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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더분한 버마재비
Jun 14. 2023
나는 일 년에 꼭 한 번은 재수 좋은 사람이 된다
서울 큰언니네 올라가 계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또 감자 한 박스가 왔어!
아이고, 이녁 부모보다 낫다. 벌써 몇 년이다냐? 어찌 그렇게 고마운 양반이 있다냐!
작은언니에게도 통화 중 슬며시 또 자랑을 끼어 넣었다.
언니야, 나 감자 한 박스 왔다. 황토밭 감자로!
이번 주말 언니네 감자를 같이 캐기로 해놓고서도 자랑질이다. 한 박스쯤은 아무것도 아닐 언니에게 일 년에 한 번 잊지 않고 찾아오는 감자를 자랑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고 싶은 것을 그런 나를 푼수데기로 볼리 없는 엄마와 언니 정도에서 멈췄다.
혼자 좋아서 실실 웃으며 감자를 바라본다. 큰 감자는 헤프다. 몇 개 꺼내면 푹 줄어든다. 아껴 먹어야 한다. 나눠먹는 감자는 이번 주말 언니네 집에서 캐오는 것으로 해야겠다. 큰 결정을 내린 장수처럼 감자박스 20킬로그램을 번쩍 들어 고스란히 다용도실에 넣어두었다.
며칠 전 일요일 해 질 녘, 전화가 왔다.
아이고, 잘 계시요?
아이고, 이장님! 이장님은 잘 계셔요? 사모님도 안녕하시지요?
이미 '이장님'이라고 뜨는 순간, 나는 알고 있었다. 무슨 내용의 전화일 거라는 것을. 전화기 너머 사람들 소리가 많고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다른 게 아니라, 아- 우리 집이 수리 중이란 말이요!
아, 이장님 벌써 30년쯤 됐나요? 집 지으신지?
30년은 못되았고 거즘 되아가지라. 그래서 집을 수리하다 본 게 주소를 잊어붔단말이요. 그래서 말인디 전화 끊으면 얼른 주소 좀 보내주실라요?
아, 이장님 이젠 안 보내주셔도 되는데요... 이제 이장님도 힘드실 텐데...
아 그믄 서운해서 된다요... 그래도 내가 심은 거니까 보내지라. 주소 얼른 꼭 보내시오!
전화를 끊기가 바쁘게 내 주소를 찍어 보냈다. 바로 찍어 보내지 않으면 금방 다시 전화가 올 것만 같았다. 전화기 너머 가족들 목소리가 건너왔다. 주말이라 사위들과 아들이 와서 캤다며 바삐 전화를 끊는 이장님의 목소리로 보아 박스작업 중인 것 같았다.
이장님, 이제 집에 와서 감자 받았어요! 황토밭 감자네요!
웅치가는 길에 있는 밭에 심은 감자여라. 어뜬 놈이 갔을지 모르겄소. 재수 좋은 사람은 큰 놈 받을 것이고...
아주 굵은데요?
아, 원래 00 씨는 재수 좋은 사람 아니요!
입이 귀에 걸렸다. 원래 재수 좋은 사람이라니... 통화 내내 내 목소리는 벽을 뚫고 밖으로 날아갈 기세였다.
끊고 나서도 둥둥 떠다닌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이장님의 선물, 감자 한 박스는 나를 몽글몽글 피어오르게 한다.
2001년 나는 그곳을 떠났다. 그 후 이장님과 나는 일 년에 한 번 딱 이맘때 통화를 한다. 그리고 또 한 해를 보낸다. 이렇게 감자 캘 때만 연락하는 사이로 이십 년이 넘었다. 유월 하지가 다가올 무렵이면 달력을 바라보게 되고, 나는 은근히 이장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잘 살지라? 세상에 00 씨가 아니면 누가 잘 산단말이오!
감자도 감자지만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이장님의 한마디에 스물여섯의 아가씨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내가 통통 튀는 목소리로 기다리고 있다.
이장님은 면사무소에 들어오실 때면 조용히 곱슬머리를 한 손으로 긁적거리면서 머쓱해하며 들어오셨다.
아, 나도 이장이 처음이란 말이요.
저도 9급 1호봉이에요.
이장님과 나는 그렇게 '처음'이라는 머쓱하고 풋풋한 얼굴로 만났다. 이장님은 걸걸하지만 낮은 소리로 조용히 일을 보았고 닳고 닳은 오래된 이장님들에 비하면 소박하고 너무도 얌전했다.
마을 출장을 가면 깡마르고 키가 크신 이장님은,
오메, 오셨소!
동글동글한 눈매에 서글서글한 사모님은,
아따메, 시원한 수박 한 조각 할라요?
늘 싹싹하게 맞아주셨다.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세 자녀를 키우시던 이장님 댁을 다녀오면 그 집에서 묻어온 따뜻함이 신규직원이 갖는 어설픔과 두려움을 한풀 수그러들게 했다. 든든한 지원군을 둔 듯 뿌듯했다.
그래서 유월이면 이장님의 전화를 기다린다. 누가 데려갈랑가 몰라도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해주시던 나에 대한 무한 믿음을 갖고 계시던 그 순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기다린다. 아마도 내가 이제 칠순을 넘기셨을 이장님을 그때의 이장님으로 기억하고 있듯, 이장님도 이십 대의 나로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가끔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신참내기들에게 곱창전골을 사주시며 우리들이 시끌벅적 먹는 모습을 먹는 것만 보아도 배부르다며 조용히 바라봐 주시던 이장님. 오늘도 나의 오래된 어른, 이장님은 '00 씨는 원래 재수 좋은 사람 아니요!' 라며 내 등을 토닥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세 아이를 키우느라 한참 주변에 눈 돌릴사이 없이 내달리던 시절에도 이장님은 꼭 일 년에 한 번은 전화를 해서 주소가 바뀌었는지 확인하시며 안부를 물어오셨다. 그 사이 나도 한 번은 이장님 집에 들러 인사를 했고, 자녀 결혼식에도 찾아뵙기는 했지만 늘 나보다 이장님의 전화가 앞섰다. 이장님은 해마다 한 번의 전화로 나를 재수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예방주사를 놓아주셨다.
그래서 나는 오늘 스물여섯이 되어 푸른 목소리로 말한다.
이장님, 잘 계셨어요? 덕분에 저는 원래 재수 좋은 사람이 되었어요!
늘 건강하세요!