. 그날 저녁, 젓갈류 좋아하는 것까지 식성이 똑같은 딸과 남편의 식사가 길어졌다. 딸아이가 남편의 술친구도 되어주기에 부녀를 식탁에 놓아두고 멀치감치 소파에 물러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슬쩍
"너희 엄마 음식솜씨가 좋잖아!"
하는 소리가 귀에 걸렸다. 어쩌다 집에 오는 딸에게 하소연하듯이 내 흉을 보고 있어야 할 타임이었는데 칭찬이라니? 남편과 마주 보고 앉아 있던 딸아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딸도 아빠의 칭찬이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오래 살고 볼일이었다. 남편은 굳이 음식솜씨가 없다고 말한 적도 없지만 또 솜씨가 좋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먹을만하게는 음식을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 평가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음... 솔직히 너네 엄마가 음식을 쉽게 잘하는 편이긴 하지."
라고 말한다. 이건 찐이었다. 그냥 소주 몇 잔 들어간 김에 사탕발림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닌 진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밤 또 우렁된장찌개를 끓였다. 그날 애주가인 것까지 똑 닮은 딸과 남편은 우렁된장찌개가 담긴 뚝배기에 연신 숟가락을 가져가며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쉽게 잘한다'라는 부분에서 '쉽게'라는 두 글자는 나도 인정한다. 지금 막 끓여낸 뚝배기도 쉽게 빨리 끓여낸 음식 중 하나이니까. 그 과정은 이렇다. 별거 없다.
된장을 풀어놓은 뚝배기를 가스레인지에 올린다.
국물용 멸치와 마른 표고버섯을 가볍게 한자밤 넣는다.
가장 믿을만한 것은 주재료의 맛과 풍부함, 고로 맛있는 집된장에 걸맞게 우렁살을 충분히 넣어준다.
끓으면 깍둑썰기한 두부를 살포시 넣어준다. 풍덩 넣었다가는 국물이 튄다.
마늘을 찧어 넣고, 알싸한 매운맛이 날만큼 청양고추를 가위로 톡톡 잘라 넣어준다.
여기서 끝이다. 아, 그리고 2프로 부족하다 싶으면 마법의 가루를 한 꼬집 사용하면 진정 끝이다.
참고로 별거 없다는 것은 재료가 거칠다는 뜻이기도 하다. 된장을 거르지 않았고, 멸치를 가루내어 쓰지 않고 똥을 따서 냉동실에 보관해 놓은 중멸치를 그대로 썼다. 그리고 청양고추도 작년에 따서 얼려놓은 것을 사용하였으며, 마른 표고버섯은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 주신 것을 냉동보관했다가 불리지 않고 처음부터 넣었다. 보다시피 맵시 있는 모양새가 아니다.
이렇듯 나는 음식을 잘하는 고수가 아니다. 하지만 닥치는대로 대충 쉽게 한다. 이렇게 음식 하는 것에 '겁 없는 양반'으로 만든 사람들은 가족들이다. 가족들은 내가 만들어낸 음식을 맛보고 요리사의 반짝이는 눈망울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게 표현한다. 싱겁다, 짜다, 때로는 이맛도 저 맛도 아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맛있다고 한다. 이러한 시식 반응은 다시 잘 만들고 싶은 원동력이 되거나, 두 번 다시 밥상에 올라오지 않는 메뉴를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시식 반응이 수년에 걸쳐 반복되다 보니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 일류 요리사의 경지가 아니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음식과 신통치 않은 음식의 경계가 생겼고, 이에 따라 할 수 있는 음식만 휘뚜르마뚜르 곧잘 해내는 경지 말이다. 그래서 식당에서 접한 맛있는 음식이나 티브이에서 맛깔나게 연출된 음식들을 보고 가족 중 누군가 먹고 싶다거나 나 스스로 입맛이 동하면 '까짓것 함 해보지 뭐!'하고 달려든다. ' 맛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다. 무조건 해보는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일회성 음식이 될지도 모르는 이 요리는 우리 가족들 앞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맛없다는 표현은 전혀 나를 다치게 하지 않고, 맛있다며 추켜올려주는 엄지손가락은 잠시 나를 일류요리사로 밀어 올려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시댁식구들이 모인 곳에서는 음식을 한다는 것에 주눅이 든다. 육 남매 중 꼴찌인 나는 요리실력도 꼴찌이다. 그래서 설거지 담당이다. 손위 형님들 대부분이 어찌나 손이 날래고 솜씨가 좋으시던지 그야말로 나는 명함 끄트머리도 내밀지 못하고 당신들이 시키는 것만 한다. 그나마 좀 한다는 것은 전 부치기이다. 그래서 명절이면 우리 집에서 지짐이 냄새를 날려가며 전을 부친다. 그리고 큰형님네 가서 설거지만 주야장천 하고 온다. 형님들은 이렇게 말한다. '동서는 시집온 첫해부터 전을 잘 부쳤고, 설거지를 참 잘한다고.' 다른 것도 잘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형님들의 솜씨를 전혀 따라갈 수도 없거니와 얻어먹는 당신들의 요리가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정에서는 그렇지 않다. 냉장고를 뒤져 재료를 탈탈 털어 맘껏 요리를 한다. 우리 집에서 요리를 하듯 휘뚜르마뚜르 해낸다. 그리고 심지어 칭찬도 듣는다. 아주 오래전, 돼지고기와 묵은지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청국장찌개를 끓여드린 적이 있다. 아버지는 '아따 맛나다!'라고 말씀하셨다. 시댁에서는 꼴등이라고 했더니 ' 요렇게 잘하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아버지는 내편을 들어주셨다. 나는 같은 편에게는, 칭찬을 날려주는 이들에게는 일류 요리사였다.
냉동 논우렁살을 일 킬로 샀다. 다시 한번 씻은 후 먹기 좋은 분량으로 나누어 냉동실에 넣어두었더니, 딸아이는 갈 때 챙겨달라고 했다. 며칠 후 가족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아주 작은 뚝배기에 끓인 우렁된장찌개가. 눈으로 먹은 요리를 칭찬해 주었다.
"와, 맛있겠다! 담에 오거든 네가 해준 걸로 먹고 싶구나!"
나는 벌써 칭찬 한 꼬집이 가져올 마법의 맛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